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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다녀오면 아파트 한채?…“아토피만 생겼다”

중앙일보 2020.02.18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지난달 31일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우한에 고립돼 있던 우리 국민들이 김포공항에 도착해 전세기에서 내리고 있다. 이 중엔 중국 현지 주재원도 상당수가 포함됐다. [뉴스1]

지난달 31일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우한에 고립돼 있던 우리 국민들이 김포공항에 도착해 전세기에서 내리고 있다. 이 중엔 중국 현지 주재원도 상당수가 포함됐다. [뉴스1]

국내 대기업의 중국 주재원 A씨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2년째 가족과 떨어져 생활 중인 그는 베이징 근교 공업지구에서 공장 가동을 담당하고 있다. A씨는 “처음엔 온 가족이 중국에 왔다. (나쁜 공기 질로) 아토피를 얻어 고생하는 아이를 보다 못해 아내와 아이는 한국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연봉을) 한국의 1.3배 정도 받고 있지만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후임자가 왔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엘리트 코스 해외 주재원 위상 반전
수당 등 지원 줄어 “생활비 더 든다”
승진 보장도 옛말 “떠나면 잊혀져”
워라밸 중시에 “왜 사서 고생하냐”
만혼 늘며 자녀 입시혜택도 없어

한때 ‘승진의 지름길’로 여겨졌던 해외 주재원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일부 근무지의 나쁜 환경 조건이나 가치관 변화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주재원 임기는 통상 3~5년인 만큼 근무지 환경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B씨는 브라질 주재원으로 선발됐지만 결국 포기했다. 그는 “편견을 갖는 건 나쁘지만 가족들 치안이 걱정됐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는데 아이의 언어 교육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별도의 ‘오지 수당’이 붙는 곳도 있지만 지급 기준은 까다로워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역을 4개 급지로 나눠 수당을 준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같은 곳은 오지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지리아·파키스탄·이라크 정도가 (가장 열악한) 1급지로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해외 주재원에 대한 글. [게시판 캡처]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해외 주재원에 대한 글. [게시판 캡처]

과거엔 “주재원으로 다녀오면 집 한 채가 생긴다”고 할 정도로 경제적인 혜택이 풍부했다. 대기업의 경우 주거비를 비롯한 각종 수당과 배우자·자녀의 교육비, 차량·유류비, 문화생활비까지 지원하는 곳이 많았다.
 
최근엔 수당의 항목과 금액이 전반적으로 줄었다. 중국 상하이 주재원인 C씨는 “상하이 물가가 너무 올라 회사에서 주는 주택자금으로는 (시내는) 턱도 없다. 회사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야 하는 외곽에 집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먹거리가 불안해 한국산 위주로 사는데 (한국보다) 1.5~2배 비싸다. 아이들을 보낼 국제학교도 좋은 곳은 중국 부자들이 (학비를) 너무 올려놨다”고 하소연했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 주재원에 대해선 국제학교 학비 지원을 크게 줄인 기업도 많다.
 
주재원으로 나갔다 오면 승진이 보장된다는 것도 옛말이다. 국내 대기업 인사 담당 부서 관계자는 “주재원 경력이 승진 심사에 긍정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정해진 가산점이나 진급 특혜는 없다”고 설명했다. 전자 관련 대기업 차장은 “(직장에서) 눈에 보여야 한다. 4~5년 자리를 비웠다가 (승진) 경쟁에서 뒤처져 임원의 꿈을 접고 현지 채용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를 여럿 봤다”고 말했다.
 
현지법인의 실적이 악화할 경우 주재원 경력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중국 사업을 접으면서 롯데마트의 해외 주재원은 2015년 56명에서 현재 9명으로 줄었다. 롯데백화점도 같은 기간 52명에서 11명이 됐다. 중국에서 근무했던 롯데쇼핑 관계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시장에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고생했는데 (사업 철수로) 오히려 능력을 평가절하당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등 달라진 가치관도 한몫한다. LG 계열사의 한 50대 임원은 “우리 때는 비전 하나만 보고도 (해외로) 나갔다. 하지만 요즘은 ‘승진도 확실하지 않고 수입도 별로 득이 없는데 우리가 왜 고생하느냐’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 있으면 주 40시간 근무에 휴가 때 해외여행도 자주 가는데 주재원 매력이 크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영향도 크다. SK의 한 직원은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 나면 내 경력을 포기해야 한다. 휴직 인정도 안 된다. 얻는 것에 비해 기회 손실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자녀의 대학 입시에서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주재원의 가장 큰 혜택’으로 꼽혀왔다. 그런데 만혼이 늘면서 주재원 대상자로 꼽히는 직원 중엔 자녀가 아직 어려 특별전형 지원 자격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CJ그룹 관계자는 “최근엔 현지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현지 채용이 대세”라며 “주재원은 관리직 등으로 최소화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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