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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밝혀주네요, 폐허된 아이티에서 노래하는 션을 위해

중앙일보 2020.02.24 08:00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8)

 
아이티는 비극적인 역사로 굉장히 유명한 나라입니다. 16세기에 토착 원주민이 에스파냐(이들이 전파한 바이러스로 알려짐)에 의해 전멸당하고, 대신 아프리카 흑인노예가 살기 시작했다죠. 근대에 들어 한 국가로 독립했지만 여전히 기아와 질병, 재해에 시달리는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나라에 또 한 번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이티의 비극을 더욱 가중시켰던 일이어서 지금도 기억을 합니다. 아이티 대지진이었죠.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부상하거나 집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몇 달 동안 TV를 켜면 무너진 국회의사당 사진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컴패션에도 아이티 아이를 후원하는 후원자들의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았냐면, 같은 해 4월에 그 중 한 사람과 아이티로 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수 션 씨는 대지진 소식에 직접 아이티로 들어가 상황 파악도 하고 아이들도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아이티컴패션에서 거절의 답문을 보내왔습니다. 어린이들을 구하는 데 먼저 총력을 다하겠다고, 후원자가 들어갈 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였죠. 그래서 한국컴패션은 미국의 한 신문사가 공유해준 사진으로 기금모금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죠. 한편으론 직접 소식을 전하면 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텐데 하면서도, 수혜자들을 보호하고 우선시하는 모습에 참, 그것대로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션 씨는 발만 동동 구르다가 현지에서 허락이 떨어진 4월 소수 정예로 팀을 꾸려 아이티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당시 후원하던 8명의 어린이들을 만났고 모두 무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후 션 씨는 100명의 아이티 어린이를 후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0년 4월 후원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해 아이티로 건너간 가수 션 씨가 현지 어린이센터에서 공연하는 모습.

2010년 4월 후원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해 아이티로 건너간 가수 션 씨가 현지 어린이센터에서 공연하는 모습.

 
저는 위의 사진을 예로 들어 사진과 빛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션 씨가 즉석에서 마이크를 들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저 사진은 마치 일부러 공연장 사진의 느낌을 내기 위해 서치라이트를 역광으로 비춘 것 같지만, 그것은 어린이센터에 난 구멍으로 햇볕이 강렬하게 비춰 들어오면서 우연히 만들어진 장면입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곳을 션 씨의 노래와 춤, 아이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이 꽉 채웠죠. 션 씨도 그랬지만, 사실 제일 신나 했던 것은 아이들을 돌보던 아이티컴패션 직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드물게 아무 장비도 없이 션 씨가 춤을 추며 노래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가 컴패션 현지에 가는 목적이 공연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전에도 후에도 그런 모습은 못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마음껏 춤을 추더라고요. 그 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살아있고 중단됐던 어린이센터도 재개되니 기뻤나 봅니다. 나중에 난민촌도 방문했는데, 무수히 펼쳐진 구호 텐트들 속에서 컴패션 어린이들과 뒤엉켜 신나게 춤추며 환호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이들과 가족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대지진 후, 4개월이 지났지만,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도시 자체가 파괴돼서 성한 건물이 없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텐트촌이 펼쳐졌고 그들은 물론, 집에서 거주가 가능한 정도의 가족들도 빽빽하게 들어찬 구호 물자를 안전하게 나눠 주기 위해 사투가 벌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다행히 컴패션은 현지 직원들이 직접 어린이들과 가정을 돌봤기 때문에 지진 후 즉각적인 도움이 가능했다고 하더라고요. 현지 직원들에게 들어보니 구호 물자를 서로 가지려고 총격전까지 벌어져 매우 심각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위험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는데 현지 직원은 물론 졸업생, 그 가족들까지 하나가 되어 안전하게 혜택을 받고 중단됐던 양육 프로그램도 다시 열렸다고 합니다. 

 
2013년, 션 씨와 함께 다시 한 번 아이티를 방문했다. 무너진 아이티가 아니라 희망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때 만난 컴패션 출신 국회의원 베간.

2013년, 션 씨와 함께 다시 한 번 아이티를 방문했다. 무너진 아이티가 아니라 희망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때 만난 컴패션 출신 국회의원 베간.

 
2013년에 션 씨와 한 번 더 아이티를 방문했습니다. 다시 션 씨와 함께 갔죠. 집이 고쳐져 집으로 들어간 친구도 있었고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민촌에서 텐트 생활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학용품을 챙겨간 션 씨에게 사실 “속옷이 더 필요해요”라고 말한 어머니의 간절한 눈빛도 보았고, 배가 고프지 않은 지 하루 종일 신나게 자신의 후원자 션 씨와 축구를 하던 아이도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이려고 기껏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해먹였더니 아침을 처음 먹어본다며 배탈이 난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아이들은 현지 선생님들과 직원들 품에서 꿈을 꾸고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자기 후원자를 보며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컴패션 졸업생 베간 에우스는 당시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이 친구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생소했을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를 몹시 반가워하며, 컴패션 가족은 다 자기 엄마 아빠라고 했습니다. 재방문 시, 저는 단순히 지진 후 아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서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베간을 만난 후 알았습니다. 가족의 안부가 걱정되는 것처럼 아이들이 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그리고 또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시차 적응도 힘들고 텐트촌이며 빈민가며 위험한 지역에서도 션 씨는 아침마다 달리기를 했어요. 곧 있을 기부 마라톤 때문에 쉴 수 없다고 했지요. 정말 대단했습니다. 나도 저런 결심 하나 멋지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죠.
 
빛을 주제로 다루고 싶어 꺼낸 한 장의 사진. 그때 션 씨를 보면서 뭔가 멋진 결심 하나 해보자고 했던 것을 이제야 실천하는 마음으로 작게나마 10년 전 아이티에서 일어난 엄청난 비극을 다시 꺼내 봅니다. 그럴지라도, 무너진 폐허가 아니라,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먼저 떠올라 참 다행입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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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호 허호 사진작가 필진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중심에서 광고 사진을 찍던 사진작가. 가난 속에서도 꽃처럼 피어난 어린이들의 웃음에 매료돼 벌써 14년째 전 세계 슬럼가 아이들의 미소를 사진에 담고 있다. 37년차 사진작가가 들려주는 인생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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