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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선] 나라 전체가 세월호다

중앙일보 2020.02.28 00:22 종합 28면 지면보기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대한민국이 멈췄다. 법원이 줄줄이 휴정에 들어가고 성당 미사가 중단됐다. 학부모 출입을 막은 졸업식에 이어 전국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 개학이 미뤄졌다. 이러니 영화 보고 맛집 가는 소소한 즐거움은 언감생심, 당연하게 누렸던 거의 모든 일상이 마비된 채 친지 방문이나 해외여행 등 국내외 이동의 자유마저 제약받으며 국민 모두가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부 오판에 국민·의료진 고통
중국 준 방호복 대구엔 없어
무능 사죄없이 “국민 탓”이라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더디게 늘어나는 서울도 이럴진대 사실상 방역망이 무너져버린 대구는 지금 얼마나 무섭고 절망스러울까. 무시무시한 전염력에도 불구하고 병상 부족으로 집에 머무는 감염자가 수백 명을 넘어섰고 의료진은 최소한의 보호장구도 확보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폭격이라도 맞은 듯 텅 빈 도로, 이와 대조적으로 마스크 한장 구해보겠다고 대형 마트를 휘감은 긴 줄…. 나라 잃은 난민도 아니고, 세금 꼬박꼬박 내는 우리 국민이 대체 왜 이런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지 답답하고 화가 난다.
 
우리는 중국이 아니다. 중국에 조공 바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속국은 더욱 아니다. 그런데 왜 치료 대신 입막음으로 속절없이 자기 나라 국민 희생시킨 중국의 전철을 애써 자청해서 밟고 있나. 우리 국민 쓰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마스크와 방호복을 왜 여전히 중국에 못줘 안달인가.
 
애초에 이럴 일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에다 신종플루와 메르스를 거치며 감염병 대응 경험까지 쌓은 의료진들은 치료제 없는 이 병에서 우리 국민을 보호하려면 진원지에서 들어오는 감염원을 최대한 차단해 우선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간곡히 청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시진핑 방한에 목을 맨 청와대와 정부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러곤 국민에게 예정된 행사를 그대로 진행하고 평소처럼 외부 식당을 이용해 회식하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전문가 의견에 귀를 닫아 국민은 감염원에 다 노출시켜놓고, 청와대는 진작부터 물샐 틈 없이 철저하게 소독했다. 그 시절 무고한 학생들에게 “가만있으라”고 권하고는 혼자 유유히 빠져나갔던 세월호 선장처럼.
 
이런 몰염치가 없다. 중국 눈치 본다고 거센 시민 저항에 몰렸던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도 “의료진을 위해 마스크 재고를 비축할 필요가 있다”며 공무원에겐 마스크 금지령을 내렸다. 이런 당연한 판단조차 지금 이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다.
 
세월호 때 정부, 아니 정확히는 청와대의 부재를 분초 단위로 추궁하던 지금의 집권 세력은 지역 감염이 전국적으로 확산해 연일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이 시국에도 한 달 넘게 마스크 수급 하나 제대로 해결 못 하는 철저한 무능으로 무고한 국민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중국엔 호기롭게 방호복 10만 개를 넘겨주더니 정작 대구의 방역 현장 의료진더러는 ‘방호복 대신 가운 입고 진단 하라’는 지침을 내린다. 어쩌다 우리는 정부가 아닌 가수 아이유가 방호복 등 부족한 물품에 쓰라며 의사협회에 1억원 전달하는 모습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하나. 이쯤되면 국가는 왜 필요하냐는 근본적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무능하면 입이라도 닫는 게 도리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이 정부 사람들은 불필요한 말로 화를 더 돋운다. 보건의료에 대한 전문성은커녕 문재인 팬클럽인 담쟁이포럼 발기인 경력을 발판으로 장관 자리를 차지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느라 너무 나갔다. 국회에서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 한국인이 중국에 갔다가 들어오면서 감염을 가져온 것,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 최대 원인”이라며 공식적으로 국민 탓을 했다.
 
정부 잘못을 국민 탓으로 돌리며 외국에서 우리 국민이 수모를 당해도 할 말 없게 만드는 건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현지 경찰에 맡겨야 할 헝가리 유람선 사고에는 대통령 눈치 보느라 버선발로 달려갔던 강 장관은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아무 고지도 못 받고 비행기에 탄 채 쫓겨나고 수용소에 갇히고, 모멸적 차별을 감내하며 조롱당하고 있는 지금 한가하게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 연설이나 한다.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폭증했다”고 내부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면서 말이다.
 
청와대는 국민 안위에는 아랑곳않고 중국만 바라보고, 장관들은 그런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으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문 대통령 탄핵 청원이 100만을 넘기며 나라 전체가 세월호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세월호의 비극은 그때 한번으로 족하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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