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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출판 독점? 새로운 플레이어 나와야 안이한 시장 바뀐다”

중앙일보 2020.02.20 14:56
 『살인자의 기억법』이후 7년 만에 장편『작별 인사』를 낸 작가 김영하가 20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살인자의 기억법』이후 7년 만에 장편『작별 인사』를 낸 작가 김영하가 20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시장에 플레이어가 많아질수록 좋아진다. 안이하게 해왔던 사람들도 그 기준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7년 만의 장편소설 『작별 인사』를 낸 작가 김영하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출판에 대해 언급했다. 그의 7번째 소설인 『작별 인사』를 이달 펴낸 곳은 구독 서비스 업체인 밀리의 서재. 종이책ㆍ전자책 구독자(월1만5900원)에게 김영하의 신작을 먼저 배포하고, 다른 출판사를 통해 나오는 같은 책은 3개월 후 서점에서 판매된다. 때문에 ‘인기 작가를 이용한 유료 가입자 유도’라는 비판이 나왔다. 밀리의 서재는 동네 책방, 독립 서점에 출간과 동시에 책을 배포하면서 논란을 줄이려 노력했다.

구독 서비스 '밀리의 서재'에서 『작별 인사』 출간

 
이날 김영하는 “독점 선공개는 근대 문학이 시작된 후 작가들이 계속 해온 일”이라고 했다. “일간지에 먼저 연재하고 그것들을 묶어서 단행본으로 내온 일은 20세기 초반부터 있었다. 내 소설 『빛의 제국』은 계간지에,『퀴즈쇼』도 일간지에 연재했다.” 그는 “게다가 3개월 후에는 일반 독자들이 서점에서 만날 수 있으니 독점과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또 밀리의 서재에 대해 “(출판 시장의) 새로운 플레이어”라는 표현을 썼다. “내가 등단할 때 출판사 문학동네가 생겼다. 작가들에게 선인세를 주고 계약서를 쓰는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일들을 하면서 기존의 출판사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많아질수록 좋아진다. 안이하게 해왔던 사람들도 기준을 바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밀리의 서재는 유명 배우가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비롯해 채팅하듯 책을 읽는 챗북 등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영하는 “사람들은 책을 다양한 환경에서 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출판계의 가장 큰 도전은 새로운 플레이어가 아니라 더이상 책을 안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플랫폼을 전제로 쓴만큼 집필이 모험적이었음은 분명히 했다. 『작별 인사』는 약 100년 정도 뒤의 통일된 한반도 평양에 사는 17세 소년 철이가 주인공이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움직이고, 죽은 새를 보며 감정이 혼란스러운 전형적 10대 철이는 자신이 휴머노이드(인간 형태와 비슷한 로봇)라는 새로운 정보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김영하는 “지금까지 쓴 이야기와는 다른 것이어서 일종의 재미있는 도전이란 기분으로 써봤다”고 했다.  
 
김영하의 신간 『작별 인사』. [사진 밀리의 서재]

김영하의 신간 『작별 인사』. [사진 밀리의 서재]

인간에게 버려진 휴머노이드들이 연대하고, 복제인간이 등장하는 대목에는 기존 SF물의 흔적이 짙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김영하 스타일이다. 갈등을 완전히 풀어내는 대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질문을 남긴다. 김영하는 “소설에 인공지능, 휴머노이드가 나오지만 독자들이 읽고 나서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그건 미래를 엿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비유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과학은 설정 정도”라며 “소년의 성장담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강조했다.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보고 받아들일 것이냐에 대한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염병 걸린 사람을 받아들일 것인가 추방할 것인가 같은 문제다.” 소설은 인간과 흡사한 휴머노이드, 예전 기술을 사용한 휴머노이드, 인간의 필요로 인해 복제된 클론, 그리고 인간이 연대하거나 배척하는 갈등을 세세히 다룬다.  
 
인간성의 규정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김영하는 코로나19의 공포를 예로 들었다. “최근의 공포는 신체적 아픔보다, 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온다. 감염자로 취급돼 사회 연결망이나 가족으로부터 고립되고 사라지는 공포가 크다. 인간이라 규정되지 않고 감염원으로 처리되는 것에 대한 공포다. 독자들이 이번 소설을 그런 공포에 대한 비유로 받아들이리라 생각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영하는 자신이 출판사를 새로 만든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내가 출판사를 차리는 것도 아니고 문학동네 임프린트(외부인이 출판사 내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출판사를 차린 사람은 내 아내다. 오래돼 절판된 책, 계약이 종료된 내 책 등을 새로 낼 계획이다.” 그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절판된 책『블론드』로 4월 출판을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학동네와 관계에 대해서는 “마케팅, 서점 배본 같은 문제를 도와주고 지분투자로 참여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또 “3개월 후『작별 인사』의 출판은 문학동네에서 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아내의 출판사에서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작별 인사』 는 밀리의 서재의 세 번째 종이책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티픽션』(조남주ㆍ김초엽 등)『내일은 초인간』(김중혁)을 냈다. 밀리의 서재는 김영하에 이어 김훈(4월), 백영옥(6월) 작가의 종이책을 선출판할 계획이다. 밀리의 서재 김태형 팀장은 “지금은 구독자 확보를 위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진으로 구성하지만 추후엔 젊은작가의 작품 또는 매거진과 같은 다양한 형식으로 콘텐트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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