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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500만장 풀었다는 마스크, 도대체 어디서 파나요?”

중앙일보 2020.02.27 17:14
 

마스크 긴급 수급했다더니…사라진 마스크

 
27일 서울 강서구 약국에 '마스크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 대부분의 약국에서 마스크 구입이 불가능했다. 문희철 기자.

27일 서울 강서구 약국에 '마스크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 대부분의 약국에서 마스크 구입이 불가능했다. 문희철 기자.

 
“오늘만 수백만 장이나 풀렸다던데, 정작 구입할 수가 없네요.”
 
정부 ‘마스크 수급 안정 추가조치 태스크포스(TF) 회의’가 27일 오후부터 공적 판매처를 통해 마스크를 공급하기로 했다. 비축해뒀던 마스크를 지난 24일 소진한 기자도 이 소식을 듣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미 지난 21일 온라인 쇼핑(이커머스·e-commerce)를 통해서 1회용 마스크를 주문했지만, 벌써 일주일째 ‘출고지연’ 메시지만 보면서 마스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마스크. 일주일째 출고 지연으로 배송되지 않고 있다. 문희철 기자.

21일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마스크. 일주일째 출고 지연으로 배송되지 않고 있다. 문희철 기자.

27일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인터넷쇼핑몰 ‘농협몰.’ 여기서 1회용 마스크를 구입하려면 회원가입을 하고 온라인상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접속하자 3만6400여명이 마스크를 구입하려고 대기 중이었다.  
 
무려 10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온라인보다 발품을 팔기로 했다. 장시간 기다려서 마스크를 구입하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주문한 마스크가 언제 도착할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또 다른 온라인 쇼핑몰에서 21일 주문했던 마스크도 못 받는 상황에서 배송 지연도 감안했다.
27일 농협 온라인 쇼핑몰. 마스크를 구입하려면 10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뜬다. [농협 캡쳐]

27일 농협 온라인 쇼핑몰. 마스크를 구입하려면 10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뜬다. [농협 캡쳐]

 

21일 주문한 마스크는 ‘함흥차사’ 

 
일단 가까운 하나로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하나로마트는 정부가 마스크를 풀겠다고 지정한 공적 판매처 중 하나다. 서울 강서구 하나로마트가 입점한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하 1층 하나로마트와 같은 건물 1층을 사용하는 농협은행은 ‘마스크를 안 판다’는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었다. 
 
정부는 서울·경기 외 지역 농협에 마스크를 우선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마스크를 구입하려고 서울 소재 농협을 찾는 사람도 종종 있는지, 다수의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저희 지점은 마스크를 판매하지 않습니다’는 내용이었다. 
27일 방문한 하나로마트. 마스크 구입은 불가능하고 ‘아직 마스크 제조업체와 협의 중’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문희철 기자

27일 방문한 하나로마트. 마스크 구입은 불가능하고 ‘아직 마스크 제조업체와 협의 중’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문희철 기자

하나로마트에서도 마스크는 없었다. 하나로마트 관계자는 “아직 마스크 제조업체와 농협 하나로유통의 협의가 끝나지 않아서, 매장에 마스크가 공급되지 않는다”며 “오전에도 수십 명이 마스크를 구입하겠다고 문의해서 아예 공지문을 붙여놨다”고 설명했다. 공지문에는 ‘아직 마스크 제조업체와 협의 중’이라며 ‘협의 완료 후 마스크를 공급하겠다’고 써있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우체국도 있다. 우체국 역시 정부가 지정한 공적 판매처다. 정부는 이날부터 읍·면지역에 소재한 1400여개 우체국에 마스크를 공급할 계획이었다. 서울 소재 우체국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서 우체국은 ‘여기서는 판매하지 않는다’며 ‘온라인 우체국 쇼핑몰에서만 판매한다’는 공지문을 붙여뒀다.  
 
27일 서울 강서구 한 우체국. 정부가 이날부터 판매하기로 한 마스크를 온라인에서만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문희철 기자.

27일 서울 강서구 한 우체국. 정부가 이날부터 판매하기로 한 마스크를 온라인에서만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문희철 기자.

