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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권위주의와 쇼맨십 정권의 허무한 실력

중앙선데이 2020.02.29 00:25 675호 31면 지면보기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남의 말 할 처지가 아닌 건 안다. 한데 지난주 초반만 해도 지인들과 코로나19 얘기를 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을 화제에 올렸었다. 한국은 비교적 잘 통제하고 있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우선 그 얘기부터 하고 싶다.
 

중국·일본 코로나19 확산 사태
권위적 정권의 실력 부족 비판
뒤늦게 지역확산 맞은 한국엔
‘~척하는’ 과시용 리더십 넘쳐

지난주 초 만났던 한 외교관은 뜬금없이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니, 자신은 지금까지 ‘일본은 선진국’이라는 걸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하나 이번 코로나19 대응을 보면서, 도대체 그동안 무슨 근거로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코로나19는 사람들 사이에 ‘일본이 선진국 맞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
 
여기엔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한 비(非) 인권적 조치가 큰 몫을 했다. 일본의 초동대응 실패 등은 운이 없었다고 쳐도 크루즈선 대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데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우리는 선진국이라면 부유함뿐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고 공공선에 헌신하는 정부와 시민을 기대한다. 하나 일본에선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크루즈선 봉쇄로 이 배가 바이러스의 거대한 배양접시가 될 거라는 지적은 초반부터 나왔다. 이후 실제로 확진자 수가 확확 늘었지만 일본 정부와 언론은 인권 문제에 놀랍도록 무관심했다. 더 놀라웠던 건 ‘승객들을 하선시키지 말라’는 응답이 70%나 나온 일본 내 여론조사 결과, 즉 일본 시민들의 냉담한 인권의식이었다.
 
몇 주 전 만났던 중국계 비즈니스맨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길이라며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당시 일본에선 코로나19 지역 확산으로 분위기가 심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스크 쓴 시민도 없고 평온하기만 하더란다. 코로나19 얘기를 하면 ‘올림픽에 방해된다’며 불쾌해하더라고도 했다. 그는 “그래도 중국인들은 권위주의 정부가 문제를 키웠다고 욕은 하는데, 일본인들은 아예 눈 감고 귀 막고 있더라”면서 “권위주의 정권에 포섭된 국민”이라고도 했다.
 
선데이 칼럼 2/29

선데이 칼럼 2/29

그래서 물어봤다. 중국에선 그런 권위주의에 저항하느냐고. 그는 ‘상유정책(上有政策) 하유대책(下有對策)’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정부엔 정책이 있지만, 민간은 빠져나갈 대책을 세운다는 말이란다. 우한 봉쇄 전에 시민 절반이 타지로 빠져나간 것처럼 저항보다 살 궁리를 먼저 하는 게 ‘중국인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코로나19는 우한을 넘어 중국 전역과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되었다.
 
이상해 보이는 시민들. 중국인 눈에 ‘포섭된 시민’으로 보이는 일본인. 전염병 지역에서 도망부터 치는, 우리 눈엔 공공의식이 부족해 보이는 중국인. 그런데 행동양식은 달라도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배후엔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 regimes)가 있고, 그들의 행동양식은 권위주의 정권에 적응하는 몸짓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전형적 권위주의, 일본은 무늬만 민주주의인 전형적인 ‘꼰대 권위주의’로 손꼽힌다. 두 나라 정부는 평시엔 단호하고, 누가 사소한 결점이라도 지적하면 윽박지르고, 자화자찬하면서 자신의 옳음에 대한 지나친 확신을 과시한다.
 
한데 이들은 코로나19 앞에선 사태를 은폐하고, 진실을 통제하고, 상황을 오판하는 모습을 연일 노출했다. 언론은 통제했지만 퍼져나가는 바이러스는 통제하지 못했다. 그렇게 으스대던 권위주의 정권의 허무한 실력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번 경험으로 우리 이웃 시민들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있다. 좀 더 공공성으로 무장된 현대적 시민성의 재탄생 쪽으로 말이다.
 
여기까지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의 나라 걱정하다 보니 한국이 어느덧 팬데믹 공포의 진원지로 급부상 중이다. 그러자 “정부의 권위주의적 초기 대응이 문제를 키웠다”며 도처에서 정부 때리기에 바쁘다.
 
한국은 권위주의 정권인가. 한국인은 동북아 3국 중 유독 권위주의 정권을 못 견뎌한다. 시민 손으로 민주화를 이뤘고, 전 정권의 권위주의 행태를 촛불로 탄핵했다. 지금 검찰은 아예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눴고, 이에 법무부 장관이 동지들의 공소장 지키기와 기소 불발시키기에 앞장선 바람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물론 요즘 우리 정권에 자신의 무결점주의와 자화자찬의 욕망이 꿈틀대는 걸로 봐선 권위주의를 동경하는 것 같기는 하다. 하나 진짜 문제는 권위는 없는 쇼맨십과 포퓰리즘 지향성으로 보인다. 우리가 리더십에 기대하는 건 미지의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전문가들이 물샐 틈 없이 방어할 수 있도록 백업해주고, 공무원과 시민들이 경각심을 높여 상황이 관리되도록 하는 것이다. 한데 대통령은 성급하게 ‘조만간 종식’을 입에 올리고, 정치인들은 총출동해 노란 점퍼 입고 허무한 ‘멘트’나 날리는 모습을 뉴스카메라에 담아 올리며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쇼맨십 리더십’만 창궐했다. 우리의 리더십은 ‘실질적 실력’보다 ‘블러핑’에 급급했다.
 
그리하여 알게 됐다. 권위주의 정권이든 쇼맨십 정권이든 위기상황엔 실력이 없다는 걸 말이다. 봄바람이 불고 바이러스가 물러나면, 곧 선거철이다. 경계해야 할 건 권위주의적 정치인만이 아니다. ‘~척’하는 쇼맨십 정치인들도 골라내는 안목이 필요하겠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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