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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수십억 손해에도 묶여만 있다···영종도에 떠있는 한진 그 요트

중앙일보 2020.03.01 00:03
수익성 확보 못하고 표류 중… 가족 분열에 존재 의미마저 빛 바래

‘경영권 분쟁’ 태풍에 사라지나

 
지난 2월 18일 인천광역시 중구 을왕동 왕산마리나베이 요트 계류장에 정석기업 소유의 요트 창해호가 정박해 있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요트를 조양호 전 회장이 2014년 리핏했다. / 사진:최윤신 기자

지난 2월 18일 인천광역시 중구 을왕동 왕산마리나베이 요트 계류장에 정석기업 소유의 요트 창해호가 정박해 있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요트를 조양호 전 회장이 2014년 리핏했다. / 사진:최윤신 기자

인천광역시 중구 을왕동에 위치한 왕산마리나 요트 수상계류시설 끝자락 ‘J도크’에는 50m급 대형 요트 한척이 수년째 정박해있다. 이 배의 이름은 ‘창해(蒼海)’.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가 수십년 전 도입해 애지중지했던 요트를 조양호 전 회장이 2014년 리핏(Refit·리모델링)했다. 조 전 회장은 모친인 김정일 여사의 법명을 따 배에 명명했다. 리핏 과정엔 온 가족이 깊은 관심과 애정을 나타냈다. 리핏 디자인 프리젠테이션엔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기내서비스·호텔사업부문 총괄부사장이 깊이 관여했고, 최종 결정은 조양호 전 회장이 내렸다. 창해호의 명패는 조 전 회장 부인인 이명희 당시 일우재단 이사장이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만해도 한진일가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 여사는 2016년 타계했고, 한진그룹을 이끌던 조양호 회장도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남은 가족들은 경영권 분쟁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2015년부터 왕산마리나의 가장 큰 선석(168ft)에 수년째 하릴없이 떠있는 창해호는 이젠 분열된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아무런 수익도 내지 못하는 창해호는 한진그룹이 ‘왕산마리나’ 운영사인 왕산레저개발 매각을 선언하며 존재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
 
 

창해호, 수년째 제자리서 감가상각만 수십억

창해호는 현재 한진그룹의 알짜 계열사인 정석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정석기업의 ‘정석(靜石)’은 조중훈 창업자의 호다. 약 30년 전 조중훈 창업자가 일본에서 도입한 이 배의 역사는 다소 복잡하다. 이전에는 한진그룹 계열사였던 한진해운의 소유로 돼 있었는데, 정석기업이 2007년 약 6억원을 들여 한진해운으로부터 이 선박을 매입했다. 조양호 전 회장의 동생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2006년 작고하자 조양호 전 회장이 이를 사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창업자가 애지중지하던 배였고, 그 부인의 이름이 붙어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창해호가 한진그룹 일가에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을 것이란 추정이다. 정석기업은 이 배를 사들이자마자 보수에 돌입해 이듬해 21억원짜리 배로 탈바꿈 시켰다.
 
정석기업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거액을 들여 이 배를 리핏했다. 정석기업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배의 취득가액은 약 123억원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창해호는 제대로 떠 보지도 못하고 정석기업에 수십억원의 감가상각만을 남기고 있다. 한영회계법인은 2018년 말 기준 창해호의 가치를 약 53억원으로 평가했다. 매년 10억원 정도의 감가상각이 이뤄지고 있어 현재 장부상 가치는 43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정석기업은 이와 함께 선박보험료 등도 지속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물론 감가상각으로 인한 손해가 정석기업에 모두 안겨진 것은 아니다. 정석기업이 거액을 들여 이 배를 리핏한 데는 왕산마리나와 연계한 ‘선박임대사업’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창해호의 리핏 작업에 돌입한 2011년 대한항공은 인천광역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왕산마리나 조성사업을 시작했고, 2014년 선박 리핏을 마친 이듬해 정석기업은 사업목적에 ‘선박 임대 사업’을 추가했다. 한진그룹이 구상한 사업구조는 정석기업이 보유한 선박을 한진관광에 임대하고, 한진관광이 이를 가지고 왕산마리나에서 관광사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왕산마리나에 매년 수천만원에 달하는 계류비를 지불하는 것도 한진관광이다. 창해호의 수상계류하는 비용은 연간 3564만원이다.
 
창해호는 앞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각종 일탈 행위 등에 대한 제보 과정에서도 수면에 떠오른 적이 있다. 2018년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의 ‘물컵 갑질’ 사태 이후 대한항공 직원들이 만든 단체 대화방에 각종 제보가 쏟아졌는데, 창해호가 오너 일가 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대한항공은 당시 이 요트가 한진관광을 통해 일반인에게 오픈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진관광은 창해호의 임대사업 상품을 만든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이용이 많지 않아 수익은 극히 미미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진관광은 창해호 상품을 전혀 홍보하지 않았다. 일반인 대상이 아니라 VIP들만 알음알음으로 이용하는 상품이라는 게 한진관광 측의 설명이었다. 2018년 말 한진관광이 창해호 임대를 문의한 고객에게 내민 견적서를 보면 선박 전체를 이용하는데 드는 요금은 1시간에 150만원, 유류비는 1시간 운항 기준 80만원이었다. 왕산마리나 청소용역업체 소속 A씨는 “수년간 선박 검사 이외에는 운항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왕산레저개발 관계자는 운항기록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창해호가 위태로워진 것은 한진그룹이 지난 2월 7일 이사회를 통해 왕산마리나 운영사인 왕산레저개발의 연내 매각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왕산마리나와 연계한 레저 신사업’이라는 창해호 보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3자연합 “수익 나지 않는 자산은 매각 원칙”

그렇지만 한진그룹은 현재로서는 창해호를 매각할 계획이 없다. 창해호에 대한 정석기업과 한진관광의 계약은 최근 만료됐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요트 전문업체인 현대요트와 계약을 해서 수익사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요트는 요트 제품을 판매하고 차터(임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정석기업의 창해호 관련 수익성은 현대요트와의 계약 내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당장 창해호의 감가상각 등을 모두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요트의 2018년 상품매출은 4억8801만원으로 창해호의 감가상각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현대요트 측은 “아직 계약이 이뤄진 것은 아니고 협의 중이기 때문에 세부 내용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석기업이 보유한 창해호는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KCGI-반도건설 3자연합 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한진칼은 비상장사인 정석기업의 지분 48.27%를 소유하고 있다. 정석기업에 대한 경영개선 역시 3자 연합의 요구사항이 될 수 있다. KCGI측 관계자는 “창해호에 대해 별도로 검토해보지는 않았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유휴부동산이나 자산은 매각하자는 게 우리의 일관된 주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진그룹은 아직 왕산레저개발 매각과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왕산마리나 연계 리조트 개발을 목적으로 한 TF(태스크포스)팀은 여전히 운영 중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왕산레저개발은 매년 증자를 진행하며 재무나 법무 관련 인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어 소규모 TF팀을 운영해 온 것”이라며 “왕산레저개발 매각과 관련해서는 이제 막 이사회에서 얘기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주총이 끝나고 확실한 지침이 정해지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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