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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코로나19에 급등한 환율, 소환된 ‘사스의 기억’

중앙일보 2020.02.29 00:03
2003년 사스 당시 두달간 1200원대… 이라크 전쟁이 불확실성 더해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전염병과 환율

 
세균을 통해 전염되는 매독(syphilis)은 유럽에서 국가별로 부르는 명칭이 달랐다.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를 보면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질병, 폴란드에서는 독일 질병, 독일에서는 프랑스 질병,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질병,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 질병이라고 불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병원체(病原體)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는 전염병은 두려움을 낳고 혐오를 유발한다. 전염병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해지면 그 발원지와 경로를 추적하기 바쁘다. 그 발원지가 외국이라면 그 국가를와 국민을 기피하기 십상이다.
 

중국發 전염병은 전세계 경제에 악재 

중국의 우한에서 발원하여 연초부터 급속히 확산된 코로나19는 초기에 ‘우한 폐렴’으로 지칭됐다. 그러자 청와대가 나서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공식 명칭이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는 우한을 넘어 중국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과 비난을 방지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이미 2015년 이러한 낙인효과를 우려해 질환명에 지역명을 넣지 않도록 권고한 바 있다.
 
코로나19의 급속한 전파에 금융시장도 1월 21일을 기점으로 요동 쳤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전염병 하나에 환율이 이렇게 급등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물론 전쟁이 발발한 것도 아니고 국가 디폴트(default)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이 발달하기 전인 19세기까지는 전쟁 와중에 총탄에 사라진 인구보다 질병과 전염병에 죽은 숫자가 더 많았다. 잡히지 않는 전염병의 불확실성은 금융시장에 분명한 악재다. 초기 대응이 늦었던 중국이 단기적인 경제 충격을 감수하고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각국도 중국에 출입한 외국인의 입국을 불허하는 등 공조에 나섰지만 감염 확산을 막는 데는 아직까지 역부족인 듯하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과 물류의 이동 뿐 아니라 생산활동에도 차질을 빚어, 결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코로나19가 급속 확산하면서 전세계 소비시장의 큰 손인 중국인 관광객의 이동과 중국 기업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2019년 중국의 GDP 성장률은 6.1%를 기록했다. 하지만 2020년 1분기가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2020년 연간 성장률도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감염 확산을 막기하기 위해 중국 내 재택근무가 증가했고, 스타벅스의 중국 내 4000개 매장 중 절반은 휴업중이다.
 
국내에서도 소비 심리가 위축되었음은 물론이고, 중국 내에서 생산되는 부품 의존도가 높은 기업의 생산 활동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전세계 생산 네트워크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중국에서 생산 활동이 마비된 것은 전세계 경제에 악재임이 분명하다. 1년 넘게 다투던 미국과 중국의 해빙 무드로 낙관론에 올라타려던 금융시장이 놀라, 경기(驚氣)를 일으킨 이유다. 1월 중순 서울외환시장에서 장중 1150.6원까지 하락하며 1150원을 목전에 뒀던 원달러 환율은 돌발 변수 출현에 급등하여 2월 첫 거래일에 1200원에 육박했고 이후로도 레벨을 크게 낮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원달러 환율의 1200원 돌파를 촉발했던 위안달러 환율도 2월 들어 7위안을 넘나들고 있다.
 
코로나19는 2003년 창궐했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많이 비교된다. 병원체가 박쥐에서 주로 발견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인 것, 발원지가 중국이라는 점, 발원지로 지목된 우한의 수산시장에 박쥐 등 야생 동물이 식용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연상 작용을 일으키기 쉬운 고리다.
 
원달러 환율은 사스 창궐이 최고조를 향해 가던 2003년 3월 초, 급등한 뒤 1200원을 두 달간 상회했다. 하지만 당시 외환시장은 사스의 독무대가 아니었다. 그 시기에 이라크전이 발발했다. 개전(開戰) 가능성을 의식한 시장 심리가 중첩되어 환율 상승에 탄력이 붙었다. 2003년 3월 20일 미국군과 영국군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원달러 환율은 당일에 2003년 연중 최고점을 찍었다. 당시 장중 최고치는 1264원이었다. 경제난에 허덕이던 이라크는 전쟁 물자도 턱없이 부족해 사실상 항전 의지가 없었고, 전쟁은 금방 끝이 났다. 침공 2주 만인 4월 9일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함락되자, 시장은 불확실성 해소로 받아들였고 환율도 이를 계기로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의 코로나19를 사스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상승했다. 전쟁은 없다. 정보 은폐에 대한 의혹은 지금도 불식시키지 못했지만, 정보를 통제하던 중국 당국이 전염병 창궐을 공식 인정하기까지의 시차에도 차이가 있고 전파력도 다르다. 다만 사스의 확진자 수를 훌쩍 넘을 정도로 코로나19의 전염성이 상당히 강하지만 초기 추정한 치사율은 2~4%에 불과해 사스 10%, 메르스 30%에 비하면 다행인 수준이다.
 
금융시장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사스 당시 중국의 강력한 경기 부양정책으로 단기 충격을 딛고 글로벌 경제가 강하게 반등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초기 단기 급락 이후 강한 랠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원자재 시장의 온도는 확연히 다르다. 전세계 구리의 절반 가까이를 소비하고 있는 중국發 수급 충격이 만만치 않다. 구리 가격과 원유 가격은 연초 대비 각각 10%, 20% 안팎의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국제 금 가격(달러 표시 가격)은 5% 가까이 상승하여 지난해 고점을 가뿐히 넘어섰다.
 

미국시장으로 자본 쏠림 더 심해져 

주식시장과 원자재 시장 중 하나는 잘못 짚은 걸까? 물론 주식시장의 강세는 기술주 등 특정 테마가 주도한 탓도 있을 것이다. 또 중국발 충격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으로 자본이 더욱 몰리면서 미국 증시를 더욱 밀어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전 세계 외환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유로달러 환율이 3년래 최저치로 하락한 것도 미국으로의 자본 쏠림을 방증한다. 하지만 현재 중국이 전세계 경제와 생산 네트워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보건대 주식시장이 성급하게 낙관론에 올라탄 것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외환이코노미스트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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