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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이 장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중앙일보 2020.02.29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쿠엔틴 타란티노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다룬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을 보자.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히틀러를 무참한 방식으로 죽여 버린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영화적 허구가 뒤엎어 버리는 것이다. 맨슨 패밀리의 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을 다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하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그날 밤의 잔혹했던 살인마들은 테이트(마고 로비)의 옆집에 사는 배우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매니저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에 의해 말 그대로 ‘박살’이 난다. 타란티노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영화라는 픽션의 힘을 빌어 지워 버리는 것이다.
 
원스어폰타임인할리우드

원스어폰타임인할리우드

이런 과감한 작업을 통해 감독은 샤론 테이트에게서 ‘비운의 희생자’ 이미지를 벗겨내고, 대신 젊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유망했던 ‘배우 테이트’를 보여준다. 그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은, 테이트가 자신의 영화 ‘레킹 크루’(1969)가 상영되는 극장을 찾는 장면이다. 여기서 테이트 역을 맡은 마고 로비는 극장에 앉아, 실제 테이트가 등장하는 영화 ‘레킹 크루’를 본다. 이 장면은 묘한 울림을 준다. 마고 로비의 시선을 통해 대면하게 되는, 테이트의 진짜 얼굴. 영원히 그저 가십의 주인공 정도로 치부되었을 샤론 테이트라는 배우는, 어쩌면 이 장면을 통해 구원받은 셈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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