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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누군가 해야 한다, 어떡하든 막아내야 한다”

중앙일보 2020.02.26 00:57 종합 27면 지면보기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누군가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하필 나라면- .
 

코로나 전담 자처 대구동산병원
의료진 302명, 확진자 225명 진료
벌써 4일째 피로도 쌓이고 있어
미국 선교사 희생 본받아 전담 자처
진료부장 “선택 여지 없다 싸운다”

이런 고민을 마다하고 누군가를 자처한 데가 있다.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주인공이다. 신종코로나(코로나19) 비극이 벌어지는 대구에서 동산병원이 코로나 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동산병원은 민간병원이다. 정부에서 한 푼 지원받지 않는다. 그런데 병원을 통째로 비우고 코로나 전담병원(지역거점병원)에 손을 들었다.
 
이 병원은 대구 중구 도심 서문시장 인근에 있다. 요지 중의 요지다. 기존 입원환자 136명을 설득해 대구 성서의 계명대 동산병원으로 옮긴 뒤 병원을 비우고 225명의 코로나 환자를 받았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 이 병원 의료진 230명이 자원했다. 다른 병원 의료진과 공중보건의사 72명이 지원 나왔다.
 
조치흠

조치흠

동산병원 조치흠 원장(산부인과)과 진두지휘하고 김진환 진료부장(외과)이 현장을 총괄한다. 이들에게 상황을 물었다. 먼저 조 원장과 일문일답.
  
대구동산병원은 21일 코로나 전담병원이 됐다. 25일 병동 밖으로 나온 의료진이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대구동산병원은 21일 코로나 전담병원이 됐다. 25일 병동 밖으로 나온 의료진이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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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떤 환자가 있나.
“열·기침이 조금 있는 경증 환자들이다. 폐렴 환자는 없다. 확진 판정을 받고 집에 있던 환자가 많다. 경증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어제도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후송된 환자가 있다.”
 
민간병원인데 왜 나섰나.
“121년 전 미국 선교사가 목숨을 걸고 한국에 와서 우리 선조를 구했다. 그 정신, 그 사명의식에 따라 선택했다. 돈을 바라는 게 아니다.”
 
조 원장은 21일 오전 코로나 비상대책 회의에서 교직원 20여 명을 모아놓고 “121년 전 선교사들이 낯선 곳에서 의술을 펼치며 기적을 일구지 않았느냐. 그동안 함께한 지역 주민을 위해 우리 지역에 불어닥친 이 위기에 나서자. 제대로 봉사해보자”고 선언했다.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동산병원은 1899년 제중원에서 출발했다. 미국 북장로교회에서 파견한 장인차(우드브리지 존슨의 한국 이름)가 약전골목 초가집에 ‘미국약방’을 열고 제중원을 만든 게 효시다. 제중원은 한센병이나 풍토병 치료, 천연두 예방 등을 했다.
 
병원을 어떻게 비웠나.
“여건이 맞아떨어졌다. 성서 계명대 동산병원이 문을 연 지 10개월 돼 병상 여유가 있어 기존 환자를 그리로 옮길 수 있었다. 반나절 만에 136명을 옮겼다. 환자들이 이해해줬다. 우리 아니면 못한다.”
 
‘동산병원=코로나’로 낙인 찍힐 텐데.
“이참에 우리 병원이 영남권을 대표하는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자리가 끝내주는 곳이다. 신종 감염병은 주기적으로 온다. 대비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 지원해야 한다. 평소 일반병원으로 운영하다가 비상시에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가면 된다.”
 
부족한 게 없나.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 방호복을 입고 2시간 중노동을 하고 2시간 쉬는 방식으로 일한다. 특히 간호사 100명이 더 필요하다. 병동 내 쓰레기 치울 인력조차 부족하다. 자원봉사자가 절실하다. 마스크나 방호복도 모자란다. 마스크가 하루에 400~600개 들어간다.”
 
김진환

김진환

김진환 부장은 21일부터 코로나 비상 진료에 합류했다. 오전 7시 40분 병원에 나와 12시 넘어서 귀가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전문병원이어서 헤맸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다. 온종일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22, 23일 끼니를 걸렀다. 그는 “하루 코로나 환자가 몇 명 나왔는지 모른다. 뉴스 볼 시간이 없다. 집에 가서야 확인한다”고 말했다. 벌써 피로도가 치솟고 있다.
 
간부라서 이 일을 맡은 건가.
“그렇지 않다. 자원했다. 누군가 해야 하지 않겠나.”
 
종교적 신념 때문인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점보다 의사라서 한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떻게 진료하나.
“전화로 문진해서 처방한다. 다른 의료진이 팀을 짜서 방호복을 입고 병실 안으로 들어가서 전화 진료로 놓친 게 없는지 체크한다. 환자에게 청진기를 대지 않는다.”
 
김 부장은 외부에서 온 의사 관리를 총괄하는 일도 한다. 병원을 잘 모르고, 전산시스템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적응하는 걸 돕는다.
 
가족이 걱정하지 않나.
“집에 가면 가족과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문 앞에서 옷을 벗고 소독하고 들어간다. 의료진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가족 문제다. 나 하나 감염되는 것이야 의사로서 괜찮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감염되면 다른 의료진이 격리되기에 걱정이 크다. 자칫 통째로 코호트 격리될 수 있다. 이 사태가 장기화할 텐데, 병원 근처에 숙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대구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15년 의사 생활하면서 이런 경험 처음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내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 병원의 모든 의사들이 전사가 돼 맞서고 있다. 누구나 코로나 확진환자로 당할 수 있다. 감염경로가 막연한 사람이 많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으로 여기고 의료진에게 협조를 잘해서 치료받기를 기대한다. 격리가 좀 불편해도 감수해줘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전파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우리 가족, 이웃, 친구를 보호하는 길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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