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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번이 지역사회 전파 신호탄…정부는 그때 타이밍 놓쳤다”

중앙일보 2020.02.24 00:04 종합 8면 지면보기
정기석

정기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이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1월 20일 첫 환자 발생 이후 최근 매일 100명 이상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1000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치명률은 약 1%다. 사스나 메르스에 비해 낮지만 독감의 20~30배다. 매년 독감으로 우리 국민 1000~2000명이 사망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코로나19로 인해 2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outlook]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
심각 단계로 격상 않고 낙관론 펴
모든 환자 음압병실 수용 못해
1인실·다인실 분산배치 계획해야

17개 시·도에 모두 확진자가 발생해 전국적인 전파는 이미 시작됐다. 첫 환자 발생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방역당국은 감염병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올려 지역사회 전파에 대비했다. 제한적 전파가 우려되던 초기에 한 단계 높은 방역으로 대응했다. 1번, 2번, 3번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역학조사 결과를 내놨고, 확진자 입원과 접촉자 격리가 신속했다.
 
문제는 29번 환자의 출현부터다. 지역사회 전파의 첫 신호탄이 터졌는데도 정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다. 수일간 환자가 발생하지 않는 소강상태가 이어지자 정부와 여당의 책임자들이 희망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31번 환자는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후에도 정부의 희망은 이어진다. 대구·경북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비과학적인 선언으로 ‘심각’ 단계로 격상시킬 기회를 또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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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에 전국적으로 감염 경로가 모호한 환자들이 생겨났는데, 이는 확실한 지역사회 감염이다. 방역당국의 감염병 위기대응 지침서에는 국내 유입 신종 감염병의 지역사회 전파 또는 전국적 확산이 있으면 ‘심각’ 단계로 대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누가 이 규정을 어겼을까. 방역은 언제나 선제적이어야 하고, 역학조사는 범죄 수사 못지않게 철두철미해야 한다. 방역 관계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뒷북” “오리무중” “늑장대응”이다. 현장 방역 요원들은 ‘심각’ 단계로 격상하기를 몹시 기다렸을 것이다. 분명히 실기(失機)했지만 23일 그나마 늦게라도 격상한 게 다행이랄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첫째, 이미 전국적인 전파가 이뤄졌으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최대한 저지해야 한다. 이를 포기하면 코로나19는 다음 겨울에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정착을 막기 위해서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확진자들을 일정 기간 격리시켜야 하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책이 필요하다. 이제는 모든 환자를 음압병실에 수용할 수 없으니 병실 수급 계획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확진자들을 의학적으로 분류해 음압병실, 1인실, 다인실, 전용 병동 등으로 분산 배치를 계획해야 하며, 그래도 병상이 모자랄 수 있으니 지역별로 ‘전용 병원’을 충분히 지정해 사태 악화에 대비해야 한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고 인구밀도가 높아 우리가 중국 허베이성과 같은 꼴이 안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둘째, 방역 총책임자인 정은경 중대본 본부장에게 방역과 관련한 전권을 위임해야 한다. 정 본부장은 최고의 전문가다. 국민과 정부는 그를 믿고 맡겨야 한다.
 
셋째, 국민도 사태의 엄중함을 받아들이고 정부의 정책에 적극 호응하되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이 병에 걸려도 쉽게 회복한다. 65세 이상 노인·고혈압·당뇨·호흡기질환 등을 가진 만성질환자·면역저하자들이 위험군인데, 모두 우리 가까이 있는 분들이다. 가족과 이웃을 위해 개인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방역당국의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러면서 백신과 특효약이 빨리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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