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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 그 아이, 흥국생명 이재영

중앙일보 2020.02.21 10:59
20일 KGC인삼공사전 뒤 이재영을 끌어안아주는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 [사진 한국배구연맹]

20일 KGC인삼공사전 뒤 이재영을 끌어안아주는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 [사진 한국배구연맹]

“평범한 아이는 아닌 거 같아요.”
2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 경기에서 이긴 뒤 박미희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이재영(24)의 복귀전을 평가했다. 이날 경기에서 보여준 이재영의 활약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오른 무릎 연골이 찢어져 한 달 넘게 쉬고 나온 선수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유의 활기찬 공격과 수비는 물론 평소보다 더 뛰어난 블로킹과 서브 능력까지 발휘하며 팀내 최다인 26점을 올렸다. 흥국생명은 3위 자리를 쫓던 KGC인삼공사를 3-1로 누르고, 승점 8점 차로 달아났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 생각보다 너무 잘해줬다"며 “다른 선수 같았으면 경기 감각을 찾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아이는 아니다"라고 웃었다. 박 감독은 "직전 도로공사전에서 7연패를 끊어내서 부담이 줄긴 했다. 올시즌 참 힘든데 그동안 (박현주, 이한비의 성장 등)얻은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상대팀 이영택 감독대행도 "에이스 싸움이었는데 이재영에게 당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경기를 마친 이재영은 방송사 인터뷰 도중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미희 흥국생명을 끌어안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 앞에서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웠고, 기자회견장에서도밝은 모습을 보였다.
 
20일 KGC인삼공사전에서 리시브를 하는 이재영. [사진 한국배구연맹]

20일 KGC인삼공사전에서 리시브를 하는 이재영. [사진 한국배구연맹]

이재영은 "시즌 아웃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쉽지 않았지만 재밌었다. 코트가 그리웠고, 뛰지 못해 답답했다. 많이 행복하다"고 했다. 인삼공사는 이날 경기에서 이재영에게 집중 서브를 날렸다. 하지만 이재영은 36개의 서브를 받아내면서 한 개의 범실도 하지 않았다. 효율은 33.33%. 이재영은 "인삼공사는 항상 내게 서브를 넣는다. 나는 받고 때리는 게 편하고 재밌다"고 했다. 생애 첫 트리플크라운(후위공격 5개, 블로킹 4개, 서브득점 3개)에 대해선 "끝나고 나서 알았다. 정신이 없었다"며 "이기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의미는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했다.
 
이재영은 "감각에 대한 우려는 있었다. 그런데 혼자 운동을 하는데 몸이 나쁘지 않았다, 하루하루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자기 전에 '더 나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그랬다"고 했다. 그래도 몸 상태가 완벽하진 않다. 특유의 중앙후위 공격 때도 강타보다는 페이트를 많이 썼다. 이재영은 "그게 최선이었다. 공격 연습한 지 3일 됐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아프지 않은)왼쪽만 했다"고 털어놨다. 리베로 김해란은 수비 범위를 넓히고, 세터 조송화도 이재영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재영은 "해란 언니와 송화 언니에게 고마웠다. 특히 송화 언니가 정확하게 못받았을 때도 토스 연결을 정확하게 많이 해줬다. 덕분에 실수를 해도 감춰졌다. 중요할 때마다 루시아도 잘 해줬다. 동료들 모두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복귀한다고 하니 감독님이 당겨쓰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시더라. 그러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내가 서두른 것"이라며 "사실 힘든 시기에 이성을 잃었는데 감독님이 이성의 끈을 잡아주셨다"고 했다.
트리플크라운 달성한 이재영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2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대전 KGC인삼공사 프로배구단의 경기. 3세트 흥국생명 이재영이 KGC인삼공사의 실책에 기뻐하고 있다. 이재영은 이날 경기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2020.2.20  tomatoyoon@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트리플크라운 달성한 이재영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2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대전 KGC인삼공사 프로배구단의 경기. 3세트 흥국생명 이재영이 KGC인삼공사의 실책에 기뻐하고 있다. 이재영은 이날 경기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2020.2.20 tomatoyoon@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날 대표팀 에이스 김연경(32·엑자시바시)는 국내 재활 치료를 마치고 터키로 떠났다. 출국 인터뷰에서 김연경은 이재영에게 "어려운 시기지만 잘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잘 이겨낼 것"이라고 응원을 보냈다. 이재영은 "기사를 봤다. 김연경 언니가 부상당해서 쉬고 있을 때 한 번씩 연락했었다. 그 때마다 나에게 좋은 말을 해줬다. '괜찮고, 잘될거다. 힘내라. 시즌 때는 잠깐 쉬어가도 돼'라면서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줬다"며 "큰 힘이 됐다. 언니한테 고맙게 생각한다. 또 대표팀에 있을 때도 좋은 말을 많이 해줬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재영은 "재활은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정말 힘들었다. 나는 멘탈이 부서졌다"며 "언니는 그런 경험이 많을 것이다. 어떤 말을 해야하질 모르겠지만 나보다 멘탈도 강하기 때문에 언니는 스스로 더 잘할 것이다. 나 역시 응원한다. 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흥국생명은 이날 승리로 사실상 포스트시즌 진출이 매우 가까워졌다. 남은 6라운드 5경기에서 승점 8점만 보태면 3위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최근 도로공사와 IBK기업은행이 매우 부진한데다 이재영까지 돌아와 KGC인삼공사가 전승을 하지 않는 한 봄 배구가 유력하다. 이재영은 "정규시즌 우승은 힘들지만 챔프전 우승을 하고 싶다"며 "힘든 시간이 밑거름이 되서 잘 됐으면 좋겠다. 좋은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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