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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값 3분의 1토막에 분노…트랙터로 밭 갈아엎는 농부

중앙일보 2020.02.19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전남 신안군 농민 최정균씨가 대파값이 폭락해 대파밭을 트랙터로 갈아엎고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신안군 농민 최정균씨가 대파값이 폭락해 대파밭을 트랙터로 갈아엎고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3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의 한 대파밭. 성인 무릎을 훌쩍 넘길 만큼 자란 대파를 트랙터가 마구 짓이기고 있었다. 올해 대파값이 폭락하면서 출하를 코앞에 둔 대파를 폐기하는 현장이었다. 밭 주인 최정균(70)씨는 “대파 가격이 3년 전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며 “㎏당 2000원 하던 시절은 이제 추억일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따뜻한 날씨로 대파 공급량 늘어
1㎏ 2000원에서 720원까지 폭락
100평당 64만원 보상금 받고 폐기
“출하땐 손해” 수천만원 계약금 포기

이날 오전 대파 도매가격은 1㎏당 720원이었다. 3년 전만 해도 대파 1㎏이면 20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대파값이 좋을 때 밭떼기 거래를 하면 100평에 300만원을 웃돌았지만, 지금 시세는 25만~50만원으로 떨어졌다.
 
이날 최씨는 비룟값이라도 벌자는 심정으로 트랙터에 올랐다. 최씨가 갈아엎은 대파밭은 농협과 계약재배한 3800평 규모로 정부와 지자체의 농산물 가격 안정화사업에 따라 산지 폐기되는 대신 100평당 64만원의 보상금을 받는다.
 
최씨는 지난해 11월 1만2500평 규모의 또 다른 대파밭을 놓고 한 유통상인과 100평당 110만원에 밭떼기 거래하기로 계약했었다. 계약금만 4000만원이지만, 대파를 수확해 가겠다는 소식은 없다.
 
최씨는 “못해도 1억원에 달하는 큰 계약인데 유통상인이 계약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출하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현 시세가 100평당 50만원 정도인데 출하비용까지 또 손해를 볼 바에는 계약금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 정도”라고 했다. 최씨는 내년부터는 대파 대신 땅콩 농사를 지어볼 생각이다.
 
이런 상황은 최씨 뿐만이 아니다. 신안군 자은면 곳곳에는 아직도 수확하지 못한 푸른 대파들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최씨는 “대파 1㎏ 출하가격이 720원인데, 수확할 때 인건비와 도매시장으로 올려보내는 운송비만 1㎏당 700원이 든다”며 “대파를 출하하면 되레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 수확도 안 하고 그저 값이 회복되기만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입장에선 마냥 값이 오르기만 기다릴 수도 없다. 대파는 4월께 꽃이 피면 상품성이 떨어져 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날이 풀리는 봄철까지 기다렸다가 대파밭을 갈아엎으면 다음 해 농사를 망치게 된다. 땅에 묻힌 대파 잔해물에 벌레가 꼬여 파종할 수 없어서다.
 
전남은 진도가 전국 대파생산량의 37%, 신안이 30%를 차지할 정도로 겨울 대파 주산지로 꼽힌다.  올해 전남 겨울 대파 재배면적은 신안 1535㏊, 진도 1137㏊, 영광 332㏊, 해남 189㏊ 등에 달한다. 대파는 땅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수확하면 뿌리가 찢어져 상품성이 없다는 점에서 겨울에도 따뜻하고 모래땅이 많은 진도나 신안 등에서만 겨울 대파를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한파가 없는 이상기온 때문에 다른 지역까지 대파 공급량이 늘었다. 전남 지역보다 서울까지 운송비가 덜 드는 경기도나 강원도 등에서까지 대파 공급량이 늘어난 것도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전남도는 6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총 1만3000t의 겨울 대파를 폐기한다. 최씨처럼 출하를 포기하고 대파를 갈아엎는 밭의 면적만 359㏊다. 최씨는 1차 보상 대상자로 대파 출하를 포기하는 대신 100평당 64만원의 보상금을 받는다. 2차 보상 대상자들은 100평당 50만원의 보상금을 받는다.
 
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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