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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코로나19의 생명문명학과 국제정치학

중앙일보 2020.02.26 01:03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나라가 이래도 되나. 우리 공동체가 고작 이 정도였는가. 최첨단 의료시스템과 초연결, 실시간 정보 공유라는 첨단 문명시대의 국민 생명과 안전 문제에 대해, 충분한 대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리 생명 민감성이 둔감하고 대처에 무능해도 되는 건가. 개인 일상은 물론 민간과 국가의 공적 기능, 즉 생산도, 항공도, 교육도, 입법도, 재판도, 병역심사도 일시 중단 또는 연기되고 있다. 만에 하나 국가의 심장기관들이 ‘확진자 경유’ 판정을 받는 날에는 나라 기능은 어떻게 되는가.
 

국가기능·국민생명 위험 최고조
80년대 운동권 세계관 문제 심각
진영맹·민족맹·이념맹 꼭 넘어야
생명·자유·민주 가치와 함께 가자

무엇보다 각자도생의 위험에 직면한 국민들은 안전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특히 확산에 책임이 있는 이단 논란의 종교 분파는 속히 빛과 법의 세계로 나와야 한다. 대중 집회 중지도 물론이다. 국민생명 보호를 위한 제지에 종교의 탈을 쓴 위험 행동은 허용돼선 안 된다.
 
국민 안전이 존재이유인 국가의 임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과 종족이 같거나,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외교 및 경제 관계가 우리보다 더 밀접한 인근 나라들의 신속 단호한 대처와 현재의 질병 확산 정도, 대중(對中) 관계,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우를 우리와 비교하면, 그간의 온건 대처가 경제 현실과 외교 관계 때문이라는 우리 정부의 논리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역사를 보면 정부의 논리는 외려 거꾸로다.
 
중화제국, 일본, 미국과 한국의 거시적 외교·경제 관계를 보자. 조선의 대외 경제 및 외교는 중국과의 관계가 거의 전부였다. 그러나 국가와 국민 이익에 관한 의식은 아주 선명하였다. 1905~10년의 무역구조는 일본 중심으로 완전히 급변하였다. 그때 친일의 한 논리는 바로 경제 현실이었다. 한국의 운동권 세력은 안보와 경제가 거의 전부 미국에 의존하고 있을 때조차, 현실 인정 대신 대미 종속을 타파하자며 반미운동을 지속하였다. 반대로 지금 중국에 대한 대응은 ‘종속’ 인식은커녕 운명공동체라는 지평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중국은, 한말 위안스카이, 2차대전 직후의 마오쩌둥, 오늘의 시진핑 체제에서 보듯 결정적 시기에 보편적, 호혜적이기 보다는 고압적이었다.  
 
국민 생명과 국가 주권을 보호할 때 비로소 경제 이익과 국가 품격도 높아진다. 혹여 대중 경제와 외교가 주요 결정 요인이라고 하더라도 금번 위기를 장기적으로는 생산과 무역의 과도한 중국 의존을 줄일 수 있는 국가전략 전환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당면 선거와 정권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올해와 내년의 경제와 외교가 중요하다. 반면 미래 세대와 나라의 이익을 생각하면 다음 10~20년의 국가기반이 우선이다.
 
문명의 전환에는 항상 막대한 인간 희생이 들어간다. 중화체제에서 만국공법·제국주의 체제를 거쳐 근대 국제체제 및 자유세계 질서로 전환하는 동안 한국은 개항,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일강제병합, 분단, 한국전쟁이라는 대고난을 치렀다. 최악의 지도자들은 국가 위기에 직면하여 외부 요인을 통제하지 못해, ‘닫느냐 여느냐’를 놓고 - 임란과 한말처럼- 공동체를 내부 분열로 이끈 사람들이었다. 이는 특히 문명과 문명의 교차국가에서 더욱 선명하다.
 
그러니, 진영맹(陣營盲), 민족맹(民族盲), 이념맹(理念盲)은 공동체의 장기 토대를 해치는 카시우스의 칼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시저를 죽였던 칼에 카시우스 자신이 죽었던 상황을 말한다. 카시우스의 칼은 자주 반복된다. 가치와 정의의 칼은 네 편 내 편과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자의로 나눈 선악과 진영을 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 적폐(악)를 향했던 정의의 칼이 오늘의 적폐(선)를 향하자, 대결은 내가 사용했던 그 정의의 칼과 나의 싸움으로 돌변하였다. 똑같은 칼을 이제는 불의의 칼이라고 공격한다. 이제 누가 악인가? 80년대식 진영맹 때문이다.
 
미국발 광우병과 일본의 수출 규제처럼 ‘잠재적 위험’에 대해 드러냈던 강렬한 반감에 비추어, 중국발 코로나19와 북핵 위기라는 ‘현재적 위험’에 대한 온건한 대처 사이에는 심각한 반대편향이 존재한다. 국익과는 관계가 없는, 전체주의와 독재체제 마저 간과한, 이념맹 때문이다.
 
우리의 끝없는 관계개선 시도, 지원 의사와 선의 표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반대로 남북관계 단절은 물론 금강산 시설물 철거 주장,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일방 철수 주장, 그리고 우리 지도자와 정부에 대한 굴욕적 비난과 조롱을 계속 퍼붓는다. 80년대식 민족맹이 놓친 현실 때문이다.
 
어떤 비판도 없이, 중국에 대한 호의와 선의, 나아가 운명공동체 인식에 대한 반복적 공감의 표시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 북핵, 미세먼지, 코로나19에서 우리에 대한 그들의 배려, 미안함, 공감은 찾기 어렵다. 80년대식 이념맹이 보지 못한 냉혹한 국가 이익 때문이었다.
 
3대 맹을 넘어 선열들이 가꾸고 지켜온 자유·자율·인권·민주주의·평화의 보편가치를 바탕으로, 국민 생명과 국가 주권이 세계에서 더욱 인정받고 존중받는 나라로 꽃피게 하자. 단기 이익의 추구로 인한 문명의 재후퇴는 자멸적 재앙이다.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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