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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활명수·쌍화탕…화장품과 ‘결혼’하는 바이오·제약

중앙선데이 2020.02.22 00:21 674호 15면 지면보기
단순 화장품(cosmetics)도, 단순 의약품(pharmaceutical)도 아니다. 둘이 결합했다. 의학적으로 효능이 검증된 기능성 성분을 포함한 화장품인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이 시장에서 인기를 모으면서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 17일 바이오의약품 제조 기업 메디톡스는 새 코스메슈티컬 브랜드 ‘뉴라덤’ 출시를 발표했다.   
 

새 먹거리 떠오른 코스메슈티컬
소비자 신뢰, 매년 15% 이상 성장
올 시장 규모 1조 2000억 달할 듯

국내 업체 40여 곳 앞다퉈 진출
저품질 제품 난립, 신약 소홀 우려

#피부 조직 생성과 탄력 공급을 돕는 펩타이드 성분을 회사 연구진이 조합해 개발한 ‘엠바이옴-비티’라는 물질 기반의 코스메슈티컬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2006년 주름을 펴주는 보톡스 주사제의 국산화로 유명해진 특유의 노하우를 활용했다.
 
앞서 에너지 음료 ‘박카스’로 유명한 제약사 동아제약도 지난해 10월 코스메슈티컬 브랜드 ‘파티온’을 선보이면서 시장에 가세했다. 박카스의 타우린(아미노산의 일종) 성분을 함유한 남성 피부 개선제,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노스캄 콤플렉스’라는 성분을 함유한 미백 크림 등으로 첫 라인업을 구성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크림 제품으로 외부 자극에 따른 피부 손상 개선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제품을 2주 썼을 때 손상 피부의 경표피 수분 손실량이 96%가량 복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1조2000억원 규모 코스메슈티컬 시장을 잡아라’. 국내에서 코스메슈티컬 개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관련 시장이 최근 급속도로 커지면서 새 먹거리 창출과 확보에 혈안이 된 기업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업계에 따르면 2014년 약 5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코스메슈티컬 시장은 해매다 평균 15% 이상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1조원 규모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는 더 커져 1조2000억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그 사이 연평균 4%가량 성장해 15조원 규모로 형성된 국내 화장품 시장과 비교하면 규모는 작아도 성장세는 돋보인다. 시장 포화로 수많은 화장품이 난립하면서 여성 소비자들이 한층 검증된, 피부에 좋은 제품을 찾고 있는 데다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 ‘그루밍족’까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국내 의약품 시장도 2018년 기준 23조원 규모에 이르지만 2014년부터 연평균 성장률은 4.5% 정도에 머물렀다. 시장 조사 업체 IMS헬스코리아는 2016년 한 보고서에서 “면역항암제 등 전문의약품은 고성장을 유지하겠지만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 등 복제의약품, 그리고 일반의약품과 백신은 성장이 다소 정체되면서 앞으로 5년간 4.7%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지난해까지 5% 미만 성장률이 현실이 된 가운데, 실적 개선이 급선무인 바이오 업계는 물론 사업 다각화에 보수적이었던 제약 업계까지 코스메슈티컬로 적극 눈을 돌리고 있는 배경이다.
 
일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 바이오·제약사 40여 곳이 코스메슈티컬 시장에 진출했다. 특히 수적으로 많은 제약사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동국제약이 콜라겐 생성을 돕는 식물 성분을 함유한 ‘센텔리안24’ 브랜드로 2015년 동종 업계 최초로 코스메슈티컬 시장에 뛰어든 이후 진입이 줄을 이었다.  
 
일동제약이 인체에 이로운 미생물인 프로바이오틱스 성분을 함유한 ‘퍼스트랩’으로, 보령제약이 피부 멜라닌 세포 형성을 억제하는 트라넥삼산 성분을 함유한 ‘트란시노’로 승부하고 있다. 이들 제약사에서 코스메슈티컬은 매출 전체의 5~20%를 기록하면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바이오 업계에선 셀트리온 계열사인 셀트리온스킨큐어가 ‘셀큐어’로 3년 넘게 시장을 공략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소 10년 후를 내다보고 진행하는 신약 개발에 비해 (코스메슈티컬 개발은) 저비용으로도 빨리 매출 증대와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특히 메디톡스나 동아제약처럼 이미 보유한 제조 기술을 접목하면서 신제품 개발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자사 인기 음료 ‘까스활명수’의 5가지 생약 성분을 함유한 코스메슈티컬 ‘활명’을 개발한 동화약품, ‘광동쌍화탕’에 들어가는 천궁·당귀·지황 등 한방 원료를 넣어 ‘피부약방’을 만든 광동제약이 그런 사례다. 여기에 코스메슈티컬은 개발 후 판매 허가를 받기가 의약품보다 까다롭지 않고, 소비자들이 여느 화장품보다 신뢰감을 갖고 접근하는 분야라 시장 연착륙이 수월하다는 이점도 있다.
 
