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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스케 스타일’ 서울시향, 웅장·간결하게 ‘부활’ 알리다

중앙선데이 2020.02.22 00:21 674호 18면 지면보기

포스트 정명훈, 상임 지휘자 첫 무대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신임 예술감독(가운데)이 14일 첫 무대를 마쳤다. 악장 웨인 린과 주먹 인사를 나누며 격의 없는 모습을 보인 벤스케 감독은 ’모든 단원이 온 마음을 다해 말러가 쓴 음악적 내용을 모두 표현해냈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신임 예술감독(가운데)이 14일 첫 무대를 마쳤다. 악장 웨인 린과 주먹 인사를 나누며 격의 없는 모습을 보인 벤스케 감독은 ’모든 단원이 온 마음을 다해 말러가 쓴 음악적 내용을 모두 표현해냈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시향]

“나 살기 위해 죽으리라.”
 

호른 10대, 타악기 9종 거대 관현악
말러 의도 극대화시킨 음향 가득

제1·2 바이올린 지휘자 양 옆 배치
악기 특성 강조 독창적 해석 돋보여
“말러 2번은 시작에 대한 모든 것”

지난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은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의 음향으로 가득찼다. 호른 10대, 타악기 9종류가 포함된 말러식의 거대한 관현악단이 뿜어내는 소리였다. 새로운 지휘자를 맞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신선한 해석으로 달라진 시대를 선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휘자는 핀란드 태생의 오스모 벤스케(67). 지난해 6월 서울시향의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선임됐고, 이날 감독으로 첫 무대에 섰다. 3년 임기의 시작이다.  
 
말러 교향곡 2번의 부제는 ‘부활’이다. 이는 서울시향에게도 각별한 곡이다. 세계적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이 선택한 첫 한국 교향악단으로 화제를 모으며, 이 곡을 정명훈 지휘로 녹음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서울시향 ‘황금기’의 음악이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떠난 것은 2015년 12월. 그동안 서울시향은 지휘자 없이 객원 지휘 체제로 운영돼왔고, 벤스케는 4년 만에 등장한 상임 지휘자다. 벤스케는 “말러 2번은 시작에 대한 모든 것이다. 새로운 오케스트라와 출발할 때 아주 좋은 선택”이라고 했다.
 
해석은 과연 독창적이었다. 간결하고 핵심적인 말러였다. 1악장 첫 부분의 절뚝거리는 리듬부터 벤스케는 음절마다 짚어가며 연주하는, 다소 딱딱할 수도 있는 해석을 요구했다. 소리와 리듬이 선명했다. 느린 부분은 극도로 느리고 섬세했으며 음향이 작은 부분도 극단적으로 작았다.  
 
오스모 벤스케

오스모 벤스케

1악장 마지막에서 쏟아지듯 해체되며 끝나는 부분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쏜살같이 극적으로 끝내버렸다. 또한 마지막 악장의 합창이 시작하는 부분은 극도로 작은 소리를 구현하며 당시로선 혁신적으로 이 부분에 셈여림 표시 피아노(p)를 세 개(ppp) 적어놓은 말러의 의도를 되살렸다. 5악장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모든 오케스트라, 합창단, 독창자가 가세하는 “나는 날아가리 살기 위해 죽으리” 부분도 효과적으로 터져나왔다.
 
지휘자가 어떤 음악을 보여주고 싶은지는 다섯 악장 내내 분명했다. 그는 입체적 음악을 만들기 위해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분리해 지휘자의 양 옆으로 놓는 자리 배치를 선택했다. 다른 음악에서 1바이올린을 보조하는 2바이올린은 말러 음악에서만큼은 독자적인 역할을 맡곤한다. 말러는 바이올린뿐 아니라 모든 악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한 작곡가다. 모든 악기에 핵심적인 선율과 리듬을 부여했다.  
 
벤스케는 말러 음악의 해부도를 보여주는 듯 강조할 음향이 더욱 튀어나오도록 설계했다. 갑작스러운 클라이맥스는 더욱 갑작스럽게 만들어버렸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함께한 말러 2 번에 비해 더 직접적이지만 덜 서사적인 연주였다.
 
말러의 교향곡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어렵게 하는 요구가 이어진다. 낮은 음역의 악기가 높은 음을 내는 동안 높은 음의 악기는 반대로 하고, 한 구절 내에서도 소리의 크기가 수없이 바뀐다. 모든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동안에도 셈여림이나 표현은 악기마다 제각각 다르게 쓰여있다.  
 
벤스케는 이런 특징을 마치 청중에게 해설이라도 하듯 하나하나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작은 소리가 금세 커졌다 작아지는 말러의 의도가 강조됐다. 어려운 곡인 만큼 기술적인 실수는 있었다. 금관악기는 강하고 찌르는 듯한 클라이맥스에서 손색없는 연주를 선보인 반면 서정적이고 노래하는 부분에서 오히려 정확한 음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악기 파트들은 정교한 리듬이 일치돼야 하는 몇 군데에서 고전했다.
 
특히 말러의 고유한 특징인 무대 밖 연주 부분에서 균형이 무너졌다. 말러는 운명과 투쟁하는 한 영웅이 쓰러진 뒤 땅에 묻히고, 그 후 생을 돌아보며 구원을 얻는 내용으로 다섯 악장을 구성했다. 그중 마지막 악장에서 말러는 “지상의 삶에 대해 마지막으로 전율하는 메아리”라며 금관악기, 타악기가 무대 밖에서 연주해 소리만 공연장 안으로 들리도록 했다.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카메라와 모니터로 소통해야 하는데, 이날 연주에서는 무대 위 오케스트라와 무대 밖 연주자들의 호흡이 몇 차례 어긋났다.
 
이튿날 같은 곡으로 한 연주에서는 이런 부분이 개선됐다. 음악칼럼니스트 황장원은 “큰 실수가 없었고, 지휘자의 개성적이고 정교한 해석이 돋보여 서울시향이 새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연주였다. 정명훈 시대와는 전혀 다른 음악을 선보일 것이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벤스케와 서울시향의 연주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음악감독으로 선임되기 전인 2015년 첫 연주(베토벤 교향곡 5번)를 비롯해 네 차례 서울시향을 지휘했다. 벤스케는 2022년까지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을 예정이며, 핀란드 라티 심포니에서도 상임지휘자(1988~2008)를 끝내고 명예지휘자를 맡고 있다.  
 
그는 서울시향에 대해 “기교적으로 능숙하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을 즐길 줄 안다. 지휘자가 꿈꾸는 이상적 조합”이라 말한 바 있다. 또 “모두가 한 팀으로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한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새로운 지휘자의 새로운 스타일을 알린 벤스케는 올해 서울시향과 함께 5번 더 연주한다. 5월 폴란드의 현대 작곡가 루토와프스키(5월 21·22일), 영국의 엘가(5월 29일)를 연주하고 8월엔 주특기인 시벨리우스(8월 20·21일)를 선보인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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