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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문에도 대이은 '사육신 박팽년' 그뒤엔 '딸 바친' 여종 헌신

중앙일보 2020.02.20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68)

사육신 박팽년(朴彭年‧1417∼1456, 시호 충정공) 선생은 세 아들 헌(憲)‧순(珣)‧분(奮)이 있었다. 단종 복위 실패로 충정공은 물론 아들 셋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충정공은 특히 고문을 당하고 옥사한 뒤 거열형(車裂刑, 수레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에 처해졌다. 거기다 이조판서를 지낸 아버지(박중림)도 희생됐다. 이른바 ‘삼족을 멸한다’는 형벌을 당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멸문의 화를 입고도 충정공 가문은 양자 아닌 혈손으로 후손이 이어졌다. 후손인 박승규‧박성규가 엮은 『사육신 박팽년』에 화를 입은 이후 이 집안에 혈손이 이어진 전말이 나온다.
 
충정공의 둘째 아들 순의 부인 성주 이씨는 화란 이후 친정인 대구 관아의 관비가 되기를 자청한다. 일부 자료에는 이씨 부인이 단종 복위 사건이 있기 전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인 묘골(지금의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와 있었다고 돼 있다. 부인이 대구로 내려와 묘골에 머문 과정이다. 당시 조정은 이씨 부인이 몸을 푼 뒤 아들이 태어나면 연좌해 죽이고 딸이 태어나면 관비로 삼으라는 명을 내린다.
 
대구 육신사 경내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육각비. 육각비에는 박팽년‧성삼문 등 여섯 충신의 사적이 비면에 하나씩 새겨져 있다. [사진 송의호]

대구 육신사 경내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육각비. 육각비에는 박팽년‧성삼문 등 여섯 충신의 사적이 비면에 하나씩 새겨져 있다. [사진 송의호]

 
마침 친정의 여종도 임신 중이었다. 그는 이씨 부인에게 “만약 저가 마님과 같이 똑같이 아들을 낳으면 제 자식으로 대신 죽음을 받게 하겠다”며 주인집 혈육을 지키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킬 뜻을 비쳤다. 해산(解産) 날이 됐다. 이씨 부인은 아들을 낳고 종은 딸을 낳았다. 종은 앞서 말한 대로 자신의 딸을 부인의 아들과 바꾸었다. 박팽년의 혈손은 이렇게 죽임을 면하고 ‘박비(朴婢)’라는 이름으로 종의 자식의 돼 살았다.
 
17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박순의 동서인 이극균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뒤 처가에 들렀다가 박비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17세 청년 박비를 불러 놓고 눈물을 흘리며 이실직고를 권한다. “내가 이미 장성했는데 어찌 자수하지 않고 끝내 조정에 숨기는가.” 박비는 그 길로 자수했다.
 
육신사의 사당인 숭정사(崇正祠) 내부. 맨 왼쪽에 박팽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백종하]

육신사의 사당인 숭정사(崇正祠) 내부. 맨 왼쪽에 박팽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백종하]

대구 '사육신 기념관'에 전시된 박팽년의 시와 필적 등을 새긴 오래된 돌. [사진 송의호]

대구 '사육신 기념관'에 전시된 박팽년의 시와 필적 등을 새긴 오래된 돌. [사진 송의호]

 
성종 임금은 참으로 귀한 일이라며 그를 사면한다. 성종 대에 이르러 벌써 사육신은 옳은 일을 했다는 여론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일산(壹珊)’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바다 가운데 산호섬처럼 멸문이 된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혈육이란 뜻이다. 신분을 회복한 박일산은 후손이 없는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묘골에 정착한 뒤 종택을 짓는다. 순천 박씨 충정공파의 연원이다.
 
사육신의 충절에 하늘이 감읍한 것일까. 그 충절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으로 그치지 않는다. 단종 복위 모의는 왕위를 찬탈한 불륜의 임금을 제거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 역사를 바로 세우려던 정의의 투쟁이었다.
 
박일산의 묘는 묘골 아버지 순의 의관묘 앞에 있다. 성주 이씨의 묘는 부부 합장이다. 숨은 의인 여종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종친회 박종혁 부회장은 “안타깝게도 여종의 이야기는 이후 전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경산문화원이 발간한 『경산의 산하』에는 그 여종이 묘골에서 120여 리 떨어진 경북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 선의산 생기골에 숨어 박일산을 길렀다고 나와 있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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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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