기업들이 점유율 확보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유익할 만한 제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도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분석한다.  
 
다만 우려도 있다. 하태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기업 입장에선 장기를 살려 실적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분야”라면서도 “시장 경쟁이 격화되고 있어 투입한 비용 이상의 결과물을 얻으려면 기술과 생산력을 충실히 다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경쟁 격화로 저품질 제품 남발이나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업들이 코스메슈티컬에 지나치게 의존해 본업인 바이오·제약에 소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코스메슈티컬 사업을 확대하면서 전체 매출 대비 신약 연구·개발비 비중을 낮추기도 했다.
 
건강·미용 용품 파는 올리브영 등 ‘H&B스토어’도 성장세
국내 코스메슈티컬 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올리브영·랄라블라·롭스·부츠 같은 ‘헬스앤드뷰티(H&B)스토어’의 등장과 인기도 있다. 소비자가 병·의원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외에도 화장품·건강보조식품 등 건강과 미용 관련 용품을 주로 파는 가게다. 코스메슈티컬도 취급 품목에 포함된다. 해외에서처럼 ‘드러그스토어(drugstore)’라 불리기도 하지만, 약국과 잡화점이 결합한 형태인 해외와 달리 한국은 건강·미용 분야에 특화한 가게라는 의미에서 관련 업계가 H&B스토어라고 칭하는 편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전국에 1500곳 넘게 들어선 국내 오프라인 H&B스토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CJ올리브영의 올리브영이다. 1200곳 넘는 매장을 확보해 이달 현재 매장 수 기준 시장점유율이 81.4%에 이른다. 지난 1999년 국내 첫 매장을 연 이후로 20년간 시장 선점 효과를 이어온 결과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올리브영 등에선 법적으로 의약품을 팔 수 없었다. 그러나 2011년 일부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해 일반 소매점에서의 판매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국내 H&B스토어 시장도 급격히 커졌다. 이에 따라 2009년 약 1500억원 규모에서 2012년 6000억원, 2015년 1조원이 됐다. 2018년엔 2조원이 넘은 것으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추산했다.
 
GS리테일의 랄라블라(9.3%), 롯데쇼핑의 롭스(8.6%), 이마트의 부츠(0.7%)가 올리브영 뒤를 잇고 있다. 랄라블라와 롭스는 각각 100곳 이상의 매장을 뒀다. 주요 타깃인 젊은 여성 소비자 다수가 이런 H&B스토어에 진열된 다양한 건강·미용 관련 용품을 눈으로 살피고 구입하고 있다.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판매 채널이 전반적으로 온라인에 밀려 침체된 유통 업계에서 H&B스토어가 다소 이례적으로 오프라인 매장 수를 더 늘리면서 성장세를 유지한 이유다. 최근의 코스메슈티컬 인기도 이젠 거꾸로 H&B스토어 인기를 뒷받침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올리브영은 지난해 10월 서울 홍대입구에서 6년 만에 새로 단장한 매장을 열면서 출입문과 가까운 초입부에 코스메슈티컬을 향수 등과 함께 집중 배치했다. 상권 데이터 분석 결과 관련 수요가 많다고 판단해서다.
 
다만 근래 들어 H&B스토어 자체의 미래 성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쟁 격화에다 임대료 상승으로 매장 수익성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다. 특히 후발주자일수록 이 같은 상황에 고전하고 있다. 부츠는 지난해만 매장 18곳이 문을 닫았고 올해 사업 철수설까지 제기된다. H&B스토어들은 전략 상권 집중 공략과 온라인 쇼핑몰 강화 등으로 돌파구를 찾는다는 계획이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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