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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선] ‘종식’이 아니라 ‘증식’이었다

중앙일보 2020.02.21 00:22 종합 28면 지면보기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둑이 터졌다.
 

대통령 “종식” 발언에 대처 안이
복지 장관 “지역 감염 예견” 시인
이판에 청와대는 ‘짜파구리’ 오찬

분명 문재인 대통령은 일주일 전인 지난 13일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이틀 새 70여 명 늘고 사망자도 나왔다. 정신과 폐쇄 병동에 장기 입원해 외부 접촉조차 없던 환자가 감염되는 등 감염원과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감염 공포도 덩달아 무차별적으로 확산 중이다. 오죽하면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진 대구에선 택시운전사가 “손님이 타면 무섭다” 하고, 약국 약사는 “체온계 수십 개가 매진되는 등 하루 만에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소연할까.
 
갑작스러운 확진자 급증이라는 새 국면을 맞닥뜨린 국민은 이처럼 생업을 제대로 못 이어갈 만큼 패닉에 빠졌는데 청와대와 정부 대응을 보면 위기의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한가하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자화자찬을 쏟아내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김어준이 진행하는 tbs 라디오방송에 나와 “국제사회가 한국의 감염병 확산 차단을 높게 평가한다”며 한 치 앞도 못 내다본 경솔한 소리를 늘어놓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청와대 얘기다.
 
수십 명의 추가 확진자가 확인된 직후인 19일 밤 박능후 장관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사회 전파 시기가 오리라는 것을 ‘사실은’ 예측하고 있었다”며 “예견했던 바라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예견했던 바라니. 그런데도 대한의사협회의 ‘중국인 유입 차단’ 경고 등 전문가 집단 의견은 무시하면서 중국인 입국과 활동에 아무 제한을 두지 않아 애꿎은 우리 국민만 감염 공포에 시달리게 뒀단 말인가.
 
의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종식” 발언 나흘 뒤엔 “일부 언론이 지나치게 공포나 불안을 부풀려 경제 심리나 소비 심리를 극도로 위축시킨다”며 언론을 쓸데없이 공포를 과장하는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그리고 이에 응답하듯 각 부처는 경쟁적으로 안이한 대처를 쏟아냈다. 집단 감염으로 이어질 우려가 큰 집단행사는 연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전문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외식업(자영업자) 돕는 마음으로 외부 식당을 이용하라”고까지 했다. 전문가 집단에선 “누군가 청와대에 잘못된 보고를 하고 있다”며 “전염력이 매우 높아 끝나려면 멀었다”고 끊임없이 우려를 제기했지만 정부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은’ 알고 있었다니.
 
박 장관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정부는 대통령의 호언장담처럼 코로나19가 곧 잠잠해질 게 아니라 오히려 확산되리라는 걸 진작부터 알았는데도 국민을 위협으로 모는 쪽으로 유도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청와대와 각 부처가 서로 코드를 맞추느라 국민을 기만한 셈이다. 아마 박근혜 정부 시절에 이런 발언이 나왔다면 지금의 여당 지지자들은 ‘정부를 규탄한다’며 방독면이라도 뒤집어쓰고 시청 광장을 가득 메웠을 것이다.
 
국민을 걱정하는 정부에서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황당한 전개이다 보니 일부에선 그때 대통령이 “머지않아 ‘증식’될 것”이라고 바이러스 창궐에 대해 경고한 걸 대통령의 경상도 억양에 어두운 국민들이 ‘종식’으로 잘못 알아들어 이 고생을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문 대통령은 정말 한시도 코로나19의 ‘증식’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청와대는 확진자가 드물던 시기부터 진작에 헬기를 동원해 공중 방역을 했고, 국민들은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못 구해 발만 동동 구를 때도 청와대 춘추관과 사랑채, 효자동 진입로까지 철두철미하고 꼼꼼하게 방역을 했으니 하는 말이다.
 
대통령은 이런 철저한 방역 덕분에 코로나19가 전혀 불안하지 않으니 이 시국에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 ‘기생충’팀을 불러 "내 아내가 여러분에게 헌정하는 짜파구리”라며 목살 넣은 고급 오찬을 대접했을 것이다. 이날 봉 감독은 무려 7분여 이어진 문 대통령의 인사말 뒤에 "완벽한 어휘 선택으로 기승전결로 마무리하시는 걸 보니 글 쓰는 사람으로 충격에 빠졌다”고 대통령을 칭송했다 한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통령 부부와 기생충 팀이 배역 이름 맞히기 퀴즈를 주고받으며 즐기는 사이 국민들은 전혀 다른 이유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파안대소하던 바로 그 시간에 다른 나라가 우리 국민을 입국금지해도 할 말 없는 확진자 2위 국가가 됐으니.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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