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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투쟁, 그리고 얻지 못한 사랑…오페라 ‘나부코’

중앙일보 2020.02.27 08:00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19)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의 근작 『천년의 질문』에 모 대기업 비자금과 관련한 해프닝이 벌어집니다. 대기업의 사위 김태범이 거액의 비자금 관련 자료를 빼돌린 것이지요. 온전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부인에게도 무시당하는 이방인으로 묘사된 대기업 사위가 일종의 반란을 일으켰답니다.
 
1842년 베르디가 발표한 〈나부코〉는 왕권을 둘러싼 배신, 아버지와 딸의 처절한 통곡을 다룬 오페라입니다. 장녀로서 공을 세웠고 당연히 후계를 이을 것으로 기대했던 공주 아비가일이 어미의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동생인 페네나에게 왕권을 빼앗기게 되자, 장녀는 왕을 폐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 여왕에게 정당성이 있을까요, 아니면 부정 되어야 할까요?
 
유명한 합창곡 ‘히브리 노예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이 오페라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입니다. 오늘날 베르디의 명성을 있게 한 최초의 성공작이었지요. 고요한 가운데 긴장이 흐르다가 폭풍 몰아치는 듯 격동적인 리듬에 뒤이은 ‘히브리 노예의 합창’의 멜로디가 흐르고 막이 오르면, 예루살렘의 솔로몬 신전에서 신관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빌로니아 군대가 인근까지 진격해오자 신전 안의 사람들이 동요하고, 제사장 자카리아는 모세의 기적처럼 승리할 것이라며 아리아 ‘해뜨기 전의 밤처럼’을 부르며 그들을 진정시킵니다. 이때 바빌로니아 군대의 선봉장인 아비가일이 쳐들어와 신전을 점령합니다.
 
 
그녀는 포로가 된 장군 이스마엘을 보는 순간 예전에 품었던 사랑을 고백하는데, 인질로 잡혀 와 있던 동생 페네나가 그의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동생을 시기합니다. 이스마엘에게 자신의 사랑을 받아준다면, 포로로 잡힌 히브리인을 석방하는 등 모든 것을 배려해 주겠다고도 합니다. 승전의 공주임에도 사랑을 애원하는 아비가일. 허나, 이미 페네나와 깊은 관계인 이스마엘은 “당신은 나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며 당당하고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드디어 바빌로니아왕 나부코가 말을 타고 신전에 입성합니다. 말발굽 아래 신전이 짓밟히는 것은 히브리인들에게 큰 충격이었지요. 그들이 격렬히 저항하자 하늘을 찌를 듯 분노한 나부코는 저항에 대한 응징으로 신전을 약탈하고 모두 불태우라고 명령합니다. 장면이 바뀌면, 아비가일이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한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모는 노예 신분이었으며, 왕위도 동생에게 계승될 것이라는 비밀문서를 발견한 것이지요. 친딸이 아닌 것도 아닌데, 부왕에게 이용만 당했다며 배신감에 울먹입니다.
 
아비가일은 결국 아비인 나부코와 사랑을 앗아간 페네나를 없애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원통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알고 난 뒤 과격해진 연산군이 연상되는 대목이기도 하군요. 이때 바알교 대사제가 들어와 페네나 공주가 히브리교로 개종하였으며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주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아비가일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대사제의 지원을 얻은 아비가일은 드디어 야심을 드러냅니다.
 
스스로 왕이 된 아비가일. [사진 Flickr]

스스로 왕이 된 아비가일. [사진 Flickr]

 
나부코가 히브리 왕관을 쓰면서, 이제 히브리 신은 사라졌으며 “나는 왕이 아니라 신”이라고 선포합니다. 그 순간 벼락을 맞은 나부코는 쓰러지고 왕관이 떼구루루 떨어지지요. 신성모독의 징벌이 내려진 것입니다. 쓰러진 나부코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떨어진 왕관을 아비가일이 스스로 집어 머리에 씁니다.
 
바빌론의 왕궁에서 아비가일이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아있고, 만백성이 모두 그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나부코가 등장하여 왕관을 쓴 그녀를 보고 분노하지만, 아비가일은 배교한 페네나와 히브리인 모두를 처형하려 합니다.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히브리 노예들은 고향을 바라보며 그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부르고, 자카리아는 그들을 위로합니다.
 
가라, 내 상념이여
금빛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가라,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고 향기에 찬
우리 조국의 비탈과 언덕으로 날아가 쉬어라
요단의 큰 강둑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에 참배를 하라
오, 너무나 사랑하는 빼앗긴 조국이여…
 
 
페네나에 대한 사형집행의 트럼펫이 울리자 나부코는 딸 아비가일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유일한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도 페네나만을 사랑하는 그를 아비가일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답니다.
 
페네나만을 사랑하는 아비를 용서할 수 없는 아비가일. [사진 Flickr]

페네나만을 사랑하는 아비를 용서할 수 없는 아비가일. [사진 Flickr]

 
감옥에 갇힌 나부코는 결국 무릎을 꿇고 유대신께 기도를 합니다. 그가 유대신 모독의 죄를 스스로 참회하자, 제정신이 돌아온 그에게 군사들이 몰려와 칼을 바치며 충성을 맹세합니다. 나부코는 칼을 높이 들며 진군하고, 페네나가 처형되려는 순간 사형을 중지시킵니다. 바빌로니아의 신상이 저절로 무너져 내리자, 신성한 기적이 일었다며 환호하는 히브리인들에게 나부코는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성전을 지으라며 신을 찬미합니다.
 
이때 아비가일이 독약을 먹고 등장하는데, 이미 대세가 기운 것을 감지한 그녀가 스스로를 해친 것이지요. 아비에게 버림받고 사랑에도 실패한 그녀가 용서를 구하며 쓰러지는 가운데 막이 내려집니다
 
오페라 〈나부코〉는 구약성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사실 이탈리아의 독립운동을 촉발한 작품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도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통일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열망을 담은 노래였으니, 이 작품은 우리의 ‘아리랑’ 이나 ‘울밑에 선 봉선화’와 같은 의미이지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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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철 한형철 오페라 해설가 필진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 평생 다닌 직장을 명퇴하고, 100세 시대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 또 고민했다.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는 등 좌충우돌하다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지금은 취미였던 오페라를 해설하며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산다. 종합예술인 오페라에는 우리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일체의 편견 없이 청바지 입고 오페라 산책에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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