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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노동 힘들어요" 패션쇼에 등장한 남성판 탈코르셋 운동

중앙일보 2020.02.19 18:16
12일 남성 바디 포지티브 운동의 일환으로 열린 패션쇼에서 런웨이를 걸어가는 조지프 디아즈. [AP=연합뉴스]

12일 남성 바디 포지티브 운동의 일환으로 열린 패션쇼에서 런웨이를 걸어가는 조지프 디아즈. [AP=연합뉴스]

툭 튀어나온 뱃살과 퉁퉁한 허벅지 살. 망토를 걸치고 맨살을 드러낸 채 런웨이를 활보하는 남성.
 
세계 4대 패션 행사 중 하나인 뉴욕패션위크에서 독특한 남성 속옷 패션쇼가 열렸다. 완벽한 근육질 몸매를 가진 남성 모델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깨기 위해 과체중 남성 모델들이 무대에 올랐다.
 
AP통신은 4일부터 12일까지 열린 뉴욕패션위크에서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를 모토로 내건 라이언 시크릿 패션쇼가 열렸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디 포지티브 운동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취지로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탈 코르셋 운동 역시 바디 포지티브의 일환이다. 
 
날씬한 몸과 화장을 강요하는 이른바 ‘꾸밈노동’에 맞서기 위해 여성들이 시작한 운동에 남성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AP통신은 “사회가 이상적으로 요구하는 비현실적인 여성 신체에 관한 논쟁은 오래됐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라이언 시크릿 패션쇼 개최의 동기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12일 열린 라이언 시크릿 패션쇼에는 15명의 남성이 모델로 등장했다. 이들은 남성용 속옷 위로 저마다 다른 소재와 무늬가 들어간 망토와 가운을 걸쳤다. 보라색 실크 새틴의 가운을 입고 등장한 흑인 모델은 런웨이 중 카메라 앞에서 가운을 벗으며 육중한 몸매를 과감히 드러냈다.
 
패션쇼를 기획한 디자이너 미리암 샬릭은 "스테로이드를 남용하고 슈퍼히어로의 몸을 얻기 위해 죄인처럼 체육관에서 하루를 보내는 남성들이 있다"며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고 괴롭힘으로 우울증을 겪고 자살하는 젊은 남성들에게 깨우침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라이언 시크릿이라는 명칭은 유명 여성 속옷 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비롯됐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가진 바비인형 같은 모델만 고집해 성 상품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패션쇼에 모델로 등장한 36세 조지프 디아즈는 "나처럼 덩치가 큰 사람은 취업 면접에서 멍청하게 보여 때로는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며 "바비가 지니고 있는 문제만큼이나 켄도 훨씬 더 큰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완구 회사가 만든 바비 인형의 남자친구 켄은 근육질 몸매를 지녀 미국에서 전형적인 남자다운 모습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한편 프랑스 출신의 디자이너 샬릭은 이전에도 다양성을 포용하는 패션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국제 왜소증 환자 패션쇼, 시각장애인 패션쇼 모두 그의 기획이다. 2018년 뉴욕패션위크에서는 성폭행 피해자를 런웨이 모델로 세워 미투 운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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