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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만능시대…그러나 구닥다리 플랫폼이 더 먹히는 당구계

중앙일보 2020.02.27 10:00

[더,오래]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13)

대중의 선호에 가장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것이 사업의 성공공식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확실한 대세로 떠오르는, 인공지능(AI) 기반의 기술 혹은 앱 형태의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에 넘쳐난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당구장에도 AI를 접목한 제품과 앱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의 현재 위치와 가까운 당구장 찾기, AI 기반으로 최적의 당구공 가는 길을 표시해주는 기능, 당구 매칭 앱 등 이전에는 상상에만 그친 혁신적이고 기발한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그런데도 시장 반응은 미지근한데, 그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시장을 형성하는 플레이어인 당구장 주인의 특성 파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무조건 최신기술이나 SNS 기반의 제품이 만능열쇠처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업계 특성에 맞는 방식이 존재한다. 최소한 당구장 업계만큼은 그렇다.
 
지난달 우리는 당구장 사장들이 모여 있는 포털 기반의 커뮤니티를 인수했다. 혹자는 이런 선택에 ‘무용지물’, ‘한물간 형태의 플랫폼’이라는 평을 내놓기까지 했지만, 난 확신하고 있다. 필드에서 몸소 부딪히면서 느낀 당구장 사장의 특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에서 나오는 일종의 자신감이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당구장에도 결국 AI를 접목한 제품들이 시장에 나오고 있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의 출시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사진 Pixabay]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당구장에도 결국 AI를 접목한 제품들이 시장에 나오고 있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의 출시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사진 Pixabay]

 
당구장 사장 특성상 최신 앱보다는 포털 기반의 커뮤니티가 더 적합하다. 우리의 비즈니스 타깃은 밀레니얼 세대가 아닌, 한번 몸에 밴 습관을 쉽게 바꾸기 힘든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바일로 손쉽게 구장 운영에 필요한 음료수 등을 새벽배송 받아볼 수 있다고 이야기해도 가까운 대형마트를 간다. 본사차원에서 제휴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 구장주들 대부분이 해당 앱을 다운로드 받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아 불발로 끝났던 적이 허다했다.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현재 유니콘으로 불리는 모텔 플렛폼 야놀자의 출발은 인터넷 포털 기반 커뮤니티였다. 시장에선 내 지식이나 기술보다도 소비자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 우리에겐 존재했다. 그래서 진입장벽이 낮은 방식으로 그들을 묶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구조여야 했고, 전환 비용이 낮아야 했다. 그들에게 낯선 새로운 플랫폼 출시보다는 기존의 것에서 우리의 노력으로 활성화 여지가 충분히 있어 보일 포털 형식의 커뮤니티 인수가 적합했다.
 
우리는 앱 기반의 플랫폼보다는 커뮤니티 기반으로 구장주들 상호 간의 실질적인 서비스 이용을 가능하게 했다. 당구대 설치·수리기사 인증제를 도입해 해당 지역 구장주들끼리 묶어서 작업 의뢰를 할 수 있게 해 비용절감을 기대할 수 있었다. 당구용품 거래도 일정수준 등급 이상의 회원에게만 오픈하는 폐쇄몰을 운영해 저렴한 가격대의 공동구매가 가능하도록 개편했다. 그랬더니 2주 만에 회원 수가 200명이 늘어났고, 해당 서비스 요청 글이 하루에 20개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비즈니스 타깃은 밀리니얼 세대가 아닌, 한번 몸에 밴 습관을 쉽게 바꾸기 힘든 연령대이기 때문에 최신 애플리케이션 보다는 포털 기반의 커뮤니티가 더 적합하다. [사진 Pixabay]

우리의 비즈니스 타깃은 밀리니얼 세대가 아닌, 한번 몸에 밴 습관을 쉽게 바꾸기 힘든 연령대이기 때문에 최신 애플리케이션 보다는 포털 기반의 커뮤니티가 더 적합하다. [사진 Pixabay]

 
이렇게 많은 구장주 회원이 실질적인 혜택 제공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당구장 사장들의 플랫폼을 지향하던 우리에겐 시장의 니즈(수요)를 제대로 알고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런 겸손함 없이 나의 최신 기술력과 트렌드를 강요하니 그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던 셈이었다.
 
전국의 당구장 운영주들이 이곳에 모여 당구장 운영 관련 최신 뉴스를 공유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소통하길 원한다. 실례로 최근 리스 관련 피해를 입은 당구장 주인들을 모아 공동소송을 준비하고 국민청원을 내는 과정에서 당구장 사장 커뮤니티가 크게 한몫 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같은 목적과 의도를 가진 회원이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강점이다.  
 
당구 산업의 주인공인 구장주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을 수만 있다면, 산업 리딩이 가능할 것이란 희망을 꿈꿔본다. 당구장에도 영원히 변화되지 않을 것 같던 아날로그 주판알이 자취를 감추고 디지털 점수판으로 바뀌듯, 당구장 업계 깊숙이 AI와 최신 기술이 당연시될 시기가 머지않기를 바라본다. 답은 사장이 아닌 시장의 뜻에 달려있으며,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가 원하는 것’에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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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대표 이태호 대표 올댓메이커 대표 필진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 번듯한 직장에 몸을 담그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사표를 내고 창업을 하게 되었다. 당구장브랜드 '작당'을 론칭, 많은 은퇴자 및 퇴직예정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전국 매장 30여개를 개설했다. 점주이자 손님인 시니어 층에 대한 관심이 많은 청년사업가이다. 그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감정, 상황들을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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