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네 탓, 야당 탓, 전 정권 탓…망국병 된 탓탓탓

중앙일보 2020.02.25 00:49 종합 23면 지면보기

포퓰리즘을 쏘다 ②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경제는 이념으로 잘 안 된다. “경제 문제에서는 의지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고 마르크스도 말할 정도다. 그런데도 이념으로 경제를 다룰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리더를 포퓰리스트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포퓰리즘 집권 세력이 대놓고 공산주의나 전체주의를 천명하는 일은 거의 없다. 포퓰리즘 정치권력일수록 포퓰리즘을 입에 올리지 않으며, 아닌 척 행세한다. 그렇다고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념으로 경제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전형적 포퓰리스트
실패 땐 적 만들어 지지층 결집

전 회(중앙일보 1월 14일자 22면) 포퓰리즘의 정치적 감별법에 이어 경제적 감별법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포퓰리즘 연구의 대가 카스 무데(미국 조지아대 국제관계학 )의 책 『포퓰리즘』에 소개된 구별법이다. 책에 따르면 경제 정책의 실패를 기존 엘리트와 경제 권력 탓으로 돌린다면, 그는 포퓰리스트다. 이 방법은 특히 집권 중인 포퓰리스트에게 유용하다. ‘개혁’을 외치다 실패하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핑계 댄다. 자신의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면 두 가지 이득이 있다. “이념과 방향은 옳다”고 계속 우길 수 있다. 지지층을 결집해 반대 세력을 더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카스 무데 교수는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민주화’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실패한 책임을 경제 엘리트들에게 곧잘 전가했다”며 “199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포퓰리스트 사이에서 인기를 끈 방법”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출범 직후부터 남 탓이 잦았다. 경제 쪽은 특히 더했다. 최저임금 급속 인상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문제의 본질은 과속이지만, 대기업·건물주의 갑질 탓으로 돌렸다. ‘남 탓’ 수순도 외울 정도다. ①정책을 발표한다(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달성) ②부작용이 나타난다(빈곤층 소득 되레 감소) ③좋은 숫자만 골라 성공이라고 우긴다(청와대 “90%의 소득은 늘어났다”) ④안 통한다(350만 영세 자영업자 반발) ⑤남의 탓으로 화살을 돌린다. 타깃은 재벌과 전(우파) 정부, 그리고 반대 언론이다 ⑥그러니 해법도 같다. 적폐 청산이다.
 
이념으로 경제 정책을 하다가 실패했는데 해법은 엉뚱하게 적폐 청산이라니. 이치에 안 맞는다고 흥분한다면, 당신은 둘 중 하나다. 순진하거나 포퓰리즘의 본질을 모르는 하수거나.
 
어디 대통령과 정부뿐이랴. 집권 여당의 맞장구는 더 가관이다. 2년 전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저 임금 급속 인상 탓에 일자리가 줄어들자 “고용 감소는 보수 정권의 수출 주도, 대기업 위주 정책 때문”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현 이인영 대표도 걸핏하면 야당 탓, 전 정권 탓을 한다. 대표가 그러니 민주당 의원인들 가만있으랴. 압권은 지난해 11월 원내부대표인 윤후덕 의원의 말이다. 윤 의원은 “만약 금년도에 경제성장률 2%대가 깨지면 이 책임은 특히 한국당이 져야 한다”고 했다. 당시는 한국 경제의 연 2% 성장이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이 크게 불거진 때였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전 정권 탓도 모자라 미리 야당 탓부터 한 것이다. 역대 정부 중 최대의 재정을 쏟아붓고도 세계 경제 평균에도 못 미치는 성장률을 기록한 정부·여당이 할 말은 아니다.  
 
19번씩이나 대책을 내놓고도 실패한 부동산 정책은 좌파 포퓰리즘의 진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지금까지 집값을 잡지 못한 건 역대 정부가 부동산을 경기 부양에 활용한 탓”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17차례의 대책 실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되레 “집값 안정 자신 있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였다.
 
맞장구를 친 박원순 서울시장은 또 어떤가. 그는 지난해 말 “현재 퇴행적 부동산 공화국 현상은 이명박·박근혜 시절 ‘빚내서 집 사라’면서 정부가 부채 주도 성장을 주도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뛰는 격이다. 이게 2년 반 만에 강남 아파트값을 두 배로 만들어 놓은 대통령·서울시장의 말인가. 부동산을 ‘편 가르기’ ‘남 탓’의 도구로만 여기니 가능한 말이다. 그러니 바닥 민심도 차갑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아무 부동산 카페에나 들어가 보라. “그때 빚내서 집 산 사람은 떼돈을 번 것 아니냐” “이 정부 말 믿고 기다린 사람은 앉아서 알거지가 됐다. 빚도 못 내서 살 수도 없다”는 아우성 투성이다.
 
