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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코로나 유행 완벽한 장소"···마스크값만 30배 치솟았다

중앙일보 2020.02.26 05:00
결국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이 중동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이란에서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한 가운데 24일(현지시간) 쿠웨이트·바레인·오만·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앞서 레바논·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24일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쿠웨이트에서 여성들이 식당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중동 전역으로 번지고 있어서다. [AFP=연합뉴스]

24일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쿠웨이트에서 여성들이 식당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중동 전역으로 번지고 있어서다. [AFP=연합뉴스]

 
‘중동 코로나’를 확산한 진원지는 이란으로 지목된다. 중동의 신종 코로나 환자 대부분이 최근 이란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서다. 이란과의 국경을 폐쇄하고, 항공편 운행을 중단하는 중동 국가들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중동 여러 국가들에서 확진자가 거의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이미 중동 전역으로 번져 나갔다는 점을 시사한다.  
 
21일 이라크 나자프 국제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이라크인. [AFP=연합뉴스]

21일 이라크 나자프 국제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이라크인. [AFP=연합뉴스]

 

“이슬람 예배당이 중동 코로나의 진원지”

 
뉴욕타임스(NYT)는 24일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중동은 여러 면에서 전염병 대유행을 일으키기에 완벽한 장소”라고 보도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중동 지역의 종교·문화·역사적인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이란 테헤란 북부 이맘자데 살레 모스크에서 시민들이 이슬람의 금식성월 라마단을 맞아 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이란 테헤란 북부 이맘자데 살레 모스크에서 시민들이 이슬람의 금식성월 라마단을 맞아 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슬람 성직자나 순례자들, 이주 노동자 등은 중동의 여러 국가들을 활발히 넘나든다. 특히 이란과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를 찾는 이슬람 순례자들은 연간 수백만 명에 이른다. NYT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을 방문한 사람은 지난 한달 동안에만 3만명이다. 모스크(이슬람 예배당)에선 가깝게 붙어 앉아 함께 기도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배당 주변을 둘러본다.  

 
지난해 이란 테헤란 북부 이맘자데 살레 모스크에서 라마단을 맞아 금식을 마친 시민들이 모스크가 무료로 제공하는 저녁식사 '이프타르'를 먹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이란 테헤란 북부 이맘자데 살레 모스크에서 라마단을 맞아 금식을 마친 시민들이 모스크가 무료로 제공하는 저녁식사 '이프타르'를 먹고 있다. [연합뉴스]

 
쿠웨이트의 감염자는 25일 3명이 늘어 8명이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최근 이란의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마슈하드 등 이란을 다녀왔다고 쿠웨이트 당국이 밝혔다. 오만 정부는 24일 자국민 2명이 이란에 다녀온 직후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발표했다.   
 
이란 내 신종 코로나 사망자는 계속 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이란 정부 발표 기준 15명이다. 지난 19일 처음으로 사망자가 2명 발생한 이후 22일 6명, 23일 8명, 24일 12명으로 증가했다. 하루 만에 또 3명 늘어난 것이다. 지금까지 사망자가 중동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나왔고,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심지어 신종 코로나 방역을 담당해야 할 이라즈 하리르-치 이란 보건차관마저 확진 판정을 받았다.
 
23일 이라크의 한 식당 종업원이 마스크를 쓰고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3일 이라크의 한 식당 종업원이 마스크를 쓰고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랜 내전(內戰)과 소요 사태 역시 중동을 ‘코로나 위험 지역’으로 만들었다. 시리아·이라크· 아프가니스탄·예멘 등의 의료시설은 붕괴되다시피 했다. 제대로 된 검사와 치료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중동 교민들, “마스크 구하기 어렵고, 길에 사람 적다” 

 
‘코로나 공포’는 중동 전역을 뒤덮고 있다. NYT에 따르면 마스크 가격은 이란·이라크·레바논·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전역에 걸쳐 폭등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평소 가격의 30배에 달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24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하고 있다. 이란에서 신종 코로나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24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하고 있다. 이란에서 신종 코로나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동 교민들은 중앙일보에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익명을 원한 이란의 한 교민은 “마스크는 물론이고 손 세정제도 동이 나서 알코올을 썼는데, 그마저도 구하기 힘들어졌다. 수술용이나 비닐 장갑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길에 사람도 별로 없고, 일부 부유층은 코로나를 피해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악수나 볼에 입을 맞추는 이란의 전통 인사도 피하는 분위기다. 이란 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25일 기준 95명으로 중동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다. 
 
이란에서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자 23일(현지시간) 이란인들이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착용한 채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에서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자 23일(현지시간) 이란인들이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착용한 채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UAE)의 교민 이세희(42)씨는 “한국에 있는 가족이 마스크 구입에 애를 먹고 있어서 이곳에서 마스크를 사서 보내려고 했더니 UAE 정부 차원에서 마스크 해외 반출을 막고 있다”면서 “코로나가 이란에서 확산하면서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쇼핑몰도 한산해졌다”고 덧붙였다. 아랍에미리트는 중동 국가 가운데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가장 먼저 나왔지만, 25일 기준 확진자는 13명으로 이란보다 적다.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자 이란 곳곳에 악수 하지 말자는 포스터가 붙고 있다. 이란어로 '사랑하니까 악수하지 않아요'라고 적혀 있다. [트위터 캡처]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자 이란 곳곳에 악수 하지 말자는 포스터가 붙고 있다. 이란어로 '사랑하니까 악수하지 않아요'라고 적혀 있다. [트위터 캡처]

 
NYT에 따르면 사흘 전 이란에서 귀국한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의 한 대학 교수는 신종 코로나 의심 증상이 없는데도 스스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그의 아들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면서 “방에 틀어 박혀서 나오지 않고, 문 앞에 음식과 물을 두고 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투명성도 책임감도 없는 정부” 불만 터져나와 

 
‘이란발 코로나’에 놀란 중동 국가들은 이란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쿠웨이트 정부는 지난 19일 이란에서 첫 감염자가 나오자 21일 이란과의 국경을 차단하고, 이란행 항공도 중단했다. 또 자국민을 제외하고 최근 2주 이내에 이란에 머물렀던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이라크 의료팀이 24일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이란에서 입국한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발열 검사 등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라크 의료팀이 24일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이란에서 입국한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발열 검사 등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오만 보건 당국은 24일 첫 확진자가 나오자 이날부터 이란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 운항을 일시 중단했다. 이라크도 21일부터 이란과의 국경을 막고, 이란에서 오는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 발생한 감염자들은 정부가 이같은 조치를 취하기 이전에 이란을 다녀왔다. 
 
레바논의 한 언론사 기자가 신종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22일 한 병원에서 의료용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채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레바논의 한 언론사 기자가 신종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22일 한 병원에서 의료용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채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중동에서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자 정부의 무능함을 탓하고, 정부를 불신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NYT에 따르면 레바논 정부는 첫 확진자 1명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지 며칠이 지난 후에야 발표했다. 부패척결 운동을 벌이는 레바논 비영리단체의 설립자인 라비 샤이어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여전히 (신종 코로나를 예방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투명성도 책임감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란 정부 역시 신종 코로나 감염자와 사망자 집계 논란에 휩싸였다. 일각에선 “실제 사망자가 50명인데, 이란 정부가 축소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익명을 원한 한 교민은 “이란 정부가 감염자의 인원조차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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