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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크루즈' 공포 확산, 배에서 내린 1200명 세계로 흩어졌다

중앙일보 2020.02.19 05:00
크루즈선은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의 ‘슈퍼 전파지(地)’가 될까. 정박해 있던 크루즈선 안의 공포가 점차 각 국가로 번지고 있다. 배 안에 격리돼 있던 승객들이 하선을 시작하면서다.
 
승객들을 배 안에 격리해 두면 감염자가 폭증하고, 감염자가 배 밖으로 나가면 전염병의 기폭제가 될까 우려를 낳고 있다. 선망의 대상이던 크루즈는 어쩌다 시한폭탄이 됐을까.  

 

바다 떠돌던 크루즈들 속속 입항이나 하선 

  
지난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에 입항한 크루즈선 ‘웨스터댐’에선 탑승객 1277명이 하선했다. 하선 직후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남편(85) 등 승객 144명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이동한 83세 미국 여성이었다.   
 
지난 17일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19일부터 하선을 시작해 21일 마무리 될 예정이다. [AP통신=연합뉴스]

지난 17일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19일부터 하선을 시작해 21일 마무리 될 예정이다. [AP통신=연합뉴스]

 
문제는 하선한 승객 대부분이 이미 자국으로 흩어졌다는 점이다. 탑승객들의 국적은 미국·인도네시아·캐나다·필리핀·영국 등 41개국으로 전해진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이 감염됐는지 현재로썬 알기 어렵다. 이에 캄보디아 정부는 16일 추가 하선을 중단해 현재 이 크루즈선엔 승객 236명, 승무원 747명이 남아있다.  
 
전염병 전문가인 스탠리 데레진스키 스탠퍼드대 교수는 17일 미국 경제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이 여성과 함께 배에서 생활하다 자국으로 돌아간 사람들 가운데 또 감염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증상 감염자를 포함한 감염자들은 그들이 돌아간 곳에서 연쇄적인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정박한 웨스터댐 크루즈선. 탑승객1000 여명이 하선한 직후 확진자가 나왔다. [AFP통신=연합뉴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정박한 웨스터댐 크루즈선. 탑승객1000 여명이 하선한 직후 확진자가 나왔다. [AFP통신=연합뉴스]

 
지난 4일부터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하선은 19일부터 시작돼 21일 끝날 예정이다. 이 배에선 보름 만에 총 454명이 무더기로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18일 88명이 추가로 확인돼 확진자는 총 542명으로 늘었다.
 
크루즈에 탑승한 자국민들을 수송하려는 항공기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지난 16일 전세기를 보내 미국인 338명을 귀국시켰다. 한국은 자국민 수송을 위해 공군 3호기를 18일 일본에 보냈다. 이어 호주·홍콩·캐나다·이탈리아도 자국민 대피를 위해 항공기를 보내기로 했다.   
 
이에 앞서 크루즈선 ‘월드 드림’의 경우 홍콩에 정박한 지 닷새만인 지난 10일 승객과 승무원 3600여명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 배에서 내렸다. 독일 크루즈선 ‘아이다비타’와 노르웨이 크루즈선 ‘노르웨이 제이드’의 경우 베트남 등에서 입항이 거부되다가 지난 16일 태국이 입항을 허가했다고 전해진다. 
 

“비좁고, 공용 공간 많은 배는 감염병 전파 최적의 장소”

 
배 안은 감염병을 옮기는 최적의 환경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설명이다. 배 탑승객은 일정 기간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다. 객실이 달라도 공용 공간에서 식사할 때나 화장실을 사용할 때 접촉하기 쉽다. 선내 복도가 매우 좁은 점도 바이러스를 쉽게 전파할 수 있는 요소다. 배가 흔들리면 환자와 부딪힐 수 있어서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한 미국 승객들을 태운 버스들이 지난 17 일 도쿄 인근 요코하마 항구를 출발하고 있다. [AP통신=연합뉴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한 미국 승객들을 태운 버스들이 지난 17 일 도쿄 인근 요코하마 항구를 출발하고 있다. [AP통신=연합뉴스]

 
‘난간’과 ‘손잡이’ 역시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환자가 난간이나 손잡이를 잡은 후 다른 이가 잡게 되면 전염 가능성이 커진다. 장 폴 로드리게 뉴욕 호프스트라대 교수는 17일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크루즈선은 질병을 확산시키는 데 매우 위험한 존재”라고 말했다. “탑승객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같은 복도를 사용하며 같은 손잡이와 난간을 만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하선한 미국인들이 지난 17일 미국 당국에서 보낸 전세기를 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하선한 미국인들이 지난 17일 미국 당국에서 보낸 전세기를 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배의 특성이 신종 코로나의 전염 방식과 만나 사태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의 주요 전염 경로는 ‘비말’(침방울)이다. 환자 재채기나 기침에서 나오는 비말을 다른 이가 흡입해 전염될 수 있다.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접촉 빈도가 높은 배 안에선 신종 코로나가 상대적으로 쉽게 확산할 수 있다.  
 
벤 카울링 홍콩대 역학 교수는 17일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크루즈선 ‘웨스터댐’에서 하선해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 여성에 대해 “배에 타기 전 감염돼 잠복기가 길었을 수도 있지만, 선내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이 여성을 감염시킨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강조했다. 이 배는 홍콩에서 1일 출발했고, 이 여성이 하선한 후 확진 판정을 받은 건 지난 15일이었다. 
 
선내 환경은 예전부터 전염병을 옮기는 주요 경로로 여겨졌다. 중세시대 흑사병(페스트) 전파에도 선박이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크루즈에서 하선한 승객들을 지역 보건 당국이 철저히 검사하고, 격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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