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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이코노믹스] 개인 순금융자산 10만 달러쯤 돼야 일본 따라간다

중앙일보 2020.02.18 00:21 종합 24면 지면보기

국민이 진짜 부자 되는 조건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세계 각국의 금융자산을 비교 조사한 보고서가 지난해 말 발표됐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보험사 알리안츠가 매년 발표해 온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총금융자산, 즉 은행예금·주식·연금보험 자산의 합계 금액은 3조2450억 달러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3배였다. 순위로는 세계 10위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국가별 GDP 순위 12위보다 조금 높다.
 

한국 경제 규모 세계 12위 됐지만
부채 뺀 순금융자산은 3만3000달러
싱가포르·일본·대만의 30% 그쳐
부동산 투자 비중만 과도하게 높아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놀라운 대목이 있다. 첫째, 국민 1인당 총금융자산의 규모가 턱없이 낮다. 우리의 1인당 총금융자산은 6만3000달러로 세계 22권으로 밀려난다. 미국(25만2000 달러)이나 스위스(29만6000달러)의 4분의 1수준이다. 싱가포르(15만2000달러)·일본(13만1000달러)은 물론 대만(13만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총금융자산에서 금융부채를 뺀 순금융자산 규모도 한국은 1인당 3만3000달러인데 이는 미국 20만5000달러, 스위스 19만3000달러의 5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더구나 싱가포르(11만1000달러)·일본 (10만7000달러)·대만(10만9000달러)의 3분의 1도 되지 못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1인당 총금융자산도 낮은 편이지만 순금융자산은 훨씬 더 적은 편이다. 그래서 이 보고서는 한국을 순금융자산 5만 달러 이상인 고금융 자산국이 아니라 중금융 자산국으로 분류했다. 일본이나 싱가포르와 대만은 모두 고금융 자산국으로 평가됐다.
 
둘째, GDP에 대한 금융자산 비율도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 한 나라의 순금융자산을 명목 GDP로 나눈 비율이 한국은 1.07인데 미국(3.38)·스위스(2.41)·일본(2.76)·대만(4.49)보다 크게 낮다. 이 비율이 낮다는 것은 경제활동에 비해 금융산업이 활달하지 않고 금융자산 축적이 위축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이 비율이 2를 넘고 후진국의 경우 2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은 거의 후진국에 가깝다.
 
한국은 금융 부채도 너무 많아
 
셋째, 한국은 국민의 금융부채가 너무 많다. 1인당 금융부채는 3만400달러로, 이는 일본의 2만4000달러보다 많고 벨기에·프랑스·오스트리아·독일 같은 선진국의 평균 금융부채 2만 달러보다 1만 달러 이상 더 많다. 금융부채가 순금융자산에 비해 어느 정도로 과다한가를 측정하기 위해 순금융자산 대비 부채비율(이하 ‘금융부채 비율’)을 계산해 보면 한국은 92.3%인데 대부분의 선진국은 40% 이하다. 불가리아·칠레·아르헨티나 같은 후진국조차 50%대에 머무는 데 비하면 우리의 금융부채 비율 92.3%는 너무 높다. 금융부채 규모가 거의 순금융자산 규모와 맞먹는다.
 
금융부채 비율이 92%를 넘어설 정도로 매우 높다는 것은 순금융자산은 적고 금융부채는 많다는 뜻이다. 순금융자산이 적다면 퇴직에 따른 노후보장도 어렵고 이자·배당금 같은 금융소득도 기대하지 못한다. 선진국일수록 중산층이 두텁고 노후 보장이 안정된 것은 바로 순금융자산이 충분히 축적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순금융자산 축적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서 일어난다. 저소득층은 순금융자산을 축적할 여유가 없다. 따라서 순금융자산 보유 정도는 중산층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금융부채 비율이 과도하면 한편으로는 이자·원금 상환비용 지출이 너무 많아서 실제로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걸 의미한다. 또 나라 안팎의 금융시장 변동에 따라 리스크가 커지면서 금융 불안의 실마리가 된다. 금융시스템 붕괴로 국가부도 지경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금융부채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금융자산 충분해야 노후도 튼튼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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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융자산 축적이 미흡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융자산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데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실물투자에 대한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크다. 최근에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축으로 하는 소득계층의 위축으로 중산층의 금융자산 축적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금융시장 성숙도가 낮고 감독 기능이 미흡해 발생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처럼 금융 소비자가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면서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감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금융기관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첨단 금융상품의 개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도 있었다.
 