 
이번에는 약국으로 향했다. 정부는 오늘부터 전국 약국에 매일 1개 약국 당 100개씩 마스크를 푼다고 발표했다. 거주하는 동네 상가에는 약국이 총 4개다. 이중 3개는 1회용 마스크가 하나도 없었고, 한 군데는 소아용 마스크만 있었다.  
 
동네에서 성인용 마스크를 구입하지 못하자, 버스로 서너 정거장 거리에 있는 인근 마을로 이동했다. 여기 위치한 3개의 약국에도 역시 마스크는 없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한 약국의 약사는 “오늘 아침에만 해도 대한약사회에서 안내 문자를 돌렸는데 3월 2일 이후 마스크 공급이 가능할 것 같이 말하다가, 오후에는 또 협상이 결렬됐다는 말도 들리더라”라며 “어차피 근처 약국에 들러도 마스크를 못 구하니,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와 보라”고 권유했다. 
27일 방문한 약국. '마스크는 3월에 나온다'고 안내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27일 방문한 약국. '마스크는 3월에 나온다'고 안내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어차피 근처 가도 못 사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버스로 두 정거장을 이동해 또 다른 상가를 방문했다. 이 동네 상가에는 약국이 3개였다. 여기서 만난 한 약사는 “아침에 온 손님이 마스크를 파느냐고 물어서 ‘없다’고 했더니, ‘나는 마스크가 있다’고 자랑하고 가더라”고 말했다. 
 
이 약사는 그 손님을 “동네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며, 정부가 공적 판매처에 마스크를 공급한다는 소식을 듣고, 인근 물량을 파악하기 위해서 나온 마스크 도매상으로 추정했다.
이 약국은 1회용 마스크는 판매하지 않고 방한용 마스크만 재고가 있었다. 문희철 기자.

이 약국은 1회용 마스크는 판매하지 않고 방한용 마스크만 재고가 있었다. 문희철 기자.

2시간 동안 총 10개 약국을 샅샅이 뒤진 결과 10번째 방문한 약국에서 마스크를 발견했다. 정부가 풀었다는 마스크는 아니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마스크 재고가 남아있었다. 평균 0.4μm 크기의 미세먼지 입자를 94% 차단하는 KF94등급 마스크였고, 판매가격은 4000원이었다. 
 
이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는 “우리는 다른 약국과 달리 그동안 손님에게 딱 1장씩만 판매한다는 원칙을 지켜서 아직 재고가 있다”며 “마지막 4장이 남았는데, 이걸 (기자가) 구입하면 이제 3장이 남는다”고 말했다. 
 
기자 뒤에서 활명수 한 박스를 들고 계산을 기다리던 손님이, 약사가 든 마스크 3장을 보고 “그 마스크 전부 제가 살게요”라고 말하자, 이 약사는 다시 한 번 ‘1인 1장 판매한다’는 원칙을 설명해야 했다.  
 

“마스크에 소독제 뿌리면서 버티세요”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약국은 마스크가 품절이고 재입고일도 미정이라고 안내했다. 문희철 기자.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약국은 마스크가 품절이고 재입고일도 미정이라고 안내했다. 문희철 기자.

 
기자와 그 손님이, 2장 남은 마스크를 각각 한 장씩만 더 팔면 안 되겠느냐고 애원하자, 약사는 완곡하게 거부하면서 “약사로서 권유할 말은 아니지만, 마스크에 소독제를 뿌리면서 사용하면 1장을 3일 정도 사용해도 괜찮다”고 했다. 이어 “일단 이 마스크로 3일 동안 버티다보면 정부에서 마스크를 풀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정부가 시행한 마스크·손소독제 긴급 수급 조정 조치에 따르면, 이날 약국·우체국·농협 등 공적 판매처에는 하루 500만장의 마스크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3시간 동안 발품을 팔며 방문한 12개 공적 판매처에서는 정부가 보급한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었다. 그나마 1개 매장이 엄격하게 재고를 관리한 덕분에 마스크 1장을 구입할 수 있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27일 오후 중앙일보 기자가 방문한 10개의 약국. 정부가 이날부터 보급한다던 마스크는 없었다. 문희철 기자.

27일 오후 중앙일보 기자가 방문한 10개의 약국. 정부가 이날부터 보급한다던 마스크는 없었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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