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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피플] 버핏의 숨은 제갈량, 침묵 깼다 "나라면 테슬라 주식 안 사"

중앙일보 2020.02.20 05:00 경제 2면 지면보기

찰리 멍거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左), 찰리 멍거(右)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左), 찰리 멍거(右)

“자신을 과대평가(overestimate)하는 사람에 대한 위험을 과소평가(underestimate)해선 안 된다.”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
‘버핏 투자원칙’ 만들고 40년 조언
“중국 기업이 미국보다 훨씬 강해”

침묵 깨고 뉴욕증시에도 경고장
“시장 잘 버티지만 곧 힘든 시기”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두 배 가까이 상승하며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는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에 찬물을 끼얹는 의견이 나왔다. 무대 위에서 흥겹게 막춤을 추고, 미국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여느 경영자와는 다른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를 경계하라는 쓴소리다.
 
이는 워런 버핏(89)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40년 지기 파트너인 찰리 멍거(Charlie Munger·96) 부회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이다.
 
96세의 노장은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지역 언론사인 데일리 저널 주주총회에서 “나는 신중한 사람을 원한다”며 “머스크는 유별나다(peculiar). 나는 망상(delusion) 속에서 사는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다”며 테슬라 주식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멍거는 ‘월가의 전설’이 된 투자 귀재 버핏 회장에게 ‘유비의 제갈공명’과 같은 존재다. 그는 ‘가치 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과 함께 버핏의 투자 원칙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버핏과 손잡기 전 1962~75년 사이 자산운용사를 운영하며 연평균 2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이는 같은 기간 S&P500 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인 5%를 네 배나 웃도는 성적이다.
 
뉴욕 증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확산에도 강한 저항력을 보이지만, 멍거는 “앞으로 더 어려운 시기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앞으로 수많은 문제가 금융시장을 강타할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과도하게 위험을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재정적자만 해도 1조 달러(1188조원)를 넘어선 상황에서 다우·S&P500·나스닥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분석이다.
 
멍거는 중국 경제에 대해 오랫동안 낙관적 전망을 고수해왔다. 그는 이번에도 “가장 강력한 기업은 미국에 있지 않다”며 “중국 기업들은 우리 기업보다 훨씬 강하며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멍거가 주식 시장과 투자에 대해 소신을 밝힌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멍거는 버핏과 함께 버크셔 해서웨이를 세계적인 회사로 키운 일등공신이지만, 회사 주총 때만 얼굴을 내비칠 뿐 공식 석상에 잘 참석하지 않아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주총에서도 버핏의 답변을 거들뿐 절대 먼저 나서지 않는다.
 
버핏은 40여 년 동안 멍거와 일하며 한 번도 논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간혹 이견이 있을 때 멍거는 버핏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그러면 내 의견에 동의할 걸세. 자네는 똑똑하고 나는 옳으니까 말이야.” 그만큼 버핏은 멍거를 신뢰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멍거를 만나기 전 버핏은 소위 그저 그런 회사를 아주 헐값에 사는 투자 전략을 고수했다. 그는 이를 ‘담배꽁초 투자기법(cigar-butt investing)’이라고 불렀다. 누군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잘만 고르면 공짜로 한두 모금 정도 피울 수 있는 것처럼, 주식 투자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회사를 공짜와 다름없는 헐값에 사서 작은 이익을 챙기는 방식이었다.
 
1950년대까지 버핏의 담배꽁초 방식은 먹혔으나, 이후 점차 투자 효과가 떨어졌다. 이때 멍거는 저평가 우량주를 발굴해 제값을 받을 때까지 장기간 보유하는 가치투자를 제안했다. 결혼(장기 투자)할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연애(단기 투자)할 상대방을 만날 때와 다르다며 투자 원칙도 전부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자 면에서 멍거는 버핏보다 조심스럽다. 버핏보다 위험을 더 따지고, 기대는 더 낮추는 신중론자다. 가령 버핏이 투자 후보를 열 군데 정도 결정해 멍거에게 맡기면 그는 그중에서 두세 개에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정도다. 멍거는 “투자할 땐 늘 위험부터 고려하라”며 “위험한 투자를 해야 한다면 걸맞은 투자 수익을 고집할 것”을 권한다.
 
버핏은 “찰리는 현존하는 그 어떤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거래를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다”며 “어떤 약점이든 60초 안에 간파해 내는 완벽한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버핏과 멍거는 1959년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을 때 고향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라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졌다. 멍거는 버핏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료품 가게에서 일한 적도 있다.
 
두 사람은 소문난 독서광이다. 버핏은 자신이 하루 500페이지씩 책을 읽을 때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를 즐긴다. 멍거는 증권가에 떠도는 분석 보고서보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철학과 역사 서적을 즐겨 읽는다. 멍거는 “독서야말로 주식시장 분석 기술을 결정적으로 향상시킨다”며 “주식 투자의 성공 비결은 복잡한 재무 공식이 아닌, 기업에 대한 철저한 가치 분석과 상식, 그리고 신뢰”라고 했다.
 
찰리 멍거

찰리 멍거

찰리 멍거의 투자 가이드
“잘못 가격 매겨진 기회를 찾아라. 그게 바로 투자다. 어떤 기회가 잘못 가격 매겨진건지 충분히 알아야한다. 그게 가치투자다.”
 
“돈다발을 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좋다. 평범한 기회마다 투자했으면 난 지금 이자리에 있지 못했다.”
 
“엄청 똑똑할 필요는 없다. 단지 다른 사람보다 아주 조금 더 현명하라. 평균적으로, 장기적으로. 정말 장기적으로.”
 
“대중을 따라하는 것은 평균으로 후퇴하겠다는 말이다.”
 
“장기적으로 뛰어난 투자 성적을 얻으려면, 단기적으로 나쁜 성적을 견뎌야 한다.”
 
“투자란 몇 군데 훌륭한 회사를 찾아내어 그저 엉덩이를 붙이고 눌러앉아 있는 것이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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