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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퍼스펙티브] 로또 아파트 주범, 청약제 폐지하자

중앙일보 2020.02.20 00:35 종합 24면 지면보기

부동산 정치 근절법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정치 과잉의 시대다. 어느 것 하나 정치가 결정하지 않는 게 없다. 부동산은 더 그렇다. 그 중 ‘로또 아파트’야말로 대표적인 정치재(財)다. 포퓰리즘과 한탕주의를 자양분 삼아 번창한다. 부작용과 폐해는 누구나 안다. 국민을 잠재적 투기꾼으로 만든다. 사회 초년병부터 “집은 투기의 대상”이라고 믿게 한다. 한 번 당첨되면 수억 원 차익은 쉽게 거둔다. 개미처럼 평생 벌어선 못 쥘 거금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로또 아파트 당첨에 목을 맨다. 로또 아파트를 그대로 두고 ‘투기와의 전쟁’ 운운하는 건 희대의 코미디다. 로또 아파트가 만든 장면 세 개부터 보자.
 

청약제 없으면 로또 아파트도 멸종
전쟁 운운하며 ‘편 가르기’ 하지 말고
불로소득 없는 세상 위해 결단할 때

#1. 만점자도 뛴다=2018년 6월. 경기 하남시 아파트(미사역 파라곤의 102.86㎡) 분양에선 청약 가점 만점자가 등장했다. 만점은 84점. ①무주택 15년 이상(32점)에 ②청약 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17점) ③부양가족 6명 이상(35점)의 세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한마디로 꿈의 점수다. 만점자의 등장은 청약 열풍이 그만큼 뜨거웠다는 얘기다. 이 아파트는 시세보다 분양가가 3억원가량 낮았다. 당첨만 되면 수억 원이 굴러들어오는 셈이다.
 
#2. 2030은 없다=2019년 12월 말. 서울 강남 개포프레지던스 자이(옛 개포4단지 재건축) 분양 현장. 당첨자 201명 중 30대 당첨자는 11명(5.4%)뿐이었다. 40대와 50대가 91%를 차지했다. 최저 가점이 56점, 30대가 청약 가점을 56점 넘게 쌓으려면 무주택 10년, 청약 통장 10년, 부양가족 4명의 요건을 동시에 맞춰야 한다. 그뿐이랴. 고가 아파트라 은행 대출이 금지됐으니, 최소 10억원의 현금 동원력까지 있어야 한다. 흙수저 2030에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3. 풍선효과=이달 초 경기도 수원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수원’ 무순위 청약 현장. 미계약 잔여 물량 42가구에 6만7965명이 몰렸다. 1618대 1. 6개월 뒤 전매할 수 있고 재당첨 제한 규제도 없다. 규제의 빈틈을 노린 수요다. 인천의 ‘부평 두산위브 더 파크’와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주안’에도 각각 4만7626명, 4만1922명이 몰렸다. 이런 청약 광풍은 지역 부동산값을 끌어올려 ‘풍선 효과’를 만들어 낸다. 강남을 누르니 지방이 뛴다. 놔두면 정부 정책이 무력화하고, 때려잡으려니 제2, 제3 풍선효과가 불 보듯 하다. 총선이 코앞이라 정치적 부담도 크다.
 
2년간 10번 청약에 떨어졌다는 한모 씨(40)는 “11번째를 준비 중”이라며 “가능성은 제로지만, 그래도 될 때까지 청약해볼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전쟁을 벌이고, 청춘은 메뚜기처럼 뛰어다닌다. 이 모습이 대한민국 부동산 정치의 자화상이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한국에만 있는 청약제도
 
왜 우리는 로또 아파트에 목매는가. 그렇게 길들었기 때문이다. 로또 아파트는 한국에만 있다. 로또 아파트는 청약제도가 만들어 낸 괴물이다. 1977년 한국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청약제도를 도입했다. 당시는 ‘내 집 마련’을 열망하는 국민적 수요를 일거에 만족시킬만큼 재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순번을 정해 순차적으로 주택을 보급할 수밖에 없었다. 청약 관련 저축으로 민간 자본을 주택건설자금으로 끌어들여야 했던 정부는 다수가 청약제도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추첨제’라는 방식을 도입했다.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청약 통장 가입자가 많아야 건설 재원도 늘고 분양시장도 활발해져 주택 건설이 촉진되기 때문이다. 청약제도는 애초부터 주택 시장의 적당한 과열을 전제로 설계됐고 거기에 국민이 40년 넘게 길들여진 것이다.
 
