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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사이언스&] 세상 떠난 딸도 불러내는 AI·VR기술, 어디까지 진화할까

중앙일보 2020.02.20 00:19 종합 23면 지면보기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가상현실(VR) 헤드셋을 낀 엄마가 가상세계 속 나무장작 더미 쪽으로 다가가자,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서 일어서는 아이의 모습에 엄마는 훌쩍인다. “엄마, 나연이 보고 싶었어.” 엄마는 가상현실에서 만난 딸을 쓰다듬고 안아보려고 하지만 허공을 만질 뿐이다. 엄마는 안타까운 슬픔을 토해낸다. “나연이 안아보고 싶어. 한 번만 만져보고 싶어.” 딸은 이런 엄마의 그리움의 고통을 모르는 듯 “엄마 나 예뻐? ”라는 말로 답한다.
 

MBC 다큐 ‘너를 만났다’ 화제
AI기술, 이미 특이점 향해 도약
인간은 ‘환생 기술’ 정말 원할까

지난 6일 방영된 MBC의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 나온 내용이다. 3년 전 6살짜리 아이를 혈액암으로 떠나보낸 엄마가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만난다는 내용이다. 관련 유튜브 영상은 19일 기준 조회 수 1455만 회를 넘길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한국어로만 된 방송이지만, 영어자막 덕분인지 외국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2만 개가 넘는 댓글 중 한국어보다는 영어 등 외국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로이터통신도 ‘한국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딸과 가상현실에서 눈물겨운 재회를 했다’는 제목과 함께 이 다큐멘터리 방영 소식을 전했다.
 
혈액암으로 딸을 보내야 했던 장지성씨가 MBC의 다큐 프로그램이 만들어준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을 통해 딸과 재회하고 있다. [화면 캡처]

혈액암으로 딸을 보내야 했던 장지성씨가 MBC의 다큐 프로그램이 만들어준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을 통해 딸과 재회하고 있다. [화면 캡처]

다큐멘터리를 본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가상현실 기술이 세상 떠난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해줬다”고 경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차피 세상 떠난 아이를 저런 식으로 만난다는 건 정신건강에 해롭다”고 비판하는 사람까지….
 
MBC는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을까. ‘너를 만났다’를 제작한 김종우 MBC PD는 PD저널 기고에서, "‘하늘나라에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기획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난 한 여성의 사무친 그리움을 VR기술 등으로 풀어주려고 했단다.
 
모든 과학기술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한다.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불임부부의 욕망이 시험관아기 기술을 낳았다. 지금도 미국과 러시아 등지에서는 부활을 꿈꾸는 냉동인간들이 질소 탱크 속에 누워있다. 중국에선 자식에게 유전병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인간배아 편집과 실제 출산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만들어냈다.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역시 사랑하는 딸을 떠나보낸 엄마의 사무치는 그리움의 욕망이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21세기 과학기술은 이미 도약점을 지나 특이점을 향해 치솟고 있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욕망이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씩 구현되고 있다.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라는 책을 쓴 인공지능 전문가 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AI를 연구하게 된 계기를 ‘돌아가신 사랑하는 아버지를 살려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한 모든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고, 이를 운영할 수 있는 AI가 마련된다면 디지털 세상 속에서 아버지가 환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패턴이라 얘기한다. 사실 사람의 몸을 이루는 세포는 끊임없이 사멸과 복제를 거듭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물리적으로 1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어찌 보면 나의 몸은 복제의 패턴 속에서 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패턴 외에 남는 것은 기억과 운영체제라고도, 혼(魂)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을 터다.
 
정송 KAIST 인공지능대학원장은 “요즘 세계 인공지능 학계는 ‘오늘 기온 어때?’와 같은 개별 질문에 ‘낮 최고 기온 15도’라고 말하는 식의 단순 알고리즘을 넘어 상대편의 반응을 보고 재차 질문하고 또 답하는 수준의 한 차원 높은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너를 만났다’라는 다큐멘터리 속에 환생한 딸이 아직은 어색한 수준이지만, 10년 후가 되면 월등한 수준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 재생을 위한 기술 개발은 이미 시작됐다. 체세포복제가 그 하나다. 2006년 줄기세포 파문의 장본인 황우석 박사가 세운 수암바이오텍에는 체세포 복제기술을 통해 죽은 반려견을 복제해 되가져가며 기뻐하는 미국 헐리우드 배우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생명 재생의 또 다른 한 축은 공상과학(SF) 영화 ‘공각기동대’처럼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이다. 일론 머스크의 벤처기업 뉴럴링크(Neuralink)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생각을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작은 전극을 뇌에 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욕망이 잉태한 기술이 시간과 함께 성숙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기술적으로 완성됐다고 해서 모두 일반화하진 않는다. 사회가 윤리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기술을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까지 누릴 수 있도록 값이 싸져야 가능한 일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특이점을 향해 달리겠지만, 이를 이용해 세상을 떠난 사람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기술은 과연 일반화할 수 있을까.
 
◆특이점(singularity)
원래는 특정 물리량들이 정의되지 않거나 무한대가 되는 공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을 말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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