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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순간④]코로나 최전선에 귀 닫은 정부…'장관 경질' 요구까지 불렀다

중앙일보 2020.02.26 01:00 종합 5면 지면보기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 경보 심각 단계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 경보 심각 단계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의 최일선에는 의료진이 있다. 확진자 진료, 바이러스 전파 동향 분석, 방역 전략 자문 등을 이들이 맡는다. 정부와 의료계의 원활한 소통이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조기 극복에 매우 중요하다.
 

보건당국, 의료계 제안 배제하거나 잘못 반영
청와대도 전문가 대신 여론 보다 '종식' 오판
"입맛에 맞는 일부 의견만 수렴" 쓴소리 나와

하지만 의료계의 긴밀한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 관계가 돼 버렸다. 보건당국이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급기야는 전국 13만명 의사가 소속된 대한의사협회가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질까지 요구했다. '총체적 방역 실패'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달 중순까지는 이렇게 않았다. 정부가 주요 의·약 단체들과 수차례 간담회를 가져왔다. 또한 일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자문 그룹을 꾸려 의견을 꾸준히 듣는 듯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책 관련 의약 단체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책 관련 의약 단체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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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료계 제안을 배제하고 잘못 반영하는 일이 하나 둘씩 늘었다. 중국인 입국 금지, 지역사회 감염 확산, 대구 지원 의료인 모집 등에서 갈등이 야기됐다. 의협이 실무진 중심으로 공식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지만 정부가 받지 않았다.
 
지난 18일 대구에서 신천지대구교회 신자인 31번 환자(61·여)가 나왔을 때 지역사회 감염을 우려한 의협이 중국인 입국 금지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후베이성 외 저장성 등 감염이 심한 5개성만이라도 금지하자고 제안했고, 이어 전면 금지를 주장했다. 지난달부터 이어진 의협의 6차례 권고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구 현장으로 갈 의료인 신청도 정부 따로, 의료계 따로다. 의료인을 모으려면 의협의 도움이 절실한데, 그걸 이끌어내지 못한다.
 
게다가 정부가 22일 전화처방, 대리처방을 허용하면서 의협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정부가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전화 진료 허용, 의료인 모집 등에 사전 협의가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꼴인 주요 단체 면담은 실시간 대응이 불가능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현장 의견이 반영돼야 효과를 거두는데 그런 협의체가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청한 병원 관계자는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한다고 말하긴 조심스럽다. 불만은 많지만 비상상황이라 참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을 운영하고 있는 대전 충남대병원 선별진료소에서 근무자들이 보호복을 입고 환자를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2일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을 운영하고 있는 대전 충남대병원 선별진료소에서 근무자들이 보호복을 입고 환자를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는 의협의 감염병 위기경보 격상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이달 2일 "심각단계처럼 위기 관리를 하겠다"고 언급한 뒤 23일에서야 심각으로 올렸다. 3주 내내 "심각단계처럼"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여러 전문가들이 심각 격상을 수도 없이 건의했지만 듣지 않았다. 23일 격상할 때는 이미 전국으로 번져 있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25일 정례브리핑에서 "의협 입장에선 모든 정보를 공유하길 희망할 수 있겠지만 물리적 제한 등으로 기대에 부응하는 만큼 협조가 이뤄지지 못했다. 조금 더 소통하면서 간극을 좁혀나가는 데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협에 따르면 해당 발언 후에도 정부로부터 별다른 공지가 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지 않은 건 청와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계와의 간담회에서 "방역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취지에서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1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1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보건당국의 판단은 결이 달랐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아직도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소강 국면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종식과는 거리가 먼 신중론을 편 것이다. 이후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되면서 문 대통령 발언은 완전한 '오판'이 됐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전문가 대신 여론만 바라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질병관리본부 등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보다 자체 판단에 의존하는 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종식 발언은) 청와대 내부서 실시하는 여론조사를 너무 믿은 정무적 판단 미스로 보인다. 경제 걱정 나오고, 방역 잘 하고 있다고 많이 나오고, 중국인 입국 금지 찬성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위기 상황에선 여론을 앞서가야 하는데 (실무진이)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정기석(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정부가 입맛에 맞는 일부 의견만 가려서 받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정작 수렴한 내용에는 알맹이가 없다. 지금 같은 비상 상황엔 폭넓은 토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전 본부장은 "의료계도 비판만 하기보다 공신력 있는 통합 자문 기구를 만들어 하나의 의견을 내는 게 먼저다.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정부와 의료계 간에 상시 협의체를 만들어 감염병을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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