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식당에서 “이모님!” 대신 “고모님!”하는 사람 왜 없을까

중앙일보 2020.03.01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65)

한 외국인이 칼럼에서 “왜 식당 간판에 ‘고모네’는 없고 ‘이모네’만 있을까?” 물었다. 한국생활 중에 불쑥 떠오른 궁금증이란다. 댓글이 많은 걸 보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답이 있는 듯하다. 고모네, 이모네뿐인가, 외갓집식당은 봤지만 친가식당은 없었다. 식당 여사장님을 친근하게 부를 때는 “고모님!” 대신 “이모님!” 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이 나올 듯한데, 그게 내 개인 환경에 의한 것인지 어느 정도 일반적인지 궁금해 주변에도 물어보았다. 대부분 이모가 고모보다 정답고 친절하며, 이모와 더 친하다고 답했다. 나아가 이모는 엄마를 도와주고 고모는 엄마를 부려먹는다며 이모는 선(善), 고모는 악(惡)의 이미지로 대비하기도 했다.
 
물론 근저에는 부계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있다. 우리 세대만 해도 출가외인(出嫁外人), 여자는 시집에 ‘와서’ 붙어산다는 의식이 깔려있었다. 엄마는 우리 집안에 추가된 사람이니 당연히 그 형제인 이모는 손님으로서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빠의 형제인 고모는 주인처럼 당당하고 입김 세며, 보이는 일마다 개입했다.
 
고모와 이모에 대한 느낌을 단톡방에 물어보았다. 여기에서 양쪽으로 반반씩 의견이 갈렸으면 더 이상 글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이모가 친근하고 살갑다고 답했다. [사진 박헌정]

고모와 이모에 대한 느낌을 단톡방에 물어보았다. 여기에서 양쪽으로 반반씩 의견이 갈렸으면 더 이상 글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이모가 친근하고 살갑다고 답했다. [사진 박헌정]

 
그래서 머릿속에 이모들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있고, 고모들은 누가 있든 없든 리모컨 들고 아무 데나 퍼져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물론 고모들도 소파에 앉긴 한다. 엄마가 청소할 때 소파에서 발만 살짝 들어주던 모습이 기억나니까….
 
‘이모 vs 고모’ 이야기로 일방을 매도하거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처럼 무의미한 선후를 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고모와 이모는 내게 똑같은 3촌(寸)이고, 부모님의 혼인으로부터 비롯된 관계인데 왜 그렇게 입지와 이미지가 다를까? 이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해서 주변 의견 들어가며 생각을 정리했을 뿐, 과학적 근거로 논문을 쓰려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이 고모이자 이모일 때에도 이모의 입장일 때 더 다정하고 상냥하다는 데 동의할지 모르겠다. 목소리조차 이모들은 언니이~, 형부우~ 장음인데 고모들은 언니! 오빠! 단절적이다.
 
고모들은 대체로 씩씩하다. 같은 성씨(姓氏)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뚜렷하게 알고 있는 듯, 때가 되면 짱가처럼 어디선가 나타나 주류로서 거침없이 행동한다. 우리 때에는 과잉 혼수가 지금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혼수예단 준비가 점잖게 진행되다가 한쪽에서 고모가 끼어들면 반드시 양쪽으로 불이 붙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앞에 말한 출가외인도 ‘너는 더 이상 우리 딸이 아니다’ 보다 ‘그쪽 집안에 잘 해서 잘 살거라’하는 선언적 의미다.
 
몇 년 전 SBS 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고모役을 연기한 이미영 씨. 극중에서 밉살맞게 바른 말 잘하고 무차별 '팩폭(팩트 폭격)'하는 고모 이미지를 실감나게 연기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몇 년 전 SBS 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고모役을 연기한 이미영 씨. 극중에서 밉살맞게 바른 말 잘하고 무차별 '팩폭(팩트 폭격)'하는 고모 이미지를 실감나게 연기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명절에는 잘나가는 사촌의 근황을 충분히 전해주고 “취직은?”, “결혼은?”, “애는 있어야지”하며 애정 어린 걱정을 해주는 것도 고모다. 어린 시절에 그렇게 귀여워해 준 것처럼 아직 내 연봉, 아파트 평수, 심지어 명예퇴직까지 걱정해주시는 고모의 사랑….
 
