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월호 참사 당일…배 기우는데 “승객 안정시켜라”는 해경 지휘부

중앙일보 2020.02.27 19:27
세월호 참사[연합뉴스]

세월호 참사[연합뉴스]

총 304명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 당일, 해경 지휘부가 승객의 퇴선이나 구조 대신 '승객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라’는 등 엉뚱한 지시만 내린 정황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참사 이후 적절하게 ‘퇴선 방송’ 지시를 했던 것처럼 조작한 공문서를 만들어 국회 질의 등에 대응하려 한 점도 조사됐다.  

 
대검찰청 산하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단장 임관혁)이 지난 18일 기소한 해경 지휘부 11명의 공소장에는 사고 당일의 상황이 낱낱이 담겼다. 특수단은 해경 지휘부에 대한 법적 책임을 크게 3가지로 나눠봤다. ▶참사 당시 승객의 퇴선 유도를 지휘하는 임무를 소홀히 했고 ▶세월호와 충분히 교신을 유지하지 않았으며 ▶참사 이후 ‘퇴선 방송’ 지시를 했던 것처럼 조작한 공문서를 만들어 국회 질의 등에 대응하려 했다는 것이다.

 

배 기울었는데…“안정시키라”

세월호는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34분쯤 약 52도로 기울어 복원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게 특수단의 판단이다. 그러나 해경 지휘부는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 지시만 내렸다. 특히 특수단은 김석균 전 해경청장과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이 세월호가 4층 좌현 갑판까지 침수돼 복원력을 완전히 상실한 뒤인 오전 9시53분 쯤 “여객선에 올라가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적었다. 
 
퇴선 조치 등도 뒤늦었다. 공소장에 따르면 6분 뒤인 오전9시 59분에서야 구조를 위해 현장에 도착한 김경일 123 정장에게 김문홍 정 목포해경서장이 퇴선 조치 등을 지시했다. 이 때는 이미 구조세력의 선박 내 진입 및 퇴선유도에 의한 구조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이었다. 심지어 김 정장은 사고 상황에서 현장지휘관으로 훈련을 받거나 실제 지휘한 경험도 전무했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그의 평소 주된 업무는 불법 어업 단속이었지만, 세월호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현장지휘관이 됐다.

 
이에 대해 특수단은 “퇴선 유도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 지시를 내리거나 현장 구조 세력에 대한 지휘‧통제를 하지 못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특수단은 김 전 해경청장과 김 전 서해청장, 김 전 서장 등 해경 지휘부 10명에게 구조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2학년 교실에 희생자들의 위로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메모들이 붙어 있다. [중앙포토]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2학년 교실에 희생자들의 위로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메모들이 붙어 있다. [중앙포토]

 

구조대 안왔는데…교신도 엉망진창

세월호 전복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전달받았는데도 해경이 직접 세월호와 교신해 승객들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정황도 드러났다. 공소장에 따르면 목포해경 상황실은 오전 8시54분부터 세월호 승객과 선원 등으로부터 다수의 122신고를 접수했고, 해경 상황실 역시 목포해경 상황실 등으로부터 관련 교신을 받았지만 적절히 후속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특수단의 판단이다.  
 
특히 유연식 전 서해해경청 상황 담당관은 진도 VTS가 승객 비상탈출 관련 문의를 하자 “선장이 결정할 사항이고,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일축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4일째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4일째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참사 이후에도…책임 회피만 급급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서장은 2014년 5월 3일 당시 목포해경 소속 3009함 이모 함장(경정)에게 자신이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오전 9시 5분쯤 퇴선 명령을 내렸다는 허위 내용을 적은 것을 건넸다. 비난을 모면하고 국회 질의와 조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게 검찰 판단이다.

 
김 전 서장의 허위 조작 문서 작성 지시를 받은 이 전 함장은 담당 실무자(순경)에게 “사고 초기 퇴선명령 기록이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실무자가 “그런 기록이 없다”고 거듭 답하자 이 전 함장은 결국 김 전 서장에게 받은 메모를 실무자에게 건넸다. 이 전 함장은 해당 순경에게 “서장은 사고 초기 123정에 퇴선방송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니 사고 초기부터 서장이 퇴선 명령을 했다는 내용으로 정리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서장은 이런 허위 내용이 담긴 ‘여객선 세월호 사고관련 자료 제출보고’ 문건을 결재, 해경 본청 경비과로 보냈다.

 
특수단은 김 전 서장에게 구조 방기 혐의에 더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 전 함장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단장을 맡은 임관혁 수원지검 안산지청장.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단장을 맡은 임관혁 수원지검 안산지청장. [연합뉴스]

 
한편 특수단은 세월호 참사 당일 해경이 물에 빠진 학생 임모 군을 헬기로 신속하게 옮기지 않았다는 의혹과 세월호 폐쇄회로 CCTV의 DVR(CCTV 영상이 저장된 녹화장치) 조작 의혹 사건 등에 대해서는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