경제적 감별법 두 번째는 재정이다. 포퓰리스트 리더는 나라 곳간은 걱정하지 않고 세금을 제 돈 쓰듯 한다. 옥동석 교수(인천대 무역학과)는 “국가의 장기 재정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정부야말로 포퓰리즘 정부”라고 단정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량 지출(2017~2019년 3년간 본예산 기준) 비율은 평균 12%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 높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2050년 국가채무는 2863조원, 국가부채 비율은 85.6%에 달할 전망이다. 재량 지출은 의무 지출과 달리 정권에 따라 증감이 가능하지만, 이 정부 들어 늘어난 10만명의 공무원 인건비와 일자리 안정자금까지 재량 지출에 넣었다. 다음 정부도 이런 지출은 줄이기 어려워 사실상 의무 지출로 봐야 한다. 그만큼 재정 압박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데는 나라의 재정 준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과거 정부는 ‘관리재정수지는 GDP의 3% 이내, 국가채무는 GDP의 40% 이내’를 묵시적 준칙으로 삼아 지켜왔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지난해 5월 “국가 채무비율 40%가 마지노선이란 근거가 뭐냐”는 문 대통령의 한마디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대통령 발언 보름 만에 “2022년 국가 채무비율은 GDP 대비 45%, 971조원에 달할 것”으로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수정했다. 불과 보름 전 GDP 대비 41.6%, 898조원으로 추산, 발표해 놓고 대통령 한마디에 70조원 넘게 늘린 것이다.
 
더 나쁜 건 과거 어느 정부보다 세금을 많이 쓰는 문재인 정부가 장기 재정전망은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 재정 전망은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 시작했다. 통계청의 인구 전망에 맞춰 2060년까지 재정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선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 비판이 잇따르자 지난 17일에야 기획재정부는 “8월에 40년 이상 장기 전망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여건에 맞는”이란 단서를 달았다. 벌써 “고무줄 준칙, 선언적 내용에 그칠 것”이란 비판이 많다.  
 
한국 정치, 어떻게 포퓰리즘에 포획됐나
한국 포퓰리즘의 시작은 김대중(DJ) 정부 때로 봐야 한다는 게 다수설이다. DJ가 1999년 8월 광복절 축사에서 처음 언급한 ‘생산적 복지’가 그것이다. 7조원의 농어민 빚을 정부가 대신 보증해주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혜 범위를 3배로 늘렸다. 근로자 전세자금 대출을 배로 올리고 연간 10조원 이상의 국민주택기금을 확보해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 대학생·대학원생 융자 확대 등을 제시했다. “예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 없이 선거가 임박해 발표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으로 지적됐다. 생산적 복지는 70년대 ‘대중경제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격 포퓰리스트로 분류된다. “아군과 적군을 나누고 지지자를 결집, 포퓰리스트 요소가 많았다”(서병훈 숭실대 교수)는 게 중론이다. 200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결산백서를 내며 “더 많은 포퓰리즘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사모 회원 여러분 다시 한번 뛰어달라”고도 했다. 재벌·강남 때리기로 편 가르기식 분배 정책을 폈고 과거사 파헤치기로 지지층을 결집했다. 신행정수도 공약은 나라 경쟁력을 떨어뜨린 대표적인 포퓰리즘 공약으로 꼽힌다. 포퓰리즘 연구의 대가 안 베르너 뮐러 프린스턴대 교수와 카스 무데 교수 역시 노무현을 한국의 본격 포퓰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다.
 
뒤를 이은 우파 정부도 포퓰리즘에서 자유롭지 않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워 집권한 이명박(MB) 정부는 동반성장, 시장 개입, 녹색 성장을 되레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때 폐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되살렸고 대형마트 휴무제도 도입했다. “기름값이 묘하다”며 물가를 통제하기도 했다. ‘광우병 촛불’에 놀라 ‘친서민’으로 급선회한 결과다.
 
애초 ‘경제 민주화’ 공약을 내걸고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한계가 뚜렷했다. 소득공제를 세액 공제로 바꿔 사실상 부자증세를 단행했다. 담뱃세도 올렸다. 규제 완화와 노동 유연화는 변죽만 울리고 끝났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