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영준의 시선] ‘싸이·더 선생’의 가르침을 잊었느냐

중앙일보 2020.02.20 00:23 종합 28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101년전 5·4 운동과 신문화운동은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분수령이었다. 신문화운동을 주도한 지식인들은 동아병자(東亞病者) 중국의 특효약은 봉건주의 유산을 떨쳐내고 신문명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 믿었다. 그래서 등장한 구호가 “싸이(賽)선생과 더(德)선생에 배우자”였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 각각 사이언스(賽因斯)와 데모크라시(德莫克拉西)를 음역하고 첫 글자에 선생 호칭을 붙인 것이다. 과학과 민주주의라는 번역어는 아직 정착되기 전이었다.
 

우한 코로나 사태 피해 키운
시진핑 체제의 비과학·비민주
바이러스가 가르쳐준 진실

신문화운동의 선봉에 선 천두슈(陳獨秀)가 1921년 중국공산당을 창건하고 당서기가 됐다. 당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과학과 민주의 결합물로 받아들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러시아 혁명 직후 지식인들 사이를 풍미하던 최첨단의 ‘과학적’ 세계관이었다. 이에 바탕해 혁명에 성공한 뒤 세운 나라 이름에서도 ‘민주’란 두 글자를 빠트리지 않았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중국공산당의 적통이다. 누구보다도 ‘싸이 선생’과 ‘더 선생’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그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상황을 ‘악귀’라 말했다. 아무리 비유법이라 해도 비과학적인 발상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 관리들은 한술 더 떠 시 주석이 ‘악귀와의 전쟁’을 선포한 그 날부터 ‘신심(信心)’을 주문처럼 입에 달고 있다. 중국이 과연 유물론자들이 세운 나라인지 의심케 한다. 아닌게 아니라 중국 당국의 초동대응은 과학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았고 그 결과 오늘의 참사를 불렀다.
 
문제의 근원은 중국의 열악한 위생·의료 인프라에 있다.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달성하고 세계 최고의 현금부자 나라가 되었지만 서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공공 위생과 의료는 경제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첨단 상품, 최신 서비스가 부족할 게 없는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게 “아프면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중국 최고의 의료진과 장비는 군병원들에 집중돼 있다. 이건 과학도 아니고 민주도 아니다.
 
안타까움의 정도로 말하면 ‘싸이 선생’이 ‘더 선생’을 못따라갈 것이다.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다. 이걸 막고서는 정확한 의견수렴도, 올바른 여론 형성도, 효율적인 정책결정도 있을 수 없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중국 사회에는 수많은 리원량(李文亮)이 있었다. 허난(河南)성을 비롯한 몇몇 지방에 아직도 ‘에이즈 마을’이라 불리는 곳들이 있다. 1990년대 매혈(賣血)로 살아가던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에이즈에 걸려 자손들에까지 번졌다. 혈액채취 용기와 주사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이 사실을 외부로 알리려고 한 현지 의사들과 기자들은 줄줄이 당국에 끌려가 곤욕을 치렀고 몇몇 의사들은 본의 아니게 해외 이민을 가야만 했다. 4~5년이 지나서야 용감한 의사에 의해 실상의 일부가 보도됐지만 에이즈 균이 이미 쫙 퍼진 뒤였다. 2011년 고속열차가 탈선해 20m 높이의 고가레일 아래로 추락했다. 당국은 때마침 내려친 벼락탓이라고 발표한 뒤 보도 통제 속에 열차 차체를 땅에 파묻기 시작했다. 국가권력이 주도한 증거인멸 시도였다.
 
모든 게 이런 식이다. 대형 비극으로 번질 가능성이 빤히 보이는데도 더 중요한 건 공산당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다. 우한의 비극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사람 손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부적절한’ 정보를 일일이 지웠으나 지금은 인공지능(AI)이 ‘삭제신공’을 발휘한다. 중국이 앞서 나간 안면인식기술과 AI를 결합하면 14억 인구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AI로 감시·통제를 하는 것은 ‘싸이 선생’과 ‘더 선생’을 이간질하는 일이다.
 
백해무익한 바이러스가  딱 한가지 역할을 한 게 있다면, 그동안 잘 몰랐거나 막연하게만 알았던 중국 체제의 실상과 문제점을 명확하게 드러내 줬다는 점이다. 필자가 회원으로 있는 한 모임에서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한 중국에 성금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몇몇이 찬성했지만 곱절 넘는 사람이 반대를 했다. 이번 사건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이며,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는 게 우선이라는 논리였다. 더구나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성금을 전달하는 건 곤란하다는 의견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성금이 중국 정부에 전달된다면 인재의 책임자에 성금을 내는 것과 같다는 이유에서다. 신임 주한 중국대사가 감사를 표했던 ‘설중송탄(雪中送炭)’ 동참은 그렇게 무산됐다.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의 ‘한·중 운명공동체’론을 거스르고 말았다.
 
예영준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