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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라드 칼럼] 북한에 코로나19 퍼지면 체제 위기 맞을 수도

중앙일보 2020.02.28 00:40 종합 29면 지면보기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 상황은 어떨까? 코로나19가 북한에 침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공식 발표를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 감염 사례가 있는데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해당 지역의 관리들이 은폐하고 보고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단 시약이 부족해, 감염이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했는데도 의사가 이를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의료 체제 붕괴해 확산 못 막아
김정은 정권이 흔들리게 될 것

확진자가 발생했든 아니든, 북한은 지난달 28일 자 노동신문에서 “국가 존망의 문제”라고 언급할 만큼 코로나19 감염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북한에 코로나19가 침투하면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급속하게 확산해 높은 치사율을 나타낼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북한 주민들은 영양실조로 인해 면역력이 약하고, 북한에는 의료품이 부족하고 격리 시설도 매우 낙후돼 있다. 최근 평양의 러시아 대사관은 북한의 외국인 격리 조치로 인해 직원들이 온수가 나오지 않는 차가운 방에 격리됐다고 항의했다. 외국인조차도 이런 대우를 받았다면 북한 주민들이 격리되면 훨씬 열악한 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리고 북한의 형편없는 의료 서비스 때문에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전파될 것이다. 혹자는 북한이 이 지경까지 이른 원인이 국제적인 대북제재에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대북제재가 실행되기 한참 전부터 북한의 의료 체계는 이미 붕괴해 있었다. 2009년 북한에서 필자가 들른 어느 시골 약국에는 약사가 환자에게 줄 약품이 전혀 없었다. 약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환자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며 위로하는 것뿐이었다. 그 무렵에 이미 북한 병원들은 빈 맥주병을 재활용해 살균 용기 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전염병 발병은 인도주의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지만 정치적 문제도 일으킬 수 있다. 우선 북한 정부가 코로나19 차단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 만큼, 감염 확진자가 발생하면 정부의 바이러스 차단 실패를 증명하고 만다. 또한 북한 보건체계의 참담한 실상을 드러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크게 분개할 것이다.
 
감염 확산은 정치 활동에 큰 제약을 가져올 것이다. 북한은 이미 2월 8일의 건군절 기념 열병식을 취소했고, 4월 12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평양 마라톤 대회도 취소했다. 질병에 대한 대처 자체가 정치적 난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북한은 이미 다량의 의약품을 요청했고, 그들이 요청한 의약품을 얼마나 받았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받을 예정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북한은 해외 전문가 입국 여부를 결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주체사상과 충돌한다. 북한은 1990년대에 극심한 대기근으로 외국의 식량 지원이 절실했을 때조차도 외국인들의 입국을 극히 꺼렸다.
 
바이러스 확산은 북한의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안길 것이다. 이미 중국 국경을 폐쇄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수입에 의존했던 품목들은 가격이 인상되고, 국경 무역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많은 주민이 수입을 잃게 된다. 주민들이 생필품을 구하는 ‘장마당’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북한 정권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염병 확산이 군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북한 군인들은 식량도 부족하고 일반 주민들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다수가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큰 부대에서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확산을 차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군인들이 앓거나 사망하면 군사력도 약화하지만 무엇보다 군인들의 분노를 사게 되고, 이는 북한 정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독재 정권에서 재난 대처가 잘못되면 파국적 결과를 낳는다. 소련 주민들은 정권의 거짓말과 탄압을 수십 년간 참았지만 결국 체르노빌 사건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5년 뒤 소련은 붕괴했다.
 
존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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