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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무관중 경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중앙일보 2020.02.25 10:30
2017년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바르셀로나와 라스 팔마스의 무관중 경기. [EPA]

2017년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바르셀로나와 라스 팔마스의 무관중 경기. [EPA]

“타구음은 텅 빈 운동장에 긴 메아리를 남겼다. 감독이 불펜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벨 소리는 130m 떨어진 덕아웃의 감독에게도 들렸다. 불펜에 있는 투수들은 외야수들의 잡담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들은 오히려 경기장에 깔린 적막함을 더할 뿐이었다.”
 
지난 2015년 4월 무관중 경기로 치러진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경기 장면을 전한 뉴욕타임스 기사다. 당시 인종차별 시위로 볼티모어가 시끄러워 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당분간 무관중 경기가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마케팅 학자들은 관람 스포츠에서의 관중을 단순히 티켓 수익원이라 보지 않는다. 명지대에서 스포츠 ICT를 강의하는 황한솔 박사는 “관중이 주는 신호 효과(signal effect)가 있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한다. 관중이 많으면, 열렬히 응원하면, 페이스 페인팅을 할 정도로 극성인 사람도 보이면, 시청자들은 그 경기가 중요하다고 여겨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집중하면 없던 재미도 생긴다. 집중할 수밖에 없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와 안방극장의 TV 영화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관중석이 허전하면 시청자는 심드렁하다. 경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집중도도 낮다. 관중 수가 경기장 수용 인원보다 크게 부족할 때, 비는 관중석을 천막 등으로 막아 놓기도 한다. 휑한 경기장은 관중과 시청자의 마음을 썰렁하게 하고 이벤트의 가치를 낮게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FIBA 남자농구 아시아컵 예선 대한민국과 태국의 무관중 경기. [서울=뉴시스]

지난 23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FIBA 남자농구 아시아컵 예선 대한민국과 태국의 무관중 경기. [서울=뉴시스]

 
관중이 하나도 없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연극배우는 기분이 어떨까. 관중이 없으면 주인공인 선수의 집중도도 떨어진다. 각종 연구에 의하면 선수들은 관중의 수와 응원의 크기에 따라 테스트토론 수치가 달라진다. 사람들이 많으면 흥분하고, 없던 힘도 낸다. 더 높이, 더 빨리 뛴다. 즉 경기 수준이 높아진다.  
 
골프에서도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은 평소보다 공을 더 멀리 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노련한 캐디들은 선수가 흥분했을 때 거리를 더 짧게 불러준다. 평소에 8번 아이언을 칠 거리인데 9번 아이언 거리를 알려주는 식이다. 그래야 거리를 맞춘다.
 
관중이 적으면 미디어 종사자도 영향을 받는다. 무의식적으로 대단치 않은 경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무관중 경기는 경기의 질과 관심을 떨어뜨린다. 스포츠를 퇴보하게 한다.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관중 경기라면 홈팀이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 2016년 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최종라운드는 폭풍 때문에 나무들이 뽑혀 무관중 경기로 열렸다. 당시 최경주가 챔피언조에서 경기해 한 타 차 2위에 머물렀는데 관중이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 무관중 경기 기사에서 “오리올스의 포수 칼렙 조지프는 워밍업 후 불펜으로 걸어가면서 마치 팬들이 있는 것처럼 가상의 하이파이브를 했고 사인을 해주는 포즈를 취했다. 또 다른 선수는 이닝을 마칠 때마다 더그아웃 뒤에 마치 어린이 팬이 있는 것처럼 공을 던져줬다”고 썼다.  
 
관중이 없는 경기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허전해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관중은 소중하다. 팬이 있어야 선수도 있다. 요즘 선수들은 점점 팬들과 벽을 쌓고 있다. 마치 스타는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선수들은 관중에 불편해하고, 사인해달라고 해서 귀찮다 하고, 방해받는다고 여긴다. 
 
그러나 텅 빈 경기장에서 그 관중이, 그 소란이, 그 에너지가, 그 건강함이, 그 떠들썩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빨리 전염병을 극복하고 시끄러운 경기장이 됐으면 좋겠다.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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