그런 ‘돌직구’로 들어오는 건 고모가 아버지와 한 핏줄(血族)이라 가능하다. 아버지의 인족(姻族)인 이모가 넘기 힘든 선이다. 핏줄은 무시 못 한다. 북한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끌어내 그렇게 잔인하게 처형한 후 그동안 죽었다고 알려진 고모 김경희를 6년 만에 공식 석상에 불러내 백두혈통을 과시했다잖은가. 고모가 지닌 부계의 권위와 상징성을 이용한 것이다.
 
같은 피붙이라 고모의 조카 사랑은 원초적인 면이 있다. 어릴 때 우리 고모들은 서로 나를 업으려고 티격태격하고, 방문 걸어 잠그고 내게만 몰래 딸기나 홍시 같은 걸 챙겨 먹이던 게 기억난다. 반면 이모는 대한극장에 데려가서 로봇태권V를 보여주고 짜장면을 사주었다.
 
그런데 고모와 이모 관계도 세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우리 세대를 기준으로 한 이야기였고, 세월이 흘러 고모나 이모가 된 내 또래들에 따르면 이모가 고모보다 인기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 이유가 조금 달랐다.
 
자기는 고모이자 이모라는 한 친구는 아무래도 남자형제보다 여자형제를 자주 보게 되니 그쪽 조카들과 친하다고 한다. 접촉빈도의 문제다. 하긴, 아이 키우다 잠깐씩 맡길 때 시누이를 부르진 않으니 이모는 엄마를 대신할 때가 많다. 우리 때는 어땠는가. 처녀 때 좋은 이미지 남기고 시집간 이모는 통 만날 수가 없었지만, 고모는 결혼 후에도 명절마다 자기 자식 업고 나타나 예전과 좀 다른 싸한 애정을 보여주곤 했다.
 
여자 입장에서는 조카들 모두 자기 집안 피가 반반씩 섞였다고 해도 여자형제의 자식과 달리 남자형제의 자식은 외부 사람(올케)이 들어와서 피가 절반 이하로 희석된 느낌이라는 것이 지인의 말이다. [사진 pexels]

여자 입장에서는 조카들 모두 자기 집안 피가 반반씩 섞였다고 해도 여자형제의 자식과 달리 남자형제의 자식은 외부 사람(올케)이 들어와서 피가 절반 이하로 희석된 느낌이라는 것이 지인의 말이다. [사진 pexels]

 
한 여자후배는 여성의 본능을 언급했다. 여자 입장에서는 조카들 모두 자기 집안 피가 반반씩 섞였다고 해도 여자형제의 자식과 달리 남자형제의 자식은 외부 사람(올케)이 들어와서 피가 절반 이하로 희석된 느낌이라는 것이다. 왜 절반 ‘이하’일까? 엄마 젖을 먹고 그 중심으로 커서? 그게 엄마에 대한 고모의 공격적 성향의 원인일까? 그에 따른 엄마의 평소 반응에 아이가 받는 영향은? 의문이 이어진다. 이쯤 되면 논문 몇백 편으로도 부족하겠다.
 
하기야 다음 세대에게 “고모가 좋아?, 이모가 좋아?” 묻는 일도 없겠다. 아이 하나 낳기도 버거워하는 시대다. 고모와 이모를 동시에 가진 아이가 있어야 비교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이러다 ‘삼촌, 외삼촌, 숙모, 고모, 고모부, 이모, 이모부’처럼 3촌 관계를 가리키는 말들이 영어의 uncle과 aunt처럼 단순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 생긴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