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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위업, 함성, 승리와 환희의 D장조

중앙일보 2020.03.03 00:15 종합 28면 지면보기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거의 20여 년 만에 노래방을 찾았다. 제 차례가 오니 너나 할 것 없이 능숙하게 버튼을 눌러 자신의 음역에 맞게 조(調, key)를 옮겨 부른다. 노래하는 사람이 곧 악기고,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역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가곡을 비롯한 대부분 노래는 일반적으로 조를 특정하지 않고 이렇게 자유로이 높낮이를 옮겨 부른다. 이와는 달리 기악곡은 아예 악보 표지에 조를 명시한다. 베토벤 교향곡 9번 D단조, 이렇게…. 그렇다 보니 음악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지닌 사람들은 총 30개에 이르는 각각의 조(15개의 장조와 15개의 단조)에 대한 주관적 느낌을 논하며 은연중 절대음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공감과 공분을 켜켜이 쌓는 발언
내 편만 공감하면 상대편 공분 사
공감없는 선동은 외면받아 마땅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챔피언스리그 송가’(1992, 토니 브리튼 작곡)를 한두 번 들어보았을 게다. 이 곡의 원곡은 헨델의 ‘제사장 사독’으로 1727년 조지 2세(1683~1760)의 대관식을 위해 쓰인 곡이다. 유대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 일컬어지는 솔로몬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제사장 사독, 조지 2세 이후 영국 왕실의 대관식, 그리고 유러피안 챔피언스리그…. 묘하게 이해가 갈듯하기도 하고, 한편 억지스럽기도 하게 세 개의 서로 다른 사건들로 연관 지어진 이 장엄한 음악은 D(레)장조다.
 
조금 주관적일 수 있겠지만, 대중적 인기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차이콥스키, 브람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모두 D장조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찬송하는 합창곡 ‘할렐루야’,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 중 ‘환희의 송가’와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 ‘종교개혁’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마르틴 루터 곡) 역시 D장조다. ‘승리’와 ‘환희’의 크기는 그 이전의 ‘고난’에 비례할 터이니 이 두 교향곡의 원조는 D단조다. 그래서일까. 리타 스테블린(1951~2019)이라는 음악학자는 D장조를 일컬어 ‘위업, 할렐루야, 전쟁의 함성, 승리의 환희를 표현하는 조’라 칭했다.
 
D장조에 대한 작곡가들의 이러한 자세는 그 조의 절대적 음높이도, 그 어떤 심오한 음악적 이유도 아닌 관현악의 2분의 1~3분의 1을 차지하는 바이올린의 구조적 특성에 기인한다. 어떤 음이 울렸을 때 그와 일치하는 고유진동을 지닌 발음체가 함께 진동하여 진폭이 증가하는 공명(共鳴)현상이 일어난다. 어릴 적 과학 시간에 소리굽쇠 두 개를 들고 하나를 울린 뒤 곧 그 소리를 차단해도 다른 하나는 여전히 소리를 내는 것을 확인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는 소리의 크기와 음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바이올린처럼 여러 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악기의 경우 소리를 내는 현뿐만 아니라 나머지 현들이 함께 울릴 때 보다 밝고 풍부한 음색을 내게 된다. G(솔)-D(레)-A(라)-E(미) 이렇게 네 개의 현을 지닌 바이올린에 있어 D장조는 그 조를 구성하는 일곱 개의 모든 음, 특히 세 개의 주요 음(으뜸음 D, 딸림음 A, 버금딸림음 G)들이 모두 다 공명을 유발하는 물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기에 가장 ‘빛나는 조’로서의 영광을 지금껏 누려왔다.
 
이렇게 발음체가 외력에 대하여 공명으로 반응하듯이 우리네 마음은 타고난 심성과 그때그때의 심리상태에 부합하는 음악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다. 슬프면 슬플수록 더 비통하고 차분한 음악이 위로를 준다. 어찌 음악만 그렇겠나.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건들과 그에 수반되는 수많은 말 또한 우리의 마음에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외력이니 그에 대한 공감(共感)과 공분(共憤)을 켜켜이 쌓으며 하루하루를 마감한다. 하루가 멀다고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주고받는 가시돋친 설전을 접하며 통쾌해하건 극도의 혐오감을 표하건 그 또한 심리적 공명현상의 일종일 터, 그것이 ‘승리와 환희의 D장조’를 향한 걸음걸음일지 ‘파괴적 공진(共振)현상’의 전조일지 판단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편만 공감시키는 발언은 다른 편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다. 상대편을 헤아리지 않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은 글자 그대로 ‘살의(殺意)’의 표현과 다름없다.
 
바로크에서 후기 낭만에 이르기까지 300여년간 대 작곡가들에게 단 한 번도 교향곡의 조로 선택받지 못한 조들이 꽤 여럿 있다. 예상할 수 있듯이 현악기의 공명효과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내림 D장조, 내림 G장조, 올림 C장조 등이 그것이다. 올림 F장조 역시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10번, 1910) 외 알려진 곡이 거의 없다. 이렇게 공명이 빈약한 조들이 교향곡에서 외면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공감 없는 선동 또한 그렇게 외면받아 마땅하다.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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