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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탈 난 日크루즈 자국민 구출···'코로나 택배' 전세계 보낸 셈

중앙일보 2020.02.25 05:00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했던 외국인 승객이 본국으로 돌아가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자국 국민들을 감염 위험에서 탈출시키려는 송환 계획이 신종 코로나를 세계로 실어나르는 '캐리어'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7일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AP=연합뉴스]

17일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AP=연합뉴스]

 

증상 없었는데…알고 보니 신종 코로나 감염

지난 23일(현지시간) BBC 등 영국 현지 언론은 일본 크루즈에서 철수시킨 유럽연합(EU) 시민 32명 (영국인 30명, 아일랜드인 2명) 중 4명이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로써 영국 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총 13명으로 늘었다.  
 
지난 22일 일본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한 유럽연합 시민들을 영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띄운 전세기가 보스콤 다운 공군기지에 착률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22일 일본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한 유럽연합 시민들을 영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띄운 전세기가 보스콤 다운 공군기지에 착률하고 있다.[AP=연합뉴스]

영국 최고 의료 책임자 크리스 휘트니 교수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확진자들이 “크루즈선에서 감염된 것”이라 설명했다.  
 
앞서 영국 정부는 22일 일본으로 전세기를 보내 EU 시민 32명을 태우고 영국 공군 기지로 돌아왔다. 확진자는 탑승 명단에서 제외했으나 탑승 전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던 일부 승객이 하루 만에 양성으로 밝혀진 셈이다.  
 
이스라엘에서도 본국으로 돌아온 일본 크루즈선 탑승객이 신종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였다. 23일 AF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보건부는 “일본 크루즈에서 내려 21일 이스라엘로 귀국한 자국민 11명 중 두 번째 확진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보건부는 이들이 이스라엘에서 감염된 건 아니라고 밝혔다. 이로써 이스라엘 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총 2명이 됐다.  
지난 21일 이스라엘의 도시 라마트간의 한 병원 문 앞에서 사람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이 병원에는 이스라엘의 첫 신종 코로나 감염자가 격리돼 있다. 해당 감염자는 일본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갇혀 있다가 이스라엘로 송환된 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일본에서 온 송환자 모두를 14일간 현지 병원에 격리시켰다. [AFP=연합뉴스]

지난 21일 이스라엘의 도시 라마트간의 한 병원 문 앞에서 사람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이 병원에는 이스라엘의 첫 신종 코로나 감염자가 격리돼 있다. 해당 감염자는 일본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갇혀 있다가 이스라엘로 송환된 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일본에서 온 송환자 모두를 14일간 현지 병원에 격리시켰다. [AFP=연합뉴스]

 

영국·이스라엘·호주·미국서 확진자 증가

일본 크루즈에서 내려 본국으로 돌아간 호주인 2명도 귀국 후 검사에서 신종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호주 보건부는 이들이 귀국 전에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호주 보건부는 20일 전세기를 띄워 호주인 160명을 본국으로 소환했다.  
 
가장 먼저 전세기를 띄운 미국은 '실수로' 확진자를 본국에 이송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17일 전세기 2대를 동원해 미국인 328명에 대한 본국 송환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일본 정부가 "송환자 중 14명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통보해왔다.   
 
미 국무부는 이들을 미국에서 치료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비감염자들과 함께 비행기에 태웠다. 이로써 미국 내 확진자는 15명에서 29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를 뒤늦게 전해 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책임자들을 강하게 질책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구해달라" 자국민 요청에 비행기 띄워 

대형 크루즈선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지난달 20일 요코하마항을 출발해 홍콩, 베트남, 타이완 등을 거쳐 지난 3일 요코하마 인근 앞바다로 되돌아왔다. 배에는 승객 1045명, 선원 2666명 등 총 3711명이 타고 있었다. 
 
5일 크루즈 승객 중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일본 정부는 크루즈 내 승객들의 하선을 금지하고 14일간 객실 내 격리 조치를 결정했다. 증상이 있는 승객들만 우선 검사한 뒤 확진자만 배에서 내리게 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대부분의 승객은 창문도 없는 객실 안에서 승무원이 넣어주는 음식을 먹으며 버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발생으로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선실에 각 승객들을 격리하는 조취를 취하고 있다. 사진은 격리 객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발생으로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선실에 각 승객들을 격리하는 조취를 취하고 있다. 사진은 격리 객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격리를 선택한 이후 크루즈 선내에서 날마다 확진자가 폭증했다. 일본 정부는 확진 검사를 순차적으로 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라 해명했지만, 크루즈 선내에 탄 승객들은 불안을 호소하며 각자 자국 정부에 '구출'을 요청했다.  
 
한 미국인 신혼부부는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구하러 와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을 시작으로 한국과 호주, 홍콩, 대만, 영국 등에서 크루즈 선내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일본에 전세기를 보냈다. 이 외에도 러시아(23일)와 카자흐스탄(24일)이 각각 일본 크루즈에 탑승한 자국민 8명, 4명을 본국으로 소환했다. 
 
지난 6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승객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6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승객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주방일을 하는 사르카르는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선내는 완전히 패닉 상태"라며 "우리가 이곳에서 벗어나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자신들 중 누구도 신종코로나 감염 검사를 받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페이스북 캡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주방일을 하는 사르카르는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선내는 완전히 패닉 상태"라며 "우리가 이곳에서 벗어나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자신들 중 누구도 신종코로나 감염 검사를 받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페이스북 캡처]

 

증상 없어도 14일 간 격리하는 이유 

대부분 국가는 일본 크루즈 탑승객들이 자국에 돌아온 뒤 14일 간의 격리 기간을 뒀다. 일본 현지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았거나 외부 증상이 없었지만 오진이나 잠복기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민 328명을 14일간 공군기지에 격리했고, 홍콩 정부도 포탄 지역에 있는 공공 임대 아파트에 이송한 자국민 208명을 격리했다.  
 
캐나다도 온타리오주 트렌턴 군기지에서 1차 검진을 한 뒤 콘월 군 시설에서 14일간 관찰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일본 정부는 크루즈에서 내린 승객들을 별도의 격리 없이 바로 귀가 조치하고 있다. 객실 내 격리를 시작한 이달 5일 이후 추가 감염이 없었으니 19일 기준으로 검사에서 음정 판정을 받았다면 감염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기준으로 본국에 돌아간 외국 승객 중 일부가 양성 증상을 보였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크루즈에 승선했던 60대 여성이 귀가 조치 이후 양성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일본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돌아온 유럽연합 시민들은 애로우 파크 병원을 포함한 영국 각지 병원에서 14일간 관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22일 애로우 파크 병원 모습. [AP=연합뉴스]

일본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돌아온 유럽연합 시민들은 애로우 파크 병원을 포함한 영국 각지 병원에서 14일간 관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22일 애로우 파크 병원 모습. [AP=연합뉴스]

전문가 "귀국 후 양성 반응, 예상 가능한 일" 

감염병 전문가인 아이치의과대 모리시마 쓰네오 객원 교수는 NHK와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는 검사가 쉽지 않다"며 "하선 시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더라도, 나중에 양성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3일 오후 9시 기준 일본 크루즈에서는 10개 국적의 승객 3700여명 중 69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3명이 사망했다. 크루즈에는 아직도 1000명이 넘는 승무원과 확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탑승객 100여 명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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