이와 함께 한국의 금융부채가 유난히 높은 데도 그럴 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과도한 부동산투기 쏠림이고 다른 하나는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중산층의 몰락이다. 최근 가계부채가 폭증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금융부채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춰 리스크를 줄여야 할 텐데 방법은 둘 중의 하나다. 금융부채를 강제로 줄이거나 아니면 순금융자산을 늘리면 된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규제를 강화하고 상환 압박을 높여서 금융부채를 억지로 줄이는 방법은 부작용과 고통이 너무 크다. 가장 옳은 방법은 순금융자산을 불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투자와 소비라는 내수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국내 저축을 늘리면 내수경기를 가라앉힐 위험이 크다.
 
결국 효과적인 정답은 적극적 수출 확대와 수입 억제를 통한 경상수지 흑자 축적이다. 현재 수준의 순금융자산 1인당 3만3000달러를 선진국이나 일본·대만 수준인 1인당 10만 달러로 끌어올리려면 1인당 6만7000달러, 국가 전체로는 3조4000억 달러의 순금융자산을 더 쌓아야 한다. 경상수지 흑자가 1년에 1000억 달러라고 가정할 때,34년을 모아야 할 금액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수준의 금융부채를 1인당 3만 달러에서 동결한다고 가정할 때 부채비율은 92%에서 30%대로 내려가게 된다. 대한민국 총금융자산 규모는 6조7000억 달러가 돼 세계 5위권의 금융 강국, 국민이 부자인 나라, 즉 ‘민부국(民富國)’이 될 수 있다. 
 
국민이 부자 되는 원천 ‘소비·투자·수출’
경제는 소비와 투자, 그리고 순수입(수출 마이너스 수입)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소비와 투자를 각각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으로 나누고 정부부문만 따로 모으면 정부 소비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는 전체 경제의 약 64%로, 이중 민간이 48%, 정부가 16%를 차지한다. 투자는 건설과 설비투자 합해서 30%이고 수출이 42%, 수입이 37%다.
 
소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은 소비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소득을 증대시켜 소비를 끌어올린다는 것인데 이 소득 증대는 정부 세금에서 끌어오고 있다. 세금을 걷어서 민간부문의 소득을 증대시키고 정부소비를 늘려왔다. 이 정책의 한계는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민간부문의 소비 활력이 거꾸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정부의 적극적 소득지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민간소비 증가율은 계속 떨어졌다. 정부는 동시에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투자를 극도로 억제해왔다. 그 위에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제한 충격으로 설비투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그나마 수출이 증가하면서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2019년에는 수출마저도 감소세로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소비·투자·수출이 한꺼번에 위축되는 삼중 악재에 봉착한 것이다.
 
정부가 세금이 주도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고수하면 민간소비는 절대 살아나지 않는다. 오히려 민간소비가 더 떨어질 것이다. 최저임금과 노동시장 규제를 지속한다면 투자도 살아나기 쉽지 않다. 결국 남은 것은 수출이다. 미·중 간에 1차 분쟁합의가 있었지만 두 나라의 실물경제가 점차 불확실해지고 있어서 수출마저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럴수록 정부의 더욱 대담한 수출촉진 정책이 나와야 한다. 수출 관련 투자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고 원화가 강세로 가지 않도록 적극적인 환율 정책을 펴야 한다. 수출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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