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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함께 창궐한 전염병…‘선한 천사들’이 늘어나길

중앙선데이 2020.02.29 00:20 675호 27면 지면보기

빠른 삶, 느린 생각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지금의 시점에서 여러 사람이 읽게 될 글을 쓴다는 것은 난처한 위치에 놓이는 일이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문제이다. 그것은 큰 재난을 가져온 일이면서,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매일 매시간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다. 침략해 오는 적군에 비교한다면, 그 자리 잡고 있는 위치나 쳐들어오는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적군이어서 더욱 우리의 마음을 산란하게 한다. 전체적으로도 그러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무엇을 조심하고 어디로 가고 누구를 만나고 만나지 않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편하게 놓아둘 수 없다. 칼럼과 같은 글을 쓰면서도 마음은 그것을 떠나기 힘들다. 그렇다고 거기에 대한 대책을 제안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초미의 관심사는 병의 진행이지만, 그에 관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상황적 조건 하나를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해외에 뿌리내린 한국인 700만 명
정치·경제·문화적 국력 커지며
코로나 같은 어두운 면도 깊어져

역사는 평화로 나아가는 과정
공감능력·절제력·감성 등 갖춰
바이러스 대응, 세계가 협력해야

“한국은 경쟁자” 트럼프 ‘기생충’ 견제
 
이 조건이란 세계화라는 현상이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이 과정에 참여하게 되고, 중국을 비롯하여 다른 여러 나라도 그렇게 할 만한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것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다른 여러 함의를 갖는다. 세계화는 물론 그동안에 저절로 일어난 세계적 발전의 결과이다. 그것은 반드시 어떤 의도에 의하여 계획된 결과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자연 현상처럼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만도 없다. 그렇든 안 그렇든 그 현상을 전체적으로 살피고 생각해보는 것은 앞으로의 삶을 전망하는 데에 필요한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 병이 일어난 것도 우한에 다녀온 여행객-한국인이든 중국이든 또는 다른 국적인 인물이든-으로부터 감염된 것이라고 한다. 소개(疏開)해야 할 대상으로 정부가 발표한 우한 거주의 한국인 교민은 700명이었다. (그 상당수가 여러 차례의 전세기로 귀국하였다.) 이에 비슷하게, 일본과 미국도 자국민을 소개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인 그리고 외국인이 중국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중국 전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은 우한 거주인에 비할 수 없게 많을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외국인으로서의 한국인은 물론 오랜 역사의 결과로 중국에 거주하고 중국인이 된 조선족을 포함한 것이 아니다.) 중국 거주인이 많다는 것은 대체로 그들이 중국에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터인데, 그것은 한국의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여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지 외국으로 진출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은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때문일 것이다.
 
