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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인사이트] 자유무역 거스른 협정…코로나 위기로 이행 불투명

중앙일보 2020.02.26 00:43 종합 23면 지면보기

미·중 무역합의는 지켜질 것인가

미국의 1달러 지폐와 중국의 위안화 지폐. 지난 1월 체결된 미·중 1단계 무역협상문에서 양국은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자제하고 환율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합의했다. [중앙포토]

미국의 1달러 지폐와 중국의 위안화 지폐. 지난 1월 체결된 미·중 1단계 무역협상문에서 양국은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자제하고 환율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합의했다. [중앙포토]

미·중 1단계 무역협상이 지난 1월 15일 미국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류허(劉鶴) 부총리의 서명으로 일단락됐다. 합의문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 경제를 강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2일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5.6%로 수정했다. 지난달 예상치보다 0.4%P 낮춘 수치다. 그러자 중국이 미국과의 합의를 제대로 이행할 여력이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중 1단계 합의는 좌초될 것인가. 미궁에 빠진 미·중 무역분쟁의 향방을 살펴본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의 경제 파장이 본격적으로 커진 뒤에도 중국이
끝까지 협정문에 제시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할 것인지 여부이다. 벌써
중국이 향후 2년간 추가로 사기로 한 미국산 제품 2000억 달러에 대해
유예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다.”

먼저 1단계 협정이 타결된 이유부터 짚어보자. 미국은 단판 승부 대신에 단계적 협상으로 협상의 틀을 바꿨다. 중국은 항미(抗美)를 외치며 지구전을 각오했지만, 실무협상은 계속 유지했다. 미국의 전술 변경과 중국의 인내심이 휴전을 끌어냈다. 미국의 협상 대표인 미 무역대표부(USTR)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이번 협정을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2단계 협상이 2020년 미 대선 전에 시작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럼프 역시 선거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96페이지에 달하는 협정문 가운데 미국이 확실히 얻어낸 것은 대중국 수출 증대이다. 2년간 2017년 수출금액을 기준으로 추가로 2000억 달러(약 243조원)의 수출 증가 약속을 얻어냈다. 1년 차(767억 달러)와 2년 차(1233억 달러)에 걸쳐 중국은 공산품, 농산물, 에너지, 서비스 수지 등에서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리기로 했다. 중국은 2년간 이 정도의 약속은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특히 농산물의 추가 수출 증가액은 320억 달러로 결정됐다.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트럼프가 대선 캠페인에서 크게 떠벌일 수 있는 수준이다.
 
중국은 1차 협정에서 명분과 시간을 벌었다. 협정문은 강제성을 띤 시행(enforcement) 대신에 이행(implement)이라는 용어로 순화됐다. 이행 과정을 지속해서 감시하는 기구로 시행사무국(enforcement office) 대신 중국이 제안한 무역 프레임워크 그룹(trade framework group)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행과 관련한 스냅백(약속 이행이 없으면 철회) 조항 역시 중국의 반대로 채택이 불발됐다.
  
“뇌물의 효과는 오래 못 가”
 
미·중 1단계 협정은 농산물 외에도 향후 2년간 공산품 777억 달러, 에너지 524억 달러, 서비스 수입 379억 달러의 대중 수출 증가를 약정했다. 하지만 이번 협정은 미국이 대중 수출 금액을 관리해 나가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낮추고 시장개방을 위한 제도적 틀을 개혁하는 협정이 아니라 미·중 두 나라가 수출과 수입 금액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한 관리무역 협정이어서다. 자유무역에 철저히 위배되는 방식이다. 홍콩에서 독립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는 앤디 셰는 “(1단계) 협정은 정신적 혜택을 제공했을 뿐”이라며 효과를 일축한다. “미국 정부나 기업체에 바치는 ‘뇌물’은 효과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국제기구도 우려한다. 2019년 11월 IMF 아태국 소속 6명의 연구자는 공동연구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양자 간 협정을 통해 수출입 금액을 관리해 나간다면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한 무역전환 효과가 반대 방향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자동차, 기계류, 장비 등 미국산 공산품의 대중 수출이 증가하면 고스란히 피해는 유럽연합(EU), 일본, 한국이 입게 될 것으로 추정했다.
 
