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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패닉’에 빠져버린 '코로나 청정국가' 이스라엘

중앙일보 2020.02.25 18:31
이스라엘 가자지구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현지 주민들이 한국 순례객들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소식에 항의하면서 타이어를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가자지구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현지 주민들이 한국 순례객들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소식에 항의하면서 타이어를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원재 객원기자

이원재 객원기자

‘이스라엘에 들어와 있는 모든 한국인은 이른 시일 내로 이 나라를 떠나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내린 명령이다.
 
 ‘코로나19 청정국가’ 이스라엘이 갑작스러운 공포에 빠졌다. 이스라엘을 찾은 한국인 성지순례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는 소식이 지난 23일 전해진 뒤부터다. 이스라엘은 그간 중국인만 염려했을 뿐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 성지순례객들이 귀국 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것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대응조치는 지나치다고 할 만큼 전격적이다. 외무부는 23일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지 말 것이며, 현재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이스라엘 국민들도 한국을 떠날 것을 촉구했다. 보건부도 다음 날 한국 순례객들과 가까이 있었던 수백 명의 이스라엘인을 자가격리 조치했다. 한국 순례객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었던 200여 명의 이스라엘 학생과 교사들 또한 집 밖으로 나오지 말도록 지시했다. 국방부는 한국 성지순례객들과 접촉한 이스라엘 국경보안 군인들을 긴급 격리조치했다.  
 
 
 
한국 순례객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은 연일 현지 신문 헤드라인과 TV 메인 뉴스로 장식되고 있다. 특히 이번 순례객들이 이스라엘 남북 동서 전체를 방문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순례객들은 헤브론 막벨라 무덤의 유대인 회당을 방문해 유대인 종교인들을 만났다. 이때 유대인 랍비가 한국 순례객들 앞에서 전 세계의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없어지기를 기도하는 영상이 이스라엘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잡혔다.  
 
 
 
중앙일보 객원기자인 필자도 이스라엘의 패닉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스라엘 국부펀드로 시작한 요즈마펀드를 이끄는 요즈마그룹의 아시아 총괄 대표로 있는 나는 연중 12차례, 180일 이상을 이스라엘에 머무른다. 지난 8일에도 1주일간의 출장을 소화하고 인천공항을 통해 서울로 돌아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현지 분위기는 지금과 크게 달랐다. 벤구리온 공항엔 입국이 금지된 중국인에 대한 검열만 살벌했을 뿐이었다. 적지 않은 한국 순례객들이 벤구리온 공항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필자 또한 이스라엘의 한국인 입국 불허로 오는 29일로 예정된 출장을 전격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이스라엘에서 줄기차게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하나같이 한국 상황과 필자의 안부를 걱정하는 전화다. 스마트폰 속 메신저 앱 왓츠앱은 나의 안부를 묻는 이스라엘 친구들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공통점이 많은 이웃이다. 천연자원 없이 인재만으로 우뚝 선 국가며, 정부 출범도 1948년으로 똑같다. 이스라엘 친구들은 평소 한국인인 나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표시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코리아 패닉’이라 부를 정도로 예민한 데는 이유가 있다. 사방이 아랍 적국들로 둘러싸여 상시 전시 상태인 탓이 크다. 게다가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교뿐 아니라 기독교ㆍ무슬림 등 주요 종교들의 성지라 세계인이 몰려드는 곳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바이러스를 포함한 생화학 테러에 대응하는 매뉴얼들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이스라엘에서 중ㆍ고교를 다니던 시기 학교에서 생화학 테러 조치법 등을 정기적으로 훈련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이스라엘 공무원 친구들과 코로나19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서 전시 대책에 준하는 그들의 대응 전략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원격의료다. 이스라엘은 전쟁과 테러 같은 일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건강보험공단과 지역별 지정병원 중심 시스템을 통해 원격의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응급환자들은 물론 건강한 주민들도 원격의료시스템을 통해 주요 병원의 담당 의사와 연결돼 있다. 이를 통해 테러나 펜더믹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의료 시스템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엔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한 헬스케어 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이스라엘 보건부는 앞으로 바이러스 증상자와 바이러스 확진자들을 관리하고 확산을 방지하는 데 있어 원격의료시스템을 더욱 확대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 모습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활용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빨리 총동원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감염병 확산을 막으려는 세계 각국이 되새겨 볼 사례다.
 
 
 
요즈마그룹 아시아 총괄 대표  
 
 
이원재
  초등학교 6학년 때 히브리대 비교종교학 박사 공부를 떠난 어머니와 함께 이스라엘서 생활했다. 예루살렘에서 초ㆍ중ㆍ고를 다녔으며, 히브리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시절 아시아 경제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후 이스라엘 국부펀드였던 요즈마펀드에 심사역으로 합류했다. 현재 요즈마펀드 한국ㆍ중국ㆍ싱가포르ㆍ일본ㆍ홍콩법인을 총괄하면서 기술벤처 투자 및 이스라엘과 아시아국가의 기술사업화 융합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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