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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1등’ AI 기업 ‘수아랩’이 고수한 3·3·3 원칙

중앙일보 2020.02.17 16:34
미국 나스닥 상장사에 2300억원에 회사를 판다. 엑싯(Exit·창업 후 출구전략)을 바라는 많은 스타트업의 꿈 아닐까?
 

AI 사진검사로 ‘딥러닝 대가’도 제쳐
2300억원에 기업 매각한 송기영 총괄 강연

그 비결을 공유하는 신년회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사무실에서 열렸다. 소프트뱅크벤처스 투자사의 창업가 40여 명과 대기업의 사내벤처(CVC) 투자자 10여 명이 몰렸다.
 

‘포스트 수아랩’ 꿈꾸는 창업가들

오후 5시가 되자 50여 명의 시선이 마이크 앞 한 사람에게 쏠렸다. 주인공은 미국 인공지능(AI) 머신비전(이미지 기반 자동 검사 시스템) 기업 '코그넥스'에 인수된 수아랩의 송기영(39) 전 대표(현 코그넥스딥러닝랩코리아 총괄). 지난해 10월 공개된 인수가 2300억원은 해외 기업에 매각된 국내 '기술벤처' 중 최고가로 기록됐다.
송기영 코그넥스딥러닝랩코리아(전 수아랩) 대표 [사진 코그넥스]

송기영 코그넥스딥러닝랩코리아(전 수아랩) 대표 [사진 코그넥스]

수아랩에 투자한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이준표 대표는 이날 "수아랩 투자를 결정할 때 '조 단위' 테크회사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3~4개월 만에 역대급 인수합병(M&A)을 만들어냈다"며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싸움을 하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수아랩의 사례가 동기부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송기영 총괄은 수아랩의 ‘3원칙’과 ‘3행운’, ‘인재를 붙잡는 3비결’을 공개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신년회에서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지난 6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신년회에서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수아랩의 3원칙

①실패해도 한 우물 파기 ②고급인재 확보 ③자율과 책임

수아랩이 처음부터 '수아킷'이란 대박 상품을 내놓은 건 아니었다. 수아킷은 육안 검사 대신 AI를 통해 5픽셀(1.3㎜) 이하의 작은 불량까지 걸러내는 기술이다. 지난해 기준 삼성·SK 등 26개국 기업이 사용했다.
 
수아킷을 만들기 전 수아랩은 라벨 인쇄 검사, 가죽 검사, 섬유 검사에 도전했다. 그러나 줄줄이 실패. 그래도 한 우물만 팠다. '딥러닝 기반 비전 검사' 기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업무임에도 사람이 직접 제품을 검사해야 하는 기존 시장을 혁신하겠단 목표였다. 송 총괄은 "실패를 통해 제조업 고객의 특성과 머신비전 산업에 대한 지식을 확실히 배웠다"며 "이 분야만큼은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믿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국내 대기업, 구글, 딥러닝 장인 그 누가 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며 "입찰 경쟁에서 '딥러닝의 글로벌 4대 대가'라는 앤드류 응의 랜딩 AI와 IBM 왓슨을 이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사무실에서 송기영 총괄이 발표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사무실에서 송기영 총괄이 발표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두 번째 원칙은 '인재 확보'였다. 송 총괄은 창업자들에게 "눈높이를 낮추지 말고 뛰어난 사람만 뽑자는 원칙에 따라 투자액 대부분을 인재 채용에 썼다"고 말했다.
 
마지막 원칙은 '자율과 책임'의 기업문화였다. 직원들에게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만 설명하고, 일하는 방식엔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 실제 수아랩은 출퇴근 체크도 없고, 사무실도 1인실처럼 돼 있다. 안에서 게임을 해도, 잠을 자도 상관없다. 단 결과물은 냉정하게 평가하고 합당한 보상으로 대우한다. 그는 "대기업의 시스템을 이길 순 없으니 대기업과 반대로 했다. 뛰어난 사람을 뽑되 어떤 시스템도 두지 않았다"고 했다.
 
송 총괄은 인수합병으로 고민 중인 창업가들에게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기업문화가 맞지 않으면 합병을 다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인수합병으로) 몇몇 사람만 돈 벌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진다면 실패한 딜(거래)이지 않느냐"며 "한국이나 중국 대기업으로부터 인수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직원들이 좋아하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아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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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랩에 따른 3행운

①구성원 ②정부·투자자 ③한국

송 총괄은 "행운도 따랐다"고 말한다. 그는 "초기 구성원들이 뛰어난 인재였던 점, 창업 초 정부 지원 덕에 연구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점, 실패가 반복돼도 투자자들이 믿어줬던 점이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실리콘밸리가 아닌 한국에서 창업한 게 운이 좋았다"며 "삼성·LG·현대·포스코 등 글로벌 톱 수준의 제조사들과 일하며 그 기준을 맞추다보니 해외에서도 빨리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재를 붙잡는 3비결

①돈 ②동료 ③일

많은 창업가가 궁금해했던 '좋은 인재를 잡는 비결'을 송 총괄에게 따로 물었다. 그는 "뛰어난 직원 3명을 잃은 경험이 있다. 이후 내가 직장을 고르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3원칙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사무실에서 송기영 총괄이 발표하고 있다. 청중은 창업자들과 투자자들. 김정민 기자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사무실에서 송기영 총괄이 발표하고 있다. 청중은 창업자들과 투자자들. 김정민 기자

 
최소 조건은 돈이다. 회사가 직원을 소중히 여기는지 그 가늠자는 곧 연봉이라는 얘기다. 직원 2~3명일 때도 최소 대기업 계열사 수준으로 연봉계약을 했다고 한다. 송 총괄이 두 번째로 꼽은 비결은 '배울 수 있는 동료'였다. 그는 "내가 전 직장(SNU프리시젼)에서 자타공인 가장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고 나서부턴 배울 만한 동료를 찾고 싶어졌고, 이후 인텔로 이직했다"며 "좋은 동료를 모아주는 건 대표의 몫"이라고 했다.
 
그는 "돈과 동료를 충족해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일이다. 성장할 수 없다고 느끼면 직원들은 회사를 떠난다"며 "직원이 계속 성장할 수 있고, 재밌어하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좋은 기술이 승리…매각사례 늘어나길"

이날 발표를 들은 실리콘밸리 칩 플랫폼 스타트업 사이파이브(SiFive)의 이윤섭 공동창업자는 "같은 기술기업으로서 '결국 좋은 기술이 이긴다'는 것을 증명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기술의 세계에선 '토종기술이냐 해외기술이냐'가 아니라 '좋은 기술이냐, 안 좋은 기술이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스타트업 '밸런스히어로'의 이철원 대표는 "독일계 기업에 매각된 배달의민족 등 최근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생태계에 들어가는 일이 많은데, (일부 주장처럼) 해외 매각이 '돈 벌고나서 튀는' 나쁜 거래가 아니다. 회사를 키우기 위한 선택"이라며 "매각 사례가 많이 나와야 국내 창업 생태계가 건강하게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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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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