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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신 잔재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 그리고 4·15 총선

중앙일보 2020.02.25 00:27 종합 29면 지면보기
권경애 변호사

권경애 변호사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이념은 국민 주권이다. 국민 주권을 실현하는 두 기둥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가 권력 창설의 원리다. 법치주의는 ‘국민이 창설한 국가 권력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때에만 정당성을 갖는다’는 국가 권력 행사의 원리다.
 

관권 동원한 부정선거 기소 충격
공소장 비공개는 국민 알권리 침해

현대 헌법에서 국가 권력은 기본권 보호 의무의 주체이고, 국민은 기본권 향유 주체다. 민주주의는 선거의 공정성과 국민의 정당한 여론 형성을 위한 언론의 자유를 근간으로 실현된다.
 
국가는 공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정사는 부정선거의 역사로 얼룩졌다. 이승만 정부는 1960년 경찰과 정치 깡패를 동원한 3·15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국민은 경찰의 최루탄과 총기 난사에 맞서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이승만을 하야시켰다.
 
유례없는 금권·관권이 동원된 1971년 대통령 선거의 타락상은 박정희의 유신헌법으로 덮였다. 유신헌법 초안 작성자이자 1992년 12월 ‘초원 복국집 사건’ 당시 관권 선거를 획책한 김기춘은 박정희에 이어 박근혜를 보좌했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국가정보원 심리전담반 댓글 의혹으로 정통성이 흔들렸고 결국 탄핵당했다. 이로써 국가 권력기관을 동원한 관권 부정 선거의 유신잔재도 청산됐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이 청와대 조직 8곳과 울산지방경찰청이 지난해 지방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13명을 기소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형사피고인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공소장 비공개를 결정했다.
 
백원우 전 대통령 비서실 민정비서관과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등 주된 피고인들은 선거 당시 공무원 신분이었다. 공소사실인 선거개입 행위는 공무원의 지위에서 행한 것이다. 공무원은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사적 영역에서는 기본권의 향유 주체이지만, 공무 담당 영역에서는 기본권 보호 주체인 국가 권력의 행사자다.
 
이번 사건은 청와대와 경찰이 권력을 행사해서 국민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침해한 것이 본질인데, 공소장 비공개에 인권 타령이 웬 말인가. 국가권력은 기본권이 없다. 추 장관의 “조금 늦게 알아도 될 권리”라는 표현은 국가권력 행사자의 ‘인권’을 앞세워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 해괴한 궤변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한 언론사가 공소장 전문을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언론의 책무를 수행했다.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가 진정서를 가공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공소장에는 송병기 전 울산 부시장이 문해주 청와대 행정관의 메일로 보낸 진정서와 청와대가 울산지방경찰청에 이첩한 범죄 첩보서를 비교한 내용이 나온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선거 전에 1회만 수사 상황을 보고받았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다. 하지만 공소장에는 선거 전 18회나 보고받은 증거도 적시됐다. 공소장에 적시된 증거를 검찰이 조작하지 않은 바에야 청와대가 진정서를 가공한 사실과 수사상황을 보고받은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울산지검에 영장 신청을 압박하는 전화를 걸었다는 박형철 당시 청와대 비서관의 진술도 있다. 자백만으로는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 검찰이 자백을 보강할 증거를 확보했다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한 신문사와 필자를 사전선거운동으로 고발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그러고도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피고인들의 출마신청에는 적격이라 판정했다. 청와대와 집권당의 태도는 유신잔재가 아직 청산되지 못했다는 쓰디쓴 자각과 분노를 일으킨다. 선거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권경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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