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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문화난장] 김수환 추기경이 미리 쓴 유서

중앙일보 2020.02.20 00:21 종합 27면 지면보기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유언을 적은 종이를 반듯하게 세 겹으로 접은 모양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인쇄된 사무용지에 선(線) 자국 세 개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당부를 또박또박 적었다. ‘1971년 2월 21일 밤’에 썼다고 했다.
 

“제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추기경 임명 이듬해 작성
선종 11주기 자료집 나와
가장 경계한 건 편가르기

김수환 추기경 유서

김수환 추기경 유서

첫 문장은 라틴어 ‘Pro Vobis et Pro Multis’다. ‘여러분과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뜻이다. ‘저는 이 말씀을 주교직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뜻뿐이고 현실의 생활은 이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깊이 현존하시는 가난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등 모든 불우한 사람들 속에 저는 있지 못했습니다. (중략) 형제 여러분 저의 이 사랑의 부족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유서를 쓴 사람은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이다. 김 추기경은 또 다른 유서 두 장을 남겼다. 각각 70년 1월 16일, 10월 19일에 작성했다. 그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혹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주변 주교들에게 사목권을 위임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1970년을 주목해본다. 66년 마산교구 초대 주교에 오른 김수환 신부는 69년 47세에 한국 최초,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임명됐다. 요즘 일반인 사이에서도 자기 삶을 돌아보는 유서 쓰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추기경에 오른 직후에 유서를 준비한 사제 김수환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혈기 왕성한 40대 추기경은 왜 최후까지 대비해야 했을까. 게다가 자신의 사랑이 부족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200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열린 음악회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오른쪽)과 법정 스님. 올해로 각각 선종 11주기, 입적 10주기가 됐다. [중앙포토]

200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열린 음악회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오른쪽)과 법정 스님. 올해로 각각 선종 11주기, 입적 10주기가 됐다. [중앙포토]

이 유서는 서울대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가 펴낸 자료집 『김수환 추기경』에 수록됐다. 지난 16일 선종 11주기를 맞은 김수환 추기경 관련 유물 250여 점을 모았다. 유서 등 그간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유품도 상당수다. 1951년 사제 수품 상본(像本)부터 2009년 선종 당시 명동성당에 걸린 추기경 문장의 조기(弔旗)까지 망라했다. 가톨릭 전례용품을 비롯해 사회 민주화를 위한 각종 문서가 포함됐다. 지난 세월 우리들의 아픈 마음을 껴안았던 김 추기경의 따듯한 체온을 느낄 수 있다. 격동기 한국 사회 전반을 짚어보는 거울 역할도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 '바보야'.[중앙포토]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 '바보야'.[중앙포토]

 
김 추기경의 삶을 몇 마디로 요약할 순 없다. 평생 ‘바보’를 자처하며 사회 속의 교회를 잊지 않은 그의 넉넉한, 또 묵직한 목소리는 지금도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세상이 힘겹더라도 “그럼에도 인생에는 ‘예스’를 말한다”(Trotzdem Ja zum Leben Sagen)는 독일 정신의학자 빅토르 프란클의 말을 믿은 그는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했다. 51년 처음 사제복을 입었을 때 그가 선택한 사목 성구(聖句)는 시편의 한 구절인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고 2009년 임종 직전에 남긴 마지막 인사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 개원을 축하한 김수환 추기경의 친필 원고.[사진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울 성북동 길상사 개원을 축하한 김수환 추기경의 친필 원고.[사진 한국교회사연구소]

김 추기경은 무엇보다 편가르기를 경계했다. 사람이란 대명제 앞에서 가톨릭이나 불교도 둘로 나눌 상대가 아니었다. 자료집에 실린 97년 12월 서울 길상사 개원 법회 축사 친필 원고가 그렇다.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직후이자 제15대 대선 직전 시점에서 “우리 모두 멈춰 서서 깊이 반성하고 삶을 바로 세우는 회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길상사 회주 법정 스님도 이듬해 명동성당 100주년 현장을 찾아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란다면 내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화답했다. 때마침 다음 달 11일은 법정 스님의 입적 10주기다.
김수환 추기경의 글씨 '눈은 마음의 등불'. [사진 한국교회사연구소]

김수환 추기경의 글씨 '눈은 마음의 등불'. [사진 한국교회사연구소]

김수환 추기경의 헌안 등록증. [사진 한국교회사연구소]

김수환 추기경의 헌안 등록증. [사진 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4월 제17대 총선 직후 열린 김 추기경의 ‘21세기 지도자상’ 특강을 취재한 적이 있다. 촛불·반미시위 등을 싸고 일부 급진파 종교인의 공격을 받던 때였다. 당시 추기경은 자신의 색깔을 묻는 말에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약간 보수적”이라고 답했다. ‘굳은 보수(保守)’가 아닌 ‘바꿔 가는 보수(補修)’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권은 모든 이를 위해 목숨을 내건 예수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제21대 총선, 여든 야든 케케묵은 과거에 박제된 모양새다. 자신을 반성하려는 보수(補修)의 싹이 보이지 않는다. ‘Pro Vobis et Pro Multis’는 진정 성직자만의 영역일까. 4년 전 이충렬 전기작가가 낸 『아, 김수환 추기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 추기경이 깜짝 선언을 했다. “저도 올해 출마합니다. 기호는 1번입니다. 지역구는 천국입니다.” 그런 통 큰 유머가 그립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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