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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품이 최신형으로 둔갑한 노트북…목수가 연장 탓하랴

중앙일보 2020.02.19 15:00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6)

 
김이 올라오는 머그잔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노트북을 하는 사람이 카페에 가득하다. 시험공부, 취업준비, 회사 일이거나 개인사업 아니면 정말 노는 것일 수 있지만 모두 바빠 보인다. 테이블 가득 노트북을 펴고 앉아 있는 모습은 이제 카페라고 하면 떠올릴 만한 대표적인 풍경 중에 하나다. 하지만 사실 내가 처음 노트북을 살 때 만해도 카페에서 노트북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가끔 급하게 카페에서 노트북을 쓸 때면 노트북에 자물쇠를 걸어놓기도 했다. 십수 년 전의 일이다.
 
노트북을 처음으로 구매한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대학에 돌아온 때였다. 나름 2000년대 학번이라 당시에도 수강신청부터 증명서 출력까지 모두 온라인화돼 있었고, 모든 과제는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해 출력하거나 파일로 제출했다. 그럴 때는 보통 교내 구비된 데스크톱을 쓰거나, 급할 때는 PC방에 가서 처리하고는 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모두가 노트북이나 스마트패드를 들고 다니는 지금의 대학 풍경은 IT 기기의 개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취업 준비한다는 명분이 없다면 아마도 노트북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트북의 가격은 최신일수록 비싸고, 무거울수록 저렴했다. 당시에는 ‘넷북’이라는 소형 노트북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작고 가벼우나 산만 한 내 덩치에는 너무 작아 보였고 가지고 있는 기능에 비해 가격이 비쌌다. 군대를 갓 제대했기에 체력은 몰라도 재력에는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좋고 가벼워도 예산을 벗어난 모델은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그중 수많은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사과로고 노트북도 있었다.
 
가벼운 무게와 디자인 이런 요인을 제외하고 딱 내가 원하는 활용도와 가격만을 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한물간 렌털 노트북을 수리해 판매하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사계절 정도 지나간 디자인과 육중한 무게였지만 가격이 매우 만족스러웠기에 구매했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나의 첫 번째 노트북은 3kg의 무게에 15인치의 화면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들어봤을 때는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는데, 등하굣길에는 백 팩이 없으면 도저히 들고 다닐 수가 없는 정도였다. 처음에는 자물쇠도 걸고 누가 훔쳐갈세라 애지중지했지만, 졸업할 때쯤 돼서는 이 무거운 것을 누가 가져가겠어라며 그냥 놔두게 되었다. 그래도 봇짐처럼 가지고 다닌 나의 첫 번째 노트북 안에서 수많은 대학 과제와 이력서가 완성됐다. 덕분에 취직도 하고, 어쩌면 대학 시절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낸 단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노트북에 대부분 CD-ROM이 달려있었다. [사진 한재동]

 
취업하고 나서 정신없이 신입사원 시절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나의 첫 노트북은 켜지지도 않았다. 대부분 시간을 회사 데스크톱과 함께 보내다 보니 문서작업을 위해 따로 노트북을 사용할 일이 없었고, 이제는 돈도 버는 만큼 알량하게도 새로운 노트북을 사고 싶었다. 예전 같이 문서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도 거뜬히 돌아가는 신형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즈음해 집의 데스크톱을 치웠기 때문에, 그 대용으로 쓸 노트북이 필요했다.
 
두 번째 노트북은 전 직장이었던 백화점 가전제품 매장에서 구매했다. 보통 백화점에서 사면 상대적으로 비쌀 거라고 생각하지만, 프로모션 기간을 잘 맞추면 가끔 득템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마침 프로모션 기간이라 데스크톱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16인치 노트북을 비싸지 않게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스마트폰이 보급되었고, 간편하게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었기에 점점 더 노트북을 사용할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세 번째 노트북은 회사에서 회의나 업무를 진행할 때 노트나 다이어리 대신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직원이 많아지게 되면서 구매하게 되었다. 수첩에 열심히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노트북으로 바로 공유하는 직원과 대비해 좀 덜 스마트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자주 보던 온라인 커머스에 ‘빅딜’ 이라고 추천하는 노트북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해서 충동구매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고 보니 다이어리에 쓰나 노트북에 쓰나 업무 하는 데에 별다를 건 없어 보였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은 네 번째로 구매한 노트북이다. 사실 성능은 최신 상품이라도 작년 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자기 용도에 맞는 스펙을 찾고, 가성비를 따져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구매법인 것 같다. 간단히 고려해야 할 상황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① 자주 가지고 다닌다면 1.5kg 이하
② PC 속도를 체감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램(RAM)’이다. 영상을 자주 보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8GB 이상
③ 게임이나 동영상 편집 등이 가능하게 하려면 CPU와 그래픽 카드가 좋은 제품
④휴대용과 데스크톱 대용 구분은 화면 15인치가 기준
⑤ PC 자체의 저장공간이 많은 것보단 외장 하드 사용이 가성비 좋아
 
노트북의 성능은 활용 목적을 기준으로 ‘문서작성 - 동영상 감상 - 게임’ 순이다.

노트북의 성능은 활용 목적을 기준으로 ‘문서작성 - 동영상 감상 - 게임’ 순이다.

 
‘직장인의 2대 허언은 퇴사한다와 유튜버한다’ 는 농담이 유행할 정도로 요즘 많은 사람이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동영상 편집용 고스펙 노트북의 판매도 늘어났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노트북이라도 그 기능을 활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굳이 비싼 최신 노트북부터 구매하는 것보다. 리퍼 PC 등을 판매하는 전시 전자기기 온라인 몰의 중고거래로 구매한 뒤 필요하면 최신 사양 노트북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을 권장한다. ‘장인은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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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동 한재동 직장인 필진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 '이제부터 쇼핑을 잘해야지!'라고 다짐하면 쇼핑을 잘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쇼핑에도 공부가 필요하더라. 쇼핑! 하면 비싼 명품 백을 사려고 줄을 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집 앞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는 것도 쇼핑이다. 그렇다면 ‘쇼핑을 잘한다’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곧 불혹 직장인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쇼핑 경험담이다. 거창한 명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는 패션과 생활용품에 집중되어 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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