코로나19의 습격에도 매달 미국산 제품 약 10조원 어치를 사들여야 하는 중국이 지난 21일 뜻밖의 발표를 했다. 미국산 엑스선관, 전자현미경, 자기공명 촬영기기(MRI)와 같은 의료기기 등 55개 품목에 대해 이미 납부한 관세까지 환불해주는 비관세 조치를 전격 선포한 것이다. 대부분 코로나19 진단에 필수적인 의료기기이다. 또 “추가 관세 면제 조치를 계속하겠다”며 “적절한 시간에 후속 비관세 리스트를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의료기기 부족을 미국과 약속한 수입 쿼터와 맞바꾸려는 일거양득의 책략이다.
  
중국, 미국산 의료제품에 비관세
 
앞선 6일에는 75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수입품의 추가 관세를 기존 10% 품목은 5%로, 5%는 2.5%로 축소 조정했다. 미국이 2019년 9월 1일 부과한 1100억 달러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7.5%로 인하한 데 대한 상응 조치다. 시 주석은 다음 날인 7일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갖고 “중·미 양국이 1단계 무역협정을 달성한 것은 중국과 미국, 세계의 평화 번영에 유리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통화 이후 중국은 미국산 수수 등 농작물에 대한 구매를 시작했다. 가금류 수입 금지 조치도 해제했다.
  
코로나 사태, 이행 유예 사유되나
 
문제는 코로나19 사태의 경제 파장이 본격적으로 커진 뒤에도 중국이 끝까지 협정문에 제시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할 것인지 여부이다. 중국은 재정과 통화를 풀어 금번 사태로 인한 경기둔화 방지 총력전을 펼칠 것이다. 그렇지만 벌써 중국이 향후 2년간 추가로 사기로 한 미국산 제품 2000억 달러에 대해 유예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다.  
 
실제 협정문은 “한쪽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예측불가능한 사건으로 협정 의무를 적시에 이행하는 것이 지연될 경우 상대방과 협의해야 한다”는 유예 조항을 담았다. 소니 퍼듀 미 농무장관은 지난달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의 올해 구매목표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먼저 선수를 쳤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도 “합의문에 자연재해 조항이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해심이 있거나 너그러운 성향을 보일지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미·중간 체결된 관리 무역협정은 출발부터 문제가 많은 것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에 면책 근거를 준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제대로 이행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99대 5…중국에 압도적으로 많은 의무 부과
류허 부총리(왼쪽)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오른쪽). 이들이 ‘무역 프레임워크 그룹’의 대표를 맡는다. [로이터=연합뉴스]

류허 부총리(왼쪽)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오른쪽). 이들이 ‘무역 프레임워크 그룹’의 대표를 맡는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중 1단계 무역 협정은 겉으로만 평등을 내세웠을 뿐 협정문은 ‘일방적’으로 중국을 몰아붙였다. 이는 중국의 변화를 강요하는 의무 사항의 숫자가 잘 보여준다. 본문 86페이지 가운데 “중국이 해야한다(shall)”, 즉 중국의 필수 리스트는 99건에 이른다. 반면 미국의 필수 이행 목록은 5건에 불과하다. 이보다 수위가 낮은 “미국이 보증한다(affirms)”는 27차례 밖에 없다. 1단계 합의가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불리는 이유다.
 
중국의 필수 이행 리스트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중국 부총리가 이끄는 ‘무역 프레임워크 그룹’이 6개월 마다 회의를 열어 점검한다. 프레임워크 그룹은 회의에서 협정의 이행 상황, 주요 문제, 향후 계획을 토론한다. 그룹 산하에 대화 기제를 설치해 평상시 소통 채널을 가동한다.
 
1단계 협정문은 중국이 합의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을 경우 보복관세를 즉시 재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미국만 가질 수 있도록 요구한 스냅백 조항은 채택되지 않았다. 미국이 상호 대등한 호혜적 협정으로 보이도록 적어도 표현에 있어 중국을 배려한 대목이다.
 
1단계 협정의 한계는 관리무역(managed trade) 체제로의 회귀다. 관리무역은 자유무역과 달리 국가가 수출입 금액, 결제방식 등을 직접 관리하고 통제하는 무역 방식을 말한다. 이번 협정문은 중국이 수입해야 할 수출 증대 품목을 구체적으로 HS 코드 4단위로 부속서에 나열했다. HS 코드는 1988년 국제협약으로 채택된 국제 표준 통일상품분류체계(Harmonized Commodity Description and Coding System)의 약칭이다.
◆왕윤종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을 거쳐 SK 중국경영경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베이징 근무 중에는 중국 한국상회 회장직을 맡아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경희대학교 국제대학 객원교수이다. 

  
왕윤종 경희대학교 국제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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