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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성범죄' 폴란스키에 佛세자르 감독상…여배우 퇴장 항의

중앙일보 2020.03.01 20:33
지난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최고 권위 영화상 세자르영화제가 성범죄 혐의에 연루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사진)의 새 영화 '장교와 스파이'에 감독상 등 3관왕을 수여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은 그가 지난해 11월 '장교와 스파이'의 프랑스 파리 시사회 후 무대에 오른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지난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최고 권위 영화상 세자르영화제가 성범죄 혐의에 연루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사진)의 새 영화 '장교와 스파이'에 감독상 등 3관왕을 수여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은 그가 지난해 11월 '장교와 스파이'의 프랑스 파리 시사회 후 무대에 오른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프랑스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세자르영화제가 수차례 아동 성범죄 혐의로 40년간 도피생활 중인 원로 감독 로만 폴란스키(87)에게 감독상을 바치며 논란에 휩싸였다.
 

아동성범죄 혐의 40년 도피 생활
로만 폴란스키 감독 '장교와 스파이'
프랑스 최대 세자르영화상 3관왕
영화계 안팎 비판…조직위 전원 사퇴

28일(현지시간) 제45회 세자르영화제 시상식에서 폴란스키의 새 영화 ‘장교와 스파이(An Officer and a Spy)’는 감독상‧각색상‧의상상 등 3관왕에 올랐다. 이 중 감독상‧각색상엔 폴란스키의 이름이 박혔다.  
 

폴란스키 감독상에 여배우 퇴장

유대계 폴란드 감독 폴란스키는 할리우드에 머물던 1977년 13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미국에서 기소되는 등 미국과 유럽에서 저지른 수차례 성범죄 전력으로 40년 넘게 도피생활을 해왔다. 현재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파리에서 살고 있다. 프랑스는 미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다.  

올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아델 하에넬은 폴란스키가 감독상에 호명되자 시상식을 박차고 나갔다. [AP=연합뉴스]

올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아델 하에넬은 폴란스키가 감독상에 호명되자 시상식을 박차고 나갔다. [AP=연합뉴스]

 
이날 시상식이 열린 파리 살플레옐 극장 밖에는 종일 폴란스키 규탄 시위가 거셌다. 영화의 프랑스어 제목 ‘나는 고발한다(J 'accuse)’를 인용해 ‘나는 고발한다, 폴란스키와 세자르를’ 등 피켓이 등장했다. 폴란스키의 이름에 ‘강간하다’란 뜻의 프랑스어(violer)를 더한 ‘비올란스키(violanski)’란 합성어까지 나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아델 하에넬은 폴란스키가 감독상에 불리자 시상식장을 박차고 퇴장했다. 올해 31살로, 세자르상을 앞서 2차례 수상한 그는 12살 때 처음 출연한 영화의 감독이 당시 미성년자이던 자신을 더듬고 성적 학대한 사실을 폭로하며 프랑스 ‘미투(#MeToo)’ 운동에 동참한 바 있다.
 

아동성범죄로 40년 도피 '거장 감독'  

세자르영화제가 열린 28일(현지시간) 시상식 바깥에선 여성단체 등이 폴란스키 감독 규탄 시위를 벌였다. 그의 얼굴을 담은 피켓에 '폴란스키를 고발한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AFP=연합뉴스]

세자르영화제가 열린 28일(현지시간) 시상식 바깥에선 여성단체 등이 폴란스키 감독 규탄 시위를 벌였다. 그의 얼굴을 담은 피켓에 '폴란스키를 고발한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월 ‘장교와 스파이’가 작품상 등 올해 최다 12개 부문 후보에 호명될 때부터 이 같은 논란은 예견됐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여성 발렌틴 모니에가 폴란스키 감독에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하며 추가 성범죄 혐의가 제기된 터라 반발은 거셌다.  
 
시상식 보이콧 운동까지 나왔지만, 세자르 조직위는 “후보자 선정에 있어서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공식 입장을 밀어붙였다. 결국 지난달 12일 프랑스 영화인 200여명이 세자르상 조직위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자 세자르상 위원회 21명이 전원 사임하는 파행까지 벌어졌다.  
 

폴란스키 "공적인 린치 두렵다" 

정작 폴란스키 본인은 시상식에 불참했다. 전날인 27일 그는 AFP 통신에 전한 성명을 통해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의 “공개적인 린치가 두렵다”고 불참 의사를 밝혔다. 또 “운동가들은 이미 나를 공개적으로 괴롭히며 위협하고 시위를 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진실을 지키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며, 맹목적인 증오와 반유대주의에 관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국은 '영구제명', 유럽은 '면죄부'   

폴란스키를 둘러싼 영화계 입장은 미국과 유럽이 엇갈린다. 미국 아카데미는 2003년 그의 영화 ‘피아니스트’에 감독상을 안겼지만 도피 생활 중인 폴란스키 감독이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후 2018년 ‘미투’ 운동이 거세지자 아카데미는 성범죄 이력을 가진 그를 회원 명단에서 영구 제명했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장교와 스파이'가 2등상인 그랑프리를 받은 모습이다. 불참한 로만스키 대신 아내이자 프랑스 배우 엠마누엘 자이그너와 프로듀서들이 대리 수상에 나섰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장교와 스파이'가 2등상인 그랑프리를 받은 모습이다. 불참한 로만스키 대신 아내이자 프랑스 배우 엠마누엘 자이그너와 프로듀서들이 대리 수상에 나섰다. [AFP=연합뉴스]

 
반면, 유럽은 죄는 미워도 영화는 미워하지 말라는 식이다. 아동 성범죄 전력에 대한 비판 여론에도 꾸준히 그의 신작을 소개하고 트로피를 안겼다. ‘피아니스트’에 황금종려상을 준 칸영화제의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2년 전 “(‘미투’가 촉발한) 세계 변화에 발맞추겠다”고 선언한 기자회견에서도 폴란스키를 향후 제명하겠느냐는 질문에 “복잡한 문제”라며 얼버무렸다. 베를린영화제는 2010년 ‘유령작가’로 그에게 감독상을 안겼다.  
 

베니스 "예술의 역사, 범죄자로 가득" 

베니스영화제는 지난해 ‘장교와 스파이’에 2등상인 그랑프리(은사자상)까지 안겼다. 알베르토 바르베라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예술의 역사는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들로 가득 차 있으나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존경한다”고 폴란스키를 옹호했다.
 
프랑스의 최대 영화 축제 세자르상은 1980년 ‘테스’의 작품상‧감독상을 비롯해 지난 40년간 그의 이름을 새긴 트로피를 10개나 선사했다. 프랑스 영화계 안팎에선 세자르 조직위가 그간 폴란스키를 ‘자국 감독’이라 감싸며 권위에 스스로 먹칠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해 시상식에서도 풍자가 나왔다. 사회를 맡은 코미디언 플로랑스포스티는 폴란스키의 작품이 12개 후보에 오른 것을 “12개의 근심거리”에 빗대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한편 올해 세자르영화제에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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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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