길들여진만큼 벗어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유혹이 크다. ‘한 판에 인생 역전’. 로또 아파트는 실제 로또와 판박이다. 다수의 서민에게 돈을 걷어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사행성 구조’가 특히 그렇다. 정부가 주관자인 것도 같다. 한탕주의가 본질이지만 가끔 아닌 척하는 것도 똑같다. 정부는 로또 당첨금이 너무 많아지자 ‘사행성 조장 과열’이라며 당첨금을 제한했다. 청약 제도는 더 하다. 집값이 급등락할 때마다 세부 규정을 뜯어고쳤다. 청약제도를 규정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1978년 이후 지금까지 140여 차례나 일부 수정 또는 개정됐다. 정부 담당자들도 “헷갈린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아파트는 정치재(財)
 
그런데 왜 못 없애나. 무엇보다 정부의 규제 본능 탓이 크다. 로또 아파트는 규제 차익을 먹고 산다. 규제가 없으면 로또도 없다. 그러나 어떤 정부도 규제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다. 좌파 정부일수록 더하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한국에선 아파트가 ‘정치재(財)’가 된 지 오래”라며 “분양가 규제를 포기하는 것은 90%가 넘는 국민에게 강남 아파트에서 살 꿈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고 했다. 양극화 해소가 목표인 정부로선 규제의 역설을 잘 알면서도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규제를 통해 분양가를 낮추면 “당신도 강남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꿈을 줄 수 있다는 건데, 희망 고문도 이 정도면 역대급이라 할 만하다.
 
정부가 정히 규제 본능을 못 누른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 아예 청약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청약제도는 수명을 다했다. 그전까지 연 10만호 정도였던 주택 공급을 80년대 연 50만대 이상으로 확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온 국민에 “내 집 마련”의 꿈과 희망을 줬다. 그걸로 됐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다. 내 집 마련보다 ‘제대로 된 집 마련’이 더 중요해졌다. 무엇보다 로또 아파트는 극도의 박탈감과 위화감을 부추긴다. 흙수저 2030엔 그림의 떡을 넘어 절망과 분노의 상징이 되고 있다.
 
물론 당장 폐지는 정치적 부담일 수 있다. 청약통장 가입자 2500만명의 꿈을 하루아침에 뺏는 일이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라도 결단하기 어렵다. 건설 경기를 가라앉혀 가뜩이나 바닥인 경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차를 두거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며 “강남부터 청약제를 폐지하거나 채권입찰제를 도입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했다.
 
다른 방법도 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임대주택 건설 기여금 입찰제’를 제안했다. 기여금을 많이 써낸 순서대로 낙찰하고 초과 이익을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다. 기여금은 서민생활 안정, 빈부격차 축소에 쓰면 된다. 그는 “지금처럼 로또 아파트의 차익을 건설업자나 입찰자가 독차지하는 건 정의롭지 않다”며 “(기여금 입찰제가) 부동산 투기 방지, 가격 안정에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매제, 기여금 입찰제 등 대안
 
청약제도를 지탱해주는 선분양제도 대신 후분양을 의무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청약을 통해 로또 아파트를 분양받을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건설사들의 초기 부담이 커지고 주변 시세와 연동하기 쉬워져 선분양보다 분양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더 과격한 대안도 있을 수 있다. 에릭 포즈너 시카고대 교수의 『래디컬 마켓』식 해법을 빌면 주택 경매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아파트를 분양하지 않고 경매에 부친다. 경매 수익은 공공재 재원이나 사회적 배당금에 쓸 수 있다. 지역 사회의 주택 공급을 늘리고 무주택 서민 위주로 장기 공공 임대 주택을 건설하는 식이다.
 
어떤 방식이 더 효과적일지는 공론의 장을 열어 더 따져봐야 할 것이다. 뭐가 됐든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몇십 또는 몇백명의 당첨자를 위해 수십만명이 줄을 서는 기이한 로또 청약제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개발연대 시절 주택 정책이 남긴 또 다른 유산 로또 아파트, 손을 봐야 한다면 이 정부가 만든 ‘미친 집값’ 때문에 강남 부동산발 양극화가 극에 달한 지금이 적기일 것이다. 표만 생각하는 ‘입 진보’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명품 좌파, 진짜 진보 정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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