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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분노는 불공정에 대한 불만, 계층이동이 막혔기 때문”

중앙일보 2020.02.20 16:54

세계 경제석학 2020 진단 ⑧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 경제학과 교수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2011년 뉴욕에서 열린 중국계 미국인의 정재계 모임 '100의 위원회(Committee of 100)' 연례 행사에서 중국 경제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삭스는 친중국 경제학자로, 평소 화웨이 등 중국 대기업 옹호론자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2011년 뉴욕에서 열린 중국계 미국인의 정재계 모임 '100의 위원회(Committee of 100)' 연례 행사에서 중국 경제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삭스는 친중국 경제학자로, 평소 화웨이 등 중국 대기업 옹호론자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지난해 지구촌 곳곳의 도시는 분노로 들끓었다. 홍콩·파리·산티아고 등 선진국·신흥국·개발도상국 할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졌다. 여기에 놀라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위가 확산된 곳은 모두 소위 ‘잘사는’ 도시로 꼽힌다.  
 
전통적으로 경제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보면, 파리는 6만 달러, 홍콩은 4만 달러, 산티아고는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1만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8년 기준) 
 
국가 경쟁력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발행한 ‘2019년 글로벌 경쟁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은 3위, 프랑스는 15위, 칠레는 33위를 차지했다. 모두 높은 수준이다. 특히 칠레는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순위로, 다른 국가를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그렇다면 왜 부자 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일까. 중앙일보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경제학계의 록스타’로 불리는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65)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를 미국 뉴욕에서 만났다. 빈곤 퇴치와 경제 개발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삭스 교수는 “프랑스·홍콩·칠레는 전통적 관점에서는 경제 모범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국가 외에도) 경제적 자유가 많이 허용되는 국가일수록 개인의 자유와 사회 계층 이동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대중이 분노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삭스 교수는 매년 타임(Time)지 선정 '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유일한 석학(碩學)이다. [AP=연합뉴스]

삭스 교수는 매년 타임(Time)지 선정 '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유일한 석학(碩學)이다. [AP=연합뉴스]

왜 부유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나.  
“2018년 기준 세계 행복지수 평가에 따르면, 프랑스·홍콩·칠레의 국민 대다수는 그들의 삶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낀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장 큰 요인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됐다는 무력감이 작용했다.”
 
개인의 자유가 부족하다는 얘긴가.  
“그렇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에서는 매년 전 세계 국가별로 ‘당신은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조사에서 홍콩은 66위를 차지했다. 1인당 GDP 기준으로 전 세계 9위인 경제 강국인 것과 별개로 대중의 느끼는 삶의 자유의 수준은 한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와 칠레도 1인당 GDP 기준으로는 각각 세계 25위, 48위인 것에 비해 자유의 수준은 각각 69위, 98위를 기록했다.”
 
파리는 ‘유류세 인상’, 홍콩은 ‘범죄인 인도 법안’, 산티아고는 ‘지하철 요금 인상’ 등 각각의 시위가 촉발된 이유는 다른데.  
“각각의 시위가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종합해 보면 불공정에 대한 불만, 계층 간 이동이 가로막히면서 생긴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세 도시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찾고, 스스로 집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넘어 절망을 느끼고 있다. 홍콩은 평균 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칠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소득 불평등을 기록했다. 프랑스에서는 엘리트 집안의 자녀가 일반인은 꿈도 못 꿀 부를 일생 동안 누린다.”  
 
그렇다면 GDP·성장률 같은 전통적 경제 지표는 국민의 삶의 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1인당 GDP는 한 나라의 경제 평균 소득을 측정하지만, 분배의 정도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들, 즉 공정성이나 공평함에 대한 대중의 인식, 대중의 경제적 취약성, 정부에 대한 신뢰 등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혀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은 여전히 플러스 성장 중이고, 50년 만에 최저 실업률을 달성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 정책 면에서는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절대 사실이 아니다.”
삭스 교수는 '록스타 경제학자'란 별명을 갖고 있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세계적 록그룹 ‘U2’의 보컬 보노(Bono)는 7년 째 빈곤 퇴치활동의 파트너다. [AP=연합뉴스]

삭스 교수는 '록스타 경제학자'란 별명을 갖고 있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세계적 록그룹 ‘U2’의 보컬 보노(Bono)는 7년 째 빈곤 퇴치활동의 파트너다. [AP=연합뉴스]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1월 14일 자 종합 10면 참조)는 트럼프의 법인세 인하가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고 했는데.  
“배로 교수는 트럼프의 법인세 인하를 지지한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기업 성장이 더 높은 임금·낮은 실업률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중에게 혜택을 준다는 주장을 편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뻔한 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배로 교수는 GDP와 같은 지표를 치우고,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0%가 법인세 인하를 지지하고, 49%가 반대했다. 대중은 법인세 인하가 기업 성장 촉진제보다는 임금 불평등, 정부 재정 적자의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50% 미국인은 미국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변한 비중은 67%에 달한다.”
 
