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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든 자 맨앞으로"…늑대에게 배우는 공동체의 삶

중앙일보 2020.02.26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43)

 
늑대의 무리가 이동하는 장면을 보고 깊은 감명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인간의 이동행렬과는 다른 대열을 유지한 채 이동하는 모습이었는데 무리의 선두그룹이 가장 늙거나 병약한 늑대란다. 그 뒤로 건강하고 힘센 무리가 따르고 맨 뒤에 우두머리 늑대가 전체적인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고 한다. 맨 앞에 늙거나 병든 늑대가 위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낙오해 죽임을 당하는 걸 예방하기 위함이라니 오늘날 나만 잘살겠다고 하는 우리네 인간과는 너무 다른 행동으로 느껴서다. 사실 인간도 서로를 위하는 속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 속성을 이용한 것이 소위 발목지뢰의 개발 이유였단다.
 
군 생활 때 들은 얘기다. M14A1지뢰라는 일명 ‘발목지뢰’는 죽지 않고 접촉한 부분만 절단되는 부상을 입게 한다. 과거의 지뢰는 살해를 목적으로 한 것이 대세였다. 지뢰를 밟아 전사한 전우를 뒤에 두고도 계속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발목지뢰를 밟아 다친 전우가 생기면 동료가 꼼짝없게 그를 살펴야 하므로 전체적으로는 상대의 전투력을 더 감퇴시킬 수 있다. 이 발목지뢰가 전투현장에서는 더 효과적이라는 게 발명의 이유란다. 그런데 요즘처럼 나만 살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한 세태를 보면 늑대의 이동행렬구성 이유도, 발목지뢰의 개발이유도 다 허사일 것 같다.
 
늑대가 이동할 때 선두에 가장 늙거나 병든 무리가 위치하고, 그 뒤로 건강하고 힘센 무리, 맨 뒤에 우두머리가 전체적인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 맨 앞에 늙거나 병든 늑대가 위치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낙오해 죽음 당하는 걸 예방하기 위함이다. [사진 Pxhere]

늑대가 이동할 때 선두에 가장 늙거나 병든 무리가 위치하고, 그 뒤로 건강하고 힘센 무리, 맨 뒤에 우두머리가 전체적인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 맨 앞에 늙거나 병든 늑대가 위치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낙오해 죽음 당하는 걸 예방하기 위함이다. [사진 Pxhere]

 
산을 좋아하는 나는 과거 등산반이나 산악회에 가입해 여럿이 자주 등산을 즐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단체등산 모임에는 빠지게 됐다. 그 이유는 동료, 친구들과 등산을 하는 이유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서로 격려하며 즐기는 분위기의 등산이 스트레스의 장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소위 산을 잘 타는 친구가 앞장서 내달리는 바람에 뒤에 쳐진 사람이 겪는 고초를 지켜봤다. 앞에서 내달리니 뒤에 쳐진 일행은 따라가느라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하며 먼저 가서 기다리는 동료에게 미안한 생각에 당황해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늑대의 이동행렬이나 발목지뢰의 개발이유, 그리고 내가 등산반 행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늑대가 초원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협업과 상호연대로 조직사회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웃이나 사회야 어떻게 됐든 간에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한 요즘이라면 발목지뢰의 개발이유도 없겠다. 뒤에 처져서 힘들어 하는 일행을 무시하고 저만 먼저 정상에 오르겠다고 한다면 등산동호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뉴스를 보는 데 탈세 의혹이 깊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대해 엄격한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전관예우, 고액과외. 코로나 19로 인한 부족한 방호 물품의 사재기 등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었음에도 세금을 고의누락시킨 데 대한 철저한 세무조사가 이루어질 모양이다.
 
그거 ‘쌤통이다’는 생각과 함께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중국 춘추좌씨전에 ‘순망치한’이라는 말이 나온다. 춘추시대 말 무렵 진나라는 괵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우나라에 길을 내달라고 요청한다. 우나라의 재상 궁지기가 이 속셈을 알아차리고 순망치한, 즉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논리를 들어 길을 내주지 말 것을 주청했다. 우왕이 이를 듣지 않고 길을 내주었다가 괵나라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진나라가 우나라도 정복한 일화에서 나온 얘기다. 순망치한은 2500여 년 전 고사에나 나오는 진부한 말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웃이 망가지면 내가 망하는 현상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사회는 한 채의 집과도 같다. 집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약화되면 집 전체가 서서히 허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주의 한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취미교실을진행하는 모습. [사진 한익종]

제주의 한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취미교실을진행하는 모습. [사진 한익종]

 
제주에 내려와 해녀가 살던 폐가를 얻어 수리해 살면서 점차 쇠락해 가는 마을을 보았다. 농촌이, 어촌이 점점 쇠락해 가고 급기야는 지방소멸도 지수까지 운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잘살겠다는 생각은 필연코 이웃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 그 해악을 견디지 못하는 이웃은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다 보면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게 된다. 그러니 닥쳐오는 도전과 고난은 오로지 자신만이 감당해야 하는 형국이 되고 자신도 점차 쇠퇴하게 됨은 당연한 결과다. 
 
그레이샴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를 인용해보자. 악화는 이기주의요, 양화는 함께하는 이웃이다. 여기서 함께 하는 사회, 함께 사는 이웃의 중요성이 대두되는데, 함께 하는 사회의 기본이 봉사와 기부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요즘 제주에서 새로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요양원의 어르신에게 재능기부를 하게 됐다. 이제 노년기에 의식주만 해결되면 되는 사회는 이미 아니다. 노인에게 지원되는 의식주에 대한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진 사회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외로움, 자존감의 상실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가진 장기를 활용해 그들에게 취미나 창작 활동을 지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시작이지만 취미교실을 마친 어르신이 즐거워하는 표정과 고맙다고 건네는 인사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을 갖고 있나를 깨닫게 한다. 큰 것을 베풀고 기여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오히려 감사하다. 
 
함께 하는 사회에 대한 참여는 조그만 몸짓 하나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조그만 몸짓이 불러오는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우리도 우리 사회에 나비효과를 기대해 보자. 작은 몸짓이 유발하는 큰 효과를.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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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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