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도계의 샤넬' 국산 과일이 수입 과일 대체한 이유는

중앙일보 2020.02.20 05:00
코트라가 주최했던 '서울국제식품산업대전(SEOUL FOOD)'에서 수입 냉동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다. 김경록 기자

코트라가 주최했던 '서울국제식품산업대전(SEOUL FOOD)'에서 수입 냉동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다. 김경록 기자

#. 주부 강민영(38)씨는 올 겨울 딸기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는 “겨울철 딸기 시즌을 맞아 대형마트에 갔더니 제품도 다양하고 당도도 높아 가족들 만족도도 높다”면서 “코로나 19 때문에 충분한 비타민 섭취를 위해 최근 과일 구매를 많이 하고 있는데 딸기 맛과 향이 좋아 계속 손이 간다”고 말했다. 
 
#. 체리 마니아였던 직장인 김지훈(42)씨는 대체 과일을 찾고 있다. 지난해 체리 가격이 비싸졌는데 당도는 예전만 못해서다. 김씨는 “평소 체리를 좋아해 정기적으로 구매했는데, 가격이 오르면서 포도나 감귤류를 사 먹고 있다”고 했다.   
부산항을 통해 수입되는 바나나. [중앙포토]

부산항을 통해 수입되는 바나나. [중앙포토]

고공 행진하던 수입 과일, 사상 첫 하락세

바나나, 오렌지로 대표되는 수입 과일 매출이 지난해 사상 처음 하락세로 돌아섰다. 기상 이변과 악천후로 세계 과일 생산량이 감소한데다, 수입 과일에 밀려 고전했던 국산 과일이 고급화를 발판으로 반격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과실류 수입량은 지속 상승하다가 2019년 87만3137t으로 전년(95만5404t) 대비 8.6% 하락했다. 금액으로는 2219억원(환율 1100원 적용)이 줄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확대는 매년 과실류 수입 증가로 이어졌다. 한국은 2004년 발효된 한ㆍ칠레 FTA를 시작으로 2018년 2월 한ㆍ중미 FTA까지 총 57개국과 16건의 FTA를 체결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수입 품목이 증가하면서 과일 수입량도 2000년 34만 9949t에서 2004년 50만 4059t, 2018년엔 95만 5404t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다 지난해 기상이변이란 악재가 과일 수입 감소로 이어졌다.  
 
이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국산 딸기 제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 이마트]

이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국산 딸기 제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 이마트]

글로벌 기상이변에 과일 생산량 감소 

 
미국과의 FTA 체결 이후 미국산 오렌지가 무관세로 전환돼 그동안 수입량이 늘었지만,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산지에 집중 호우가 내리면서 수입량이 쪼그라들었다. 오렌지 생육이 안 좋은데 폭우로 대형 오렌지 농장에 농기구와 수확 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면서 수확 시기도 늦어졌다.
 
미국산 체리도 악천후 손해를 입었다. 일조량이 적어 생육기에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한 데다가 당도가 높게 형성되지 않자 상품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국내에선 적은 수확량 때문에 가격은 상승했는데, 낮은 품질의 체리가 높은 가격에 판매된 것이 미국산 체리에 대한 상품성 불신으로 번졌다. 국내 포도 수입의 67%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산 포도도 날씨 영향으로 수입량이 크게 줄었다.
 
샤인머스켓. [중앙포토]

샤인머스켓. [중앙포토]

천혜향, 샤인머스켓이 오렌지, 바나나 빈자리 대체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도 과일 작황 부진에 울상이다. 지난해 1~11월 자몽 수입량은 이스라엘산 자몽의 수확 지연으로 전년 대비 21% 감소했으며, 파인애플도 주 수입국인 필리핀의 고온, 건조한 날씨로 작황이 부진해 수입량이 전년 대비 13%가량 줄었다.
 
과일 수입량이 가장 많은 바나나는 국내 소비량 감소로 타격을 입었다. FTA 확대로 기존 필리핀 이외에 에콰도르, 과테말라 등 중남미 지역까지 바나나 수입국은 늘었지만, 소비가 되지 않으면서 들여오는 물량이 줄어든 것이다. 수입 바나나 유통업계 관계자는 “바나나는 식사 대용보다는 디저트 개념에 가깝다"며 "최근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다양해진 국산 과일에 밀려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했다.  
 
천혜향. [중앙포토]

천혜향. [중앙포토]

국산 과일 고급화…재배 면적 늘어 가격도 하락 

입지가 좁아진 수입 과일의 자리는 국산 과일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고급화를 통한 품질 상승으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이마트가 지난해 과일 매출을 분석한 결과, 국산 과일 판매가 2018년 대비 8%가량 신장했다. 품목별로는 국산 포도(81.7%)의 신장률이 두드러졌으며, 천혜향(58.7%), 국산 멜론(21.9%) 딸기(11.7%)가 뒤를 이었다. 
 
지난해엔 샤인머스켓이 수입 포도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2019년 여름 고급 과일 샤인머스켓이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국산 포도 부활의 신호탄이 된 것이다. 샤인머스캣은 한 송이에 최소 1만 원대 중반의 가격을 호가해 ‘포도계의 샤넬’로 불린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재구매율은 높았다. 농업관측본부 소비자패널 조사에 따르면 샤인머스켓의 재구매 비율은 2017년 28.1%에서 지난해 61.6%로 급증했다.
재배 농가도 늘고 있다. 농업관측본부는 국내 샤인머스켓 재배 면적이 2017년 472ha에서 지난해 1867ha(예상치)로 4배 상승했다고 밝혔다.
 
대형마트에 있는 수입 과일 매대. [중앙포토]

대형마트에 있는 수입 과일 매대. [중앙포토]

오렌지의 빈자리는 프리미엄 감귤로 불리는 만감류(한라봉ㆍ천혜향ㆍ황금)가 빠르게 채우고 있다. 만감류는 2010년대 중반 대중화가 시작된 국내산 과일이다. 과즙이 풍부하고 독특한 향기를 갖고 있어 소비자의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국내 만감류 매출은 전년 대비 35% 신장했다. 가락시장 유통 관계자는 “황금향, 천혜향과 같은 만감류가 수입산 오렌지의 대체재가 되면서 오렌지 수요가 감소했다”며 “국산 만감류 재배 농가가 늘면서 가격도 하락하고 있어 앞으로 더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 국내산 딸기도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등 환경 제어 장치를 활용한 스마트팜 농법으로 출시된 프리미엄 제품이 등장하면서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천혜향을 고르는 모습. [사진 이마트]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천혜향을 고르는 모습. [사진 이마트]

이마트 국산 과일 유통 지원

경쟁력을 갖춘 국산 과일 생산엔 유통업계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마트는 농부와 어부가 생산한 국산 먹거리를 발굴해 성장을 지원하는 ‘국산의 힘 프로젝트’를 2015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선정된 상품에는 품질 강화, 판로 확대, 마케팅 등 유통 전 과정을 지원한다. 2015년 42개 품목으로 256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엔 125개 품목, 540억원 매출로 늘었다. 특히 장희딸기, 담양딸기, 스마트팜 딸기 등 프리미엄 딸기 제품은 지난해 65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면서 국산 딸기 돌풍의 핵이 됐다.  
 
최지윤 이마트 과일 팀장은 “경제 불황에도 국산 프리미엄 과일이 고속 성장하면서 매출 상승을 이끌고 있다”며 “다양한 순수 국산 품종 농산물을 지속해서 발굴할 것”이라고 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