해외에 뿌리내린 한국 교포의 수가 700만에 이른다는 것은 더러 들어 온 뉴스이다. 그중 많은 사람들은, 조금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망명(亡命), 전쟁이나 빈곤으로부터의 피난과 같은 동기에서 옮겨 살게 된 역사의 소산(所産)이라고 하겠지만, 최근 정부의 구조 대상이 되었던 중국 거주민의 경우는 나라를 잃고 헤매게 된 유대인들처럼 ‘디아스포라(diaspora·離散)’라고 불릴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해외 진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출이 가능해지는 것은 한국의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말하고, 동시에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러한 국제적 진출을 허용하는 세계사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하여튼 이번 사건으로 하여 느끼게 되는 것은 한국의 국제적 진출의 규모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여 한국의 실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이다. 국제적 환경 내에서의 한국의 경제력 그리고 정치력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그런데 또 주목할 것은, 이러한 실력은 한국 사람들이 경제나 정치의 상황 조건을 널리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이해의 내적인 힘이 성숙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도 지금의 국난(國難)에 나란히 놓기가 어려운 사항이기는 하나, ‘기생충’이 미국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에서도 이러한 힘의 성숙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기술적 진전의 총체적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물을 넓게 섬세하게 또 다양한 관점에서 살필 수 있는 의식이 무르익고 그것이 예술적 감각을 낳고 거기에서 큰 열매가 맺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설에서 ‘기생충’을 비하하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그 말은 복합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 갈등에서 경쟁 상대가 되어 있는데, 하필이면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에서 나온 작품에 아카데미상을 수여하여 그쪽에 힘을 보태주느냐 하는 관점에서 이야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마할 때부터, ‘미국 제일주의’를 국가 정책 목표의 하나로 내걸었다. ‘기생충’에 대한 그의 발언은, 문맥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한국 영화에 ‘우수 외국영화상’을 주는 것은 있을 수 있되, 어찌하여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미국 영화까지도 제치고 ‘최우수 영화상’을 주느냐 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군의 한국 주둔비 분담 요구도, 냉전 체제가 사라진 지금 미국의 한국 주둔은 반드시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그의 인식에 관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의 상승은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발전이지만, 넓은 관점에서 다시 살필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포함하는 세계화의 현실적 의미이다. 세계가 전부 더욱 가까워지고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오늘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명암을 가진, 그것도 깊은 명암을 가진 사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크게 그리고 길게 볼 때, 또는 그 밝은 면에 주목할 때, 그것은 보다 밝은 미래를 향한 역사의 진전을 생각하게 하는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의 세계는 우선 보다 평화로운 세계의 도래를 말한다. 미국의 정치인이고 정치 평론가였던 웬델 윌키의 책에 『하나의 세계(One World)』라는 것이 있었다. 그 이름이 나타내는 바 세계 평화에의 희망은 아인슈타인, 간디, 네루와 같은 세계적 저명인사들의 동조를 얻었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성립하는 데에 일조(一助)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발언은 해빙 후 분단 없는 한반도의 평화를 희망했던 김기림과 같은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여기에서 하나의 세계란 연방 체제를 이룬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연방 체제는 일찍이 세계 평화를 위하여 하나의 세계를 생각했던 칸트도 현실적인 방안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물론 이 연방 체제로서의 하나의 세계가 어떻게 다원적인 뿌리를 가진 인간의 여러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내는 체제로 구성될 수 있는가는 앞으로 진전을 기다려 보아야 할 사안일 것이다. (여러 국제적 연합 기구 같은 것도 그러한 체제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이번 역병에서도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기구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생각하고 시행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칸트, 세계 평화 위해 하나의 세계 꿈꿔
 
평화로운 세계를 말할 때, 하나 더 거론할 수 있는 것은 미국 하버드대의 지식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저서 『우리 본성의 보다 선한 천사들(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2011)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수천 년이라는 긴 시간의 관점에서 인간 역사를 볼 때 그리고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도 보다 나은 미래, 전쟁이나 사회 내에서의 폭력이 줄어지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 인간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인간 본성이 양면을 가진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역사가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평화 지향인데, 법치 국가의 발달, 국가에 의한 폭력 수단의 독점과 통제, 상업과 교역의 발달과 같은 일들이 평화를 촉진하는 평화를 확장하는 현실적 동인이다. 동시에 교육과 이성적 능력의 진보도 여기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제목에 나와 있는 ‘인간성의 보다 선한 천사들’이라는 말은 링컨 대통령의 연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핑커는 그 내용으로서 인간의 네 가지 품성으로 공감 능력, 자아 절제력, 도덕적 감성, 이성을 든다. 역사의 자연스러운 진전에서 얻어진 것이 평화이지만, 그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호하고 신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품성을 계발하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천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세계 질서는 어떤 것일까?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공동 대책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또는 개인적인 입장으로도, 공감, 자제력, 도덕의식, 이성을 갖춘 인간의 그에 대한 대책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이 어떤 것이든, 지금의 우리 사회의 반응과 대책은, 적어도 주어진 급박한 조건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책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있고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도덕적 책임의 관점이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견해들도 있다. 선한 천사의 보다 적극적인 간여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역병이 진정된 다음에 드러날 사회적 경제적 훼손을 처리하는 데에 더욱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초점을 줄여 한 가지만 말하면, 절실한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조속한 개발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리고 전반적인 과학적 연구가 그것을 뒷받침하여야 한다. 병원균의 숙주는 야생 동물이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경로로 인간에게 전파되는지는 아직도 찾아내야 할 과제라고 한다. 병균이 있어도 증상을 보이지 않고 의식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증상 없는 환자들에 의한 병의 전파로 인하여 1년 안에 전 인류의 40~70%가 환자가 되리라는 관찰도 나온다(하버드대 전염병학 교수 마크 립스티치). 이런 여러 점에서 코로나바이러스는 새로운 과학적 연구의 과제이다. 과학에는 밝혀야 할 문제들이 아직 많고 인간의 지적 발달도 보다 진전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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