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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과 비상’ 박희영 “꾸준한 선수의 모델 될래요”

중앙일보 2020.02.27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박희영은 아버지가 준 퍼터를 쓰면서 박인비처럼 퍼트할 수 있었다고 자랑했다. [사진 이수그룹]

박희영은 아버지가 준 퍼터를 쓰면서 박인비처럼 퍼트할 수 있었다고 자랑했다. [사진 이수그룹]

 
6년 7개월.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빅 오픈에서 개인 통산 3승을 달성한 박희영(33)이 1승을 추가하는데 걸린 기간이다. 그 사이 그는 20대에서 30대가 됐고, 투어 생활도 10년을 훌쩍 넘겼다. 그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인내와 마음을 다잡았던 시간이 지난 뒤 따라온 건 달콤한 결실이었다.

6년 7개월 만의 우승 감흥 여전
Q스쿨까지 거쳐서 다시 정상에
남편 외조 덕 봐 “후배들 어서 결혼”

 
24일 박희영을 만났다. 다음 달 초에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이었던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일정을 앞당겨 25일 출국했다. 몇 달 전까지도 투어 카드를 지킬 수 있을까 걱정했던 그다. 그랬던 그의 위상은 이제 달라졌다. 9일 끝난 빅 오픈 우승이 변곡점이다. 그는 최혜진(21), 유소연(30)을 4차 연장 승부 끝에 꺾고 우승했다. 2013년 7월 매뉴라이프 클래식 이후 정말 오래 걸렸다. 우승으로 2년간 투어 카드 걱정은 덜었다.
 
LPGA 투어 빅 오픈에서 우승한 박희영. [사진 Golf Australia]

LPGA 투어 빅 오픈에서 우승한 박희영. [사진 Golf Australia]

 
우승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여운은 여전히 남았다. 박희영은 “부진한 성적 때문에 TV 중계에 나올 일이 많지 않았다. 챔피언 조에 합류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혜진이, 소연이 플레이 성향을 안다. 그날 안에 승부가 안 끝날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덜컥 우승했다”고 회상했다. 모처럼 우승이라 눈물이 날 법했는데, 당시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는 “멀리서 가족이 보는데, 내가 울면 힘든 감정을 함께 느껴야 할까 봐 일부러 밝게 웃었다”고 말했다.
 
박희영은 꾸준함의 대명사다. 17세였던 2004년 아마추어로 하이트컵 여자골프대회에서 우승했다. 국내에서 4승을 거뒀고, 2008시즌부터 LPGA 투어 무대를 지켰다. 그는 “프로생활 15년 동안 한·미·일 투어에서 한 번도 중도 기권한 적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자부심이 있다고 시련이 비껴가지는 않았다.
 
2013년 LPGA 투어 두 번째 우승 직후부터 시련이 이어졌다. 문제는 고질적인 손목 부상이었다. 박희영은 “한때는 손목이 너무 아파서 샴푸 통조차 들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중간에 쉰다는 게 나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자신을 압박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도 떨어지고 샷도 멀리 보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LPGA 퀄리파잉시리즈 최종 라운드에 나섰던 박희영. 당시 그는 전체 2위로 LPGA 투어 카드를 다시 따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LPGA 퀄리파잉시리즈 최종 라운드에 나섰던 박희영. 당시 그는 전체 2위로 LPGA 투어 카드를 다시 따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박희영은 LPGA 투어 상금 랭킹 110위로 추락했다. 시드를 뺏겼다. 골프를 그만둘까 생각했다. 그는 “프로 입문 동기 중 80%가 그만뒀다. 가정을 이룬 모습이 보기 좋았다. 생각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것도 잠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20년 넘게 쏟은 열정인데, 그렇게 잊히는 건 허무해 그만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박희영은 LPGA 퀄리파잉시리즈에 나섰다. 12년 만이었다. 열 살 넘게 어린 후배들과 겨뤘다. 그게 그에겐 전환점이 됐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당연함에 젖어 들어 편히 지낸 건 아닌가’ 돌아봤다”고 말했다. 2주간 144홀을 도는 강행군 끝에 그는 98명 중 2위로 다시 투어 카드를 손에 넣었다.
 
LPGA 투어 빅 오픈에서 우승한 박희영. [사진 Golf Australia]

LPGA 투어 빅 오픈에서 우승한 박희영. [사진 Golf Australia]

 
박희영이 다시 일어서는 데는 가족의 역할이 컸다. 그를 골프 선수로 이끌었던 아버지 박형섭(59)씨는 퍼트 난조로 고민하던 딸에게 자신의 퍼터를 건넸다. 박희영은 이 퍼터로 거짓말처럼 퀄리파잉시리즈 2위와 빅 오픈 우승을 거뒀다. 그는 “골프 인생에서 퍼트가 가장 잘 됐다. 쇼트 게임잘하는 박인비에게 빙의한 것 같았다. 아빠가 준 긍정 에너지가 퍼터에 마법을 불어넣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희영은 2018년 12월 조주종 YG엔터테인먼트 미국 대표와 결혼했다. 그에게 남편은 ‘베스트 프렌드’라고 할 만큼 든든한 조력자다. 결혼 전까지 골프를 잘 몰랐던 남편은 지금은 먼저 운동하러 가자고 권유할 정도다. 결혼은 그에게 분명히 터닝포인트였다. 그는 “(남편은) 하나라도 더 도와주려고 하는 든든한 존재다. 결혼한 뒤에 더 행복해졌다. ‘좋은 사람 있으면 빨리 결혼하라’고 후배들한테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6년 넘게 무관을 딛고 LPGA 투어 한국인 최고령 우승에 성공한 박희영. 그는 꾸준하게 우승할 수 있는 선수가 목표라고 했다. [사진 이수그룹]

6년 넘게 무관을 딛고 LPGA 투어 한국인 최고령 우승에 성공한 박희영. 그는 꾸준하게 우승할 수 있는 선수가 목표라고 했다. [사진 이수그룹]

 
나이 서른셋. 시련을 이겨낸 박희영의 다음 목표는 꾸준히 우승하는 선수의 모델로 남는 일이다. 그는 “30대는 안 된다는 틀을 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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