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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문대 졸업생, 중국에 120조 원 손해 입힌 사건

중앙일보 2020.02.19 17:31
1980년대 무렵 중국에선 '유학 바람'이 불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동아시아 근대화 모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유학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한때 중국 명문대 인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유학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유학을 다녀온 상당수 인재들은 중국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해 유학을 떠난 베이징대학 인재 중 한 명이 중국에 7000억 원 위안(한화 약 120조 원)의 손해를 입혔던 예외적인 일도 있었다.
 

베이징대 인재였던 후스타이(胡士泰)  

1963년 중국 톈진의 한 가정에서 태어난 후스타이(胡士泰). 그는 가난했지만 형편을 탓하지 않았다. 지식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운명을 뒤바꾸기 위해 학업에 정진하며 베이징대 역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출처 바이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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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타이는 우수한 성적으로 베이징대학을 졸업했다. 학교 측은 그에게 역사학 조교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내 거절했다. 그는 중국 시틱그룹(CITIC Group:中信集团)에서 근무 후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후스타이는 호주에서 역사학이 아닌 야금학(冶金)을 공부했다. 박사과정 취득 후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해머슬리 철광 회사(Harmersley Iron PTY. LTD: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철광석·원료탄 생산업체)에 입사했다. 평소 승부욕이 강했던 그는 평사원 시절 악착같이 일했다.  
 
1990년, 리오 틴토(Rio Tinto Group: 호주의 다국적 광산 및 자원 업체)가 해머슬리를 인수하며 후스타이는 리오 틴토 직원으로 전환되었다. 리오 틴토가 경영진을 개편하는 사이, 후씨는 연줄을 이용해 중국에서 큰 주문을 받았고 그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중간 책임자로 승진했다. 1997년엔 호주 시민권을 취득하기도 했다.
[출처 바이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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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타이(胡士泰)의 "양면 인생"

2003년, 중국 정부는 철광석 수입을 장려하는 동시에 중국 국내 기업의 해외 철광석 광산 개발 및 지분 투자를 독려했다. 리오 틴토는 해외 업체 사이에서 가장 풍부한 철강재를 보유하고 있었고 당시 중국과 가장 밀접한 거래를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철강업계는 장기계약을 하지 않는다. 철광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 차익이 커지고, 장기협력가격과 현물가격은 1t당 100달러 이상 차이가 나 리스크가 크다.  당시 후스타이가 수주했던 물량은 중형 업체와의 단기 계약에 불과했었다.  
 
[출처 바이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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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화교 출신이라는 점과 중국 명문 대학인 베이징대 출신임을 이용해 중국계 철강업체를 상대했다. 중국의 각 제철소 및 광석 무역상들과도 친숙하게 지냈다. 후스타이와 가깝게 지내던 관련 업체 관계자는 "그는 평소 부지런했고 실용주의적이며  중국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었다."라고 전했다.
 
[출처 바이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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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행각으로 중국은 5년 동안 7천억 위안 이상을 손해 보았다.

중국 기업들은 그가 중국인이었기 때문에 중국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반대였다.  
 
후스타이는 자신의 직위를 적절히 이용해 중국의 대기업 및 중소 철강 회사와 긴밀하게 접촉했다. 뇌물을 주고받으며 중국 측이 마지막에 제시할 수입 가격, 중국 철강업체들의 재고 현황, 생산단가 및 협상 가격과 같은 극비 정보를 대량 입수했다.  
 
그가 이후 5년간의 협상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가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리오 틴토는 항상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출처 바이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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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말 그는 장시 닝보핑강(江西萍钢) 무역회사와 10년간의 장기 계약을 체결하였고 허베이 탕산이나 산시 성의 중소 철광 공장과도 이와 같은 계약을 맺었다.  
 
한 대형 철강사 간부는 “리오 틴토로부터 뇌물을 받는 게 업계 관행이 됐고 만약 뇌물을 받지 않으면 철광석 공급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공범이 됐다”라고 말했다.
 
후스타이는 멈추지 않았다. 중국에서 역수입한 강재를 이용해 수요가 있는 중국 중소업체에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5년 동안 중국은 7000억 위안(한화 약 120조)의 손실을 봤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단 4년 만에 중국의 철광석 수입가격은 71.5% 상승했으며 2008년에는 80%까지 치솟기도 했다.
 

 
2009년, 중국 철강협회가 국내 무역 질서를 대대적으로 바로잡을 준비를 하던 중 그의 행각이 드러났다. 재산 검증 과정에서 그의 연봉은 10만 호주 달러(한화 약 7,955만 원) 남짓으로 나타났지만 억대 빌라와 고가의 차량 여러 대를 가진 것이 확인되어 뇌물 수수 혐의도 제기되었다.
 
후스타이는 '산업 스파이'로도 활동했다.  중국 철강업계 대기업들이 장기계약을 하지 않으면 고위층과 협력 상담을 이유로 수차례 술자리를 만들어 각종 비즈니스 기밀을 계속 캐묻기도 했다.  
[출처 바이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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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중국 법원은 뇌물수수와 산업스파이 혐의를 적용해 징역 7년에서 14년 형을 선고했다. 후스타이가 핵심 기밀을 많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호주는 죄수 교환 조약을 통해 후스타이를 데려와 호주에서 복역시키려 했지만, 그는 결국 중국에서 투옥되었다.  
 
후스타오 사건은 중국 철강업계에 심각한 손실을 끼치는 동시에 호주와 중국 양국 간의 외교 마찰을 빚게 했다.  
 
2018년 그는 출소했지만, 여전히 중국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복역 후 호주로 돌아가 애초보다 높은 직위로 중용되었기 때문이다. 후스타이는 현재 외국에서 호의호식하며 풍요롭게 생활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차이나랩 김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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