그래도 미국이 실업률을 50년 만에 최저치로 낮출 건 괄목할 만한 성과 아닌가.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최근 미국에서는 실업률로도 나타나지 않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국민 전체적으로 불안감(anxiety)이 상당히 커졌다. 갤럽은 ‘최근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미국인이 과거 어느 때보다 스트레스받고, 화나고, 걱정하고 있다’고 평했다. 현재 미국인은 우간다·터키·베네수엘라 국민보다 정서적으로 불안하다.”
 
국민 정서가 불안하면 어떤 일이 생기나.  
“예를 들어 지난 몇 년간 미국의 공공 보건 위기는 늘어났다. 2016~2017년 사이 미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2년 연속 감소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처음이다. 기대수명이 줄어든 이유도 질환 때문이 아니라 높아진 자살률과 약물 오남용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비롯됐다.”
 
지속가능한 개발의 선구자로서, 지난해 활약이 대단했던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어떻게 평가하나.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가 늘어나서 기쁘다. 다만, 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제부터 구체적인 행동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시위보다 액션(행동)이 중요하다. 어떤 모델로 언제까지 탈(脫) 탄소화 목표치를 달성할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특히 가뭄·홍수·화재 등으로 죽거나 삶의 터전을 잃는 희생자는 대부분 가난한 이들이기 때문에 기후변화는 빈곤과 직접 맞닿아 있는 문제다. 다양한 관점을 고려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기후변화와 빈곤 퇴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세계적인 부유층에 대한 높은 세율 부과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를 예로 들면, 그는 은행 계좌에 1100억 달러(약 131조원)를 가지고 있다. 단 한 명의 사람이 수중에 그 정도의 현금을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 사회의 수치다.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 같은 미국인으로서 부끄럽다. 베이조스 같은 세계적 부호들은 청소년 교육·저소득층의 의료혜택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지갑을 열어야 한다.”
 
뉴욕=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美경제학계 3대 슈퍼스타…"韓에 고금리 요구한 IMF에 쓴소리"
빈곤의 종말

빈곤의 종말

뉴욕 컬럼비아대 연구실에서 만난 삭스 교수는 오랜 인연이 있는 기자를 먼저 알아보고 반겼다. 2006년 교수와 학생으로 처음 만나 벌써 15년째다. 당시 컬럼비아에서 삭스 교수는 자타공인 최고의 ‘스타 교수’였다. 수강신청 시작과 동시에 강의는 마감되기 일쑤였고, 학점을 못 받더라도 청강만 하겠다는 학생이 줄을 섰다. 캠퍼스 인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삭스 교수를 핸드폰 카메라로 몰래 도촬하는 열혈 팬도 있을 정도의 인기였다. “삭스 때문에 컬럼비아에 진학했다” 말하는 학생은 셀 수도 없었다.  
 
4년 만에 재회한 삭스 교수에게 ‘인기는 여전하냐’고 물으니 ‘언제 그랬냐’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삭스 교수는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현 하버드대 교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 함께 ‘미국 경제학계의 3대 슈퍼스타’로 꼽힌다. 하버드대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곧바로 교수진에 합류, 29세에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가 된 대표적 엘리트다.  
 
일찌감치 학자로서 역량을 인정받았지만,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고 개발도상국 빈곤 퇴치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 록그룹 U2의 보컬인 보노,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 팝스타 마돈나 등 스타들과 교류하며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출간한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2005)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에게 필독서로 추천해 화제가 됐다. 이 책의 추천사는 보노가 썼다. 또 볼리비아와 폴란드·러시아 등 여러 신흥국의 경제 자문을 맡아 이들 국가가 위기를 타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86~90년 볼리비아 대통령 자문역을 지내면서 무려 4만%에 달했던 인플레이션을 10%대로 끌어내려 찬사를 받기도 했다.
 
삭스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린 고금리 처방을 강력하게 비판한 인물로 한국인들에게 더 유명하다. 그는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기본적인 경제 체질보다 국제자본의 급격한 이동 때문에 벌어진 일시적 혼란이라고 보고, IMF가 한국에 고금리를 요구할 수 없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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