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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47년만에 재현된 일본의 휴지 대란

중앙일보 2020.03.03 00:17 종합 28면 지면보기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소룡(설영)상, 이것 좀 봐”
 
일본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엔 텅 빈 마트 진열대가 있었다. 동네 마트에 두루마리 휴지가 모두 동났다는 것이다. “몇 군데를 돌아봤는데 휴지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휴지의 생산원료가 중국에서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자 가정·회사 할 것 없이 휴지 사재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 6시. 이례적인 시간에 열린 아베 신조 총리의 기자회견에서도 ‘휴지 대란’의 대책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아베 총리는 “마스크와 달리 휴지는 거의 전량 일본 국내에서 생산되므로 물량이 부족하지 않다. 냉정한 판단으로 구매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 말이 무색하게 주말 외국계 창고형 대형마트엔 화장지를 사려는 행렬이 이어졌다. “여기라면 아직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차도 없는 사람들이 수십 미터 줄을 섰다.
 
사재기는 휴지로 끝나지 않았다. 기저귀·랩·비닐봉지·파스타면 등 유통기한이 없는 물품으로 옮겨가더니 이제는 쌀까지 동나고 있다. 쌀은 매년 재고가 남는 물품이다. 자연재해 때도 좀처럼 사재기를 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번엔 달랐다.
 
도쿄 시내의 한 마트에 휴지 판매대가 텅 비어있다. 윤설영 기자

도쿄 시내의 한 마트에 휴지 판매대가 텅 비어있다. 윤설영 기자

마트에서 발길을 돌리던 할머니는 “1973년 오일쇼크 때 이후 이런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당시 휴지 사재기는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웃지 못할 해프닝이 47년 만에 또 일어나고 있다. 정부의 호소가 국민들에게 통하지 않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 금요일 전국 초중고등학교 휴교령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해당되는 학생이 전국 1306만명이다.  
 
엄마들의 SNS 대화방은 난리가 났다.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현(県)까지도 휴교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어린이들의 건강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인데 “그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왜 안 하나”라는 의문이 절로 나온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요코하마항 격리 26일 만에 전원 하선했다. 하지만 악몽은 계속되고 있다. 음성 판정을 받고 배에서 내린 사람들 중 벌써 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추적검사는 2번만 하겠다고 했다가, 확진자가 나오자 “매일 전화로 상태를 확인하겠다”로 바뀌었다. 일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영국인 승객은 끝내 사망했다. 지방에선 하선 승객 정보를 받지 못해 불만이 치솟고 있다.
 
코로나19가 각국 정부의 대처능력을 시험대에 올렸다. 바이러스라는 예기치 못한 재난 앞에서 그것도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아베 정권의 스텝도 꼬이고 있다.